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공단이 요양기관의 수진자 보험자격 확인 의무화 제도를 오는 7월부터 시행하려는 것에 대해 대한의원협회(회장 윤용선 이하 의원협회)는 17일 성명을 통해 강력히 비판하며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은 건강보험 부정수급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요양기관의 수진자 보험자격 확인 의무화 제도를 7월 1일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을 지난 6월 3일 발표한 바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건강보험 무자격자(건강보험 자격상실자 및 급여정지자)는 보험이 아닌 일반으로 진료해야 하며, 체납 후 급여제한자(6회 이상 건강보험료를 체납하여 건강보험 급여가 제한된 자 중 고액체납자 등 1,800명 이내)는 요양급여비 전액을 본인 부담해야 한다.
의원협회는 요양기관의 수진자 보험자격 확인 의무화 제도에 대해 “만약 요양기관이 진료 전에 환자들의 보험자격을 확인하지 않고 이들을 보험청구할 시에는 공단이 진료비를 미지급하겠다는 것이 이 제도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의원협회는 이 제도에 대해 지난 10일 “공단은 건강보험 무자격자 자격관리를 요양기관에 떠넘기려는 작태를 즉각 중단하라”라는 성명서를 시작으로 반대의견을 피력해왔다.
하지만 공단은 전 요양기관에 이 내용이 담긴 공문을 배포하는 등 강행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는 상황.
의원협회는 “건강보험 강제지정제인 우리나라에서 공단은 요양급여비용 청구가 발생하면 건강보험법에 따라 지급의무가 있을 뿐, 무자격자나 급여제한자의 진료비를 지급하지 않을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며 “공단의 부정수급 방지대책은 법률에 규정되지 않은 명백한 불법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럼에도 공단이 이 제도를 시행하겠다는 것은 법을 완전히 무시한 불법적인 행위로, 힘없는 요양기관에 대한 ‘슈퍼갑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의원협회는 또 “무자격자와 급여제한자의 관리책임은 오롯이 공단에 있다”고 강조했다.
공단이 지난 2010년부터 2012년 6월까지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은 4,883명의 외국인, 재외국민의 자격상실 처리를 제 때 하지 않아 6억3천만원 가량의 건보재정 누수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 같은 공단의 늑장대응에 의한 재정 손실의 책임을 요양기관에 떠넘기겠다는 것이 바로 공단의 ‘부정수급 방지대책’의 본질이라는 것.
의원협회는 “국민건강보험법 제53조(급여의 제한)에 따라 공단은 급여제한자가 건보료를 일정 기간에 납부하지 않을 경우 공단은 부당이득금의 징수에 나서야 한다”며 “이는 곧 급여제한자를 관리할 책임이 요양기관이 아닌 공단에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원협회는 “그럼에도 공단은 지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 동안 공단은 급여제한기간에 받은 2조1131억원의 보험급여(공단부담금)에 대해 2011년 7월에 단 1회만 진료사실통지서를 가입자에게 통지해 급여제한자의 관리에 완전 손을 놓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는 당시 감사원도 공단에 대해 “공단이 보험급여제한과 진료사실통지를 비정기적 또는 행정편의적으로 운용함으로써 건보료 수입감소로 건강보험재정의 건전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사항이다.
의원협회는 더 나아가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공단은 보험자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2013년 말 기준 6회 이상 보험료 체납으로 인한 급여제한자는 163만5천명이나 되는데 이번 공단의 대책에는 ‘고액체납자 등 1,800명 이내 대상자’로 한정하고 있어, 총 급여제한자의 0.11%에 대해서만 보험진료를 하지 말라고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의원협회는 이와 관련해 “공단이 고액을 체납하면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고, 저액을 체납하면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국민 앞에서 자랑스럽게 떠벌린 것”이라고 비난했다.
의원협회는 이렇게 이번 제도를 강력히 비판하면서도 ‘요양기관의 수진자 보험자격 확인 의무화 제도’가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철폐의 근거가 될 수 있다며 “공단이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철폐에 앞장서고 있는 점은 환영할만하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의원협회는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국민건강보험법은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를 규정하고 있는데 공단이 이번 정책을 통해 요양급여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에 무자격자와 급여제한자를 포함시킨 것이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철폐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진료 당시에는 무자격자나 급여제한자라 하더라도 나중에 자격을 소급 취득하거나 체납보험료를 납부하면 보험진료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완전 보험 무자격자가 아니란 사실을 공단이 확인해주고 있다는 것.
추후에 해당 가입자의 행동에 따라 요양급여 여부가 결정되는 상황인데, 그 책임을 가입자나 공단이 아닌 공급자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전혀 올바른 방향의 대책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의원협회는 “공단이 지금까지 무자격자나 급여제한자라 할지라도 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진료한 요양기관에 진료비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보험자격이 있는 환자라도 요양기관이 보험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이어 “결국 모든 요양기관은 보험환자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는 요양기관 강제지정제의 원칙을 공단 스스로 깨뜨린 것으로서 이는 환영할만하다”고 밝혔다.
의원협회는 또 “이 대책으로 인해 진료현장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혼란은 오로지 공단 책임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전에도 공단의 보험자격조회 전산시스템이 과부하로 인해 먹통이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는데 요양기관은 그 시간을 일반적인 환자진료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
특히 외국인 근로자 등이 그 직장을 그만둔 경우와 같이 보험자격 변동이 자격조회 전산시스템에 즉각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흔히 있는데 이런 경우 요양기관은 전산시스템을 믿고 진료 후 나중에 억울하게 진료비를 환수 당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전산오류가 없는 평소라 하더라도 사진이 부착되지 않은 건강보험증으로는 본인여부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신분확인을 위해 원칙적으로 모든 환자는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을 소지해야 하기 때문에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은 환자에 대해 비급여 진료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의원협회는 공단에 대해 “보험자 역할은 하지 않고 요양기관에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는 한심한 작태에 기가 막힌다”고 비난했다.
공단이 진정 건강보험 부정수급을 방지하고자 했다면, 규정대로 모든 국민들에게 진료를 받을 시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하도록 하고, 미지참시 일반으로 진료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원협회는 또 이번 제도를 ‘요양기관의 사적재산권 강탈’이라고 규정했다.
보험자격 확인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료비를 미지급한다는 것은 민간의료기관의 사적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며, 공단 스스로 보험자로서의 자격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한의원협회는 “건보공단의 제도시행 강행을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지속성을 위한다는 책임감으로 결사적으로 막아낼 것”이라며 그럼에도 ‘수진자 보험자격 확인 의무화 제도’를 시행하고자 한다면 “공단이 해야 할 일을 요양기관이 하는 만큼, 이에 합당한 수가 책정 및 공단의 잉여인력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해야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공단의 불법적 행위에 대해 법적 대응을 포함한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공단 전산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나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는 환자들이 내원하는 경우 등 환자의 자격을 조회할 수 없는 모든 환자들을 대상으로 일반진료를 할 것이며 환자의 불만이 제기되는 경우 공단에 민원을 접수하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의원협회는 “보험료 징수도 못하고 체납자 관리도 못하는 공단은 더 이상 보험자가 아니다. 징수 및 체납자 관리에 대한 타 기관 이관 등 보험자로서 역할을 못하는 공단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및 단일 공보험 해체를 위한 공론화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