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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수술지연에 실형 선고, 의료계 ‘격분’

“최선의 방법보다 방어진료 초래할 것” 비판

의료계가 수술 지연에 따른 악결과를 이유로 외과 의사에게 업무상과실치상죄를 인정해 금고형이 선고된 사건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소장폐색환자의 수술 지연에 따른 악결과를 이유로 외과 의사에게 업무상과실치상죄를 인정, 금고 6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바 있다.


해당 사건의 피고인이 된 외과 전문의는 2017년 갑작스런 복통으로 병원 응급실을 내원한 환자를 진찰한 후 장폐색이 의심되지만 환자의 통증이 호전되고 있고 6개월 전 난소 종양으로 인해 개복수술을 받은 과거력이 있음을 감안해 우선 보존적 치료가 적절하다고 의학적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7일 후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자 응급수술을 시행해 소장을 절제했고, 환자는 괴사된 소장에 발생한 천공으로 인해 패혈증과 복막염 등이 발생해 2차 수술을 하게 됐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은 “당시 해당 환자의 상태를 감안하면 즉시 수술을 실시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치료방법이었으며 주의의무 위반으로 수술이 지연됐다”고 인정한 후 환자에게 장천공, 복막염, 패혈증, 소장괴사 등이 발생한 것을 의사의 과실에 의한 것으로 인정해 의사에게 금고형을 선고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의료계는 즉각 법원의 결정에 반발하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23일 입장문을 통해 “의학의 오랜 역사와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수술 여부 및 그 시기 결정에 있어 명확한 임상 지침이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연구와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직접 환자를 진찰한 의사가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 종합적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으므로 현장의 판단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학적 원칙이 확립돼 있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현장에서 환자를 직접 진료한 의사의 결정은 존중돼야 하며, 이후 발생한 악결과를 이유로 당시 의학적 판단의 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이 사건에만 국한해 보더라도 환자와 의사가 모두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수술에 앞서 보존적 치료를 우선 시행해보기로 합의한 바 있다”며 “그럼에도 법원이 사후에 그 악결과만을 문제 삼아 의사에게 금고형을 선고한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환자의 치료방법 선택에 대한 의사의 의학적 판단이 부정되고 추후 환자의 상태 악화에 대해 의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면, 우리나라 모든 의사들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방어진료를 하게 될 것이고, 앞으로는 법적 책임을 오롯이 감내하면서 환자에게 최선이 될 것으로 판단되는 치료 방법을 선택하고 권유할 의사는 찾아보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는 것.


의협은 “현재에도 외과 등 필수의료과에 대한 기피현상이 심화돼 의료공백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며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경시하고 법의 잣대만을 들이대는 이러한 판결이 반복된다면, 우리나라의 필수의료뿐만 아니라 전체 의료체계의 붕괴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와 유사한 판결이 반복됨으로써 의사의 소신진료가 위축되고 필수의료뿐만 아니라 전체 의료체계가 붕괴되는 사태를 지켜보고 있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다”며 “또한 의료분쟁으로 입은 국민의 피해를 신속하게 보상하고 의료인에게 안정적 진료환경을 보장함으로써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더욱 튼튼하게 보호하기 위해 국회와 정부가 가칭 의료분쟁특례법 제정에 즉시 나설 것을 적극 촉구한다”고 주문했다.


같은 날 대한외과의사회도 성명서를 통해 “의료과실의 문제를 일반적 범죄행위와 동일한 선상에서 일의적(一義的)으로 판단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의사회는 “의료행위 도중 불가피하게 상해와 유사한 인체 침습행위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행위는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기에 지연도 발생할 수 있다”며 “특히 복강 내에 발생한 출혈이나 천공 그리고 장유착과 같은 합병증은 일반적인 검사 방법으로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매우 많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기에 의사는 신중해야 한다. 당시 상황을 외과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장 폐색을 의심하기는 했지만, 응급수술을 필요로 하는 상태로 판단하지 않은 여러 변화와 증상들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상태를 다소 늦게 지연 진단했다는 이유로 형사상 주의위반에 해당하는 의료 과오로 판단하고 금고 6월에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해 의사를 단죄하면 의료시스템에 또 다른 중대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며 “즉 생명의 촌각을 다투는 의료행위의 최전선에서 최선의 의료를 시행해야 하는 의사들이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방어적인 방법에만 집중할 것이고, 조금만 의심되더라도 최후의 수단인 개복수술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질 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산부인과에서 산모를 위해 제왕절개를 선택하지 않거나 지연 선택을 한 탓에 산모와 아이에게 이상이 발생했다는 법원의 판단 이후 의료현장에서는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비율이 급격하게 늘었다.


또 약물치료나 간단한 수술 전에 일상적인 혈액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의료과실이라는 법원의 판단이후에는 모든 환자에게 혈액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의료현장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의사회는 “의사로서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의료행위를 시행함에 있어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해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의문을 제기하기 어려운 명제”라며 “그렇기에 적절한 의료행위를 선택하거나 시행하는 의사 결정하는 과정이 신중해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 개복수술 같은 최후의 방법을 선택할 때 시간적 지연이 발생한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도 과도한 인체 침습행위에 대한 담당 외과의사의 신중함이 적절한 진료행위의 지연처럼 보였고 그것으로 합병증 같은 나쁜 결과로 이어졌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으나, 이 과정 또한 의학이나 의료 그리고 복강내 외과수술을 하고 발생하는 장유착의 합병증의 결과를 사전에 정확히 예측할 수 없어 생길 수 있는 불가피한 위험이고 의료행위 과정에 필연적으로 내포돼 있다는 판단 또한 가능할 수 있다.


의사회는 “해외 다수의 국가에서 의료인의 면허관리를 엄격히 하고 있지만 정작 의료인의 형사처벌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정상적인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악의적인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형법상 과실치사상죄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무엇보다 의료는 결코 모든 경우를 예측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질병 그리고 의료행위 이후 나쁜 결과가 발생 가능성이 발생할 수 있는 분야”라며 “입장을 바꿔 판결이 잘못됐다고 판사를 형사입건하고 처벌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의사회는 “이 사건에서 환자는 금고형을 선고받은 외과의사의 적절한 수술을 통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음을 기억해 줘야 한다”며 “사법부가 의료행위에 형사적 제재가 필요한 의료과실이라는 사법적인 판단을 함에 있어서는 사법부의 종합적이고 신중하고 명백한 증거에 근거한 지혜로운 판결이 내려져야 한다. 그것이 수술실, 응급실, 중환자실에서 위태로운 국민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