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 중인 2년제 간호학제 신설에 반대하는 간호사 3천여명의 분노의 외침이 서울역 광장을 뒤덮었다.
2년제 간호학제 신설 반대를 위한 협의체(이하 협의체)는 24일 오후 5시 30분부터 7시까지 서울역 광장에서 ‘2년제 간호학제 신설에 반대하는 총력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2년제 간호학제 신설 저지를 목적으로 지난 9일 발족한 협의체는 한국간호대학장협의회, 한국간호과학회, 한국방문간호사회, 대한간호정우회, 한국간호교육학회를 포함한 13개 학회, 전국 32개 간호대학 및 간호학과, 13개 병원 등 총 76개 간호사 단체로 이루어졌다.
공동대표는 김선아 한국간호대학장협의회장(연세대 간호대학장), 임숙빈 한국간호과학회장(을지대 간호대학장), 송명은 한국방문간호사회장, 김희걸 대한간호정우회장(가천대 간호학과 교수), 송경자 서울대병원 간호본부장, 박영임 한국간호교육학회장(대전대 간호대학 교수) 등 총 6명.
협의체에는 이들뿐만 아니라 서울대, 연세대,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국내 유수 대학 및 대학병원의 간호대학 교수와 간호부서장 등 국내 간호계에서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간호사들은 2년제 간호학제 신설에 왜 분노하는가?
간호사들이 정부의 2년제 간호학제 신설 추진에 강력히 반발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이러한 움직임이 현대사회의 간호사 수준 및 교육 상향화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간호교육 하향화는 곧 간호서비스 질 하락으로 이어져 국민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간호사 교육과 인력확보 수준을 높이기 위해 지난 2011년 3-4년제 간호대 교육 학제를 4년제로 일원화해 2015년까지 모든 간호대학을 4년제로 전환할 것을 결정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간호대 교육 4년제 학제 일원화를 통해 국민들에게 보다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의료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며 해외취업 시 전문학사학위로 인한 불이익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간호대 교육 4년제 일원화 작업이 시행된 지 불과 1년 만인 지난 2012년 국제대 내 간호조무과가 신설돼 신입생을 모집하면서부터 논란이 불거져 나왔다.
결국 복지부는 이듬해 2월 기존 간호사-간호조무사 간호인력 체계를 ‘간호사(4년제)-1급 실무간호인력(2년제)-2급 실무간호인력(고졸)’의 3단계로 개편하고 기존 간호조무사제도는 2018년을 기해 폐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3단계 간호인력개편방향’을 들고 나왔다.
개편방향에는 각 실무간호인력이 일정한 경력을 쌓으면 간호사까지 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기존 사설학원을 통해 배출되던 간호조무사가 정식 간호대학 교육과정을 밟지 않고도 간호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에 간호계는 즉시 반발했다. 국민건강권 수호를 위한 전국간호사모임(건수간)은 복지부의 간호인력개편안 철회를 촉구하는 촛불문화제를 7월 18일 서울역 광장에서 개최했고 이날 행사에는 전국에서 집결한 간호사 및 간호대생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까지 총 4000여명이 참가했다.
지난 2013년부터 꾸준히 추진돼온 정부의 ‘3단계 간호인력개편안’이 간호계의 분노를 촉발해 결국 간호사들이 또다시 2년 만에 서울역 광장을 찾게 만든 것이다.
복지부, 간호인력 부족 문제 해결해야 VS 간호계, 간호서비스 질 하락 우려
우리나라는 지난 2007년 4월부터 ‘7등급 간호관리료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다. 일선 병원의 간호서비스 질 향상을 유도하기 위해 ‘병상수 대 간호사수’에 따라 정부가 입원료를 차등 지급하는 것이다.
이토록 간호서비스 질이 중요시되는 마당에 정부는 왜 굳이 간호사를 간호조무사로 대체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일까?
이는 일선 병원의 간호인력 부족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실제로 간호등급제 실시 이후 상대적으로 처우가 좋은 서울의 대형병원 위주로 간호인력 쏠림 현상이 심화돼 전국 대부분의 지방·중소병원들은 심각한 간호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정부는 이 때문에 배출과 수급이 용이한 2년제 출신 간호사를 대거 양산해 간호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병원들의 숨통을 트여 주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중소병원들은 정부의 3단계 간호인력개편안을 상당히 반기고 있는 모양새다. 간호조무사협회 역시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간호계는 지방중소병원 간호인력 수급 부족 문제를 상대적으로 질 낮은 간호인력을 공급함으로써 해결할 게 아니라 간호사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해결해야 국민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박이슬 간호대생은 “복지부는 간호사가 부족하기 때문에 2년제 간호학제를 신설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간호현실을 철저히 외면한 것”이라면서 “실제로 우리나라 간호대학 입학정원은 전 세계에서 몇 년째 부동의 1위이지만 간호사들에 대한 낮은 처우로 실제 일하는 간호사수는 꼴찌라는 아이러니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선희 수간호사는 “면허자 수에 비해 실제 일하는 간호사 수가 극히 적은 것은 80% 이상의 병원이 간호사에 대한 법정 기준을 준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그럼에도 복지부는 문제해결을 외면한 채, 간호사의 빈자리를 2년제 간호인력으로 채우려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명실 성신여대 간호대학 학장은 복지부의 3단계 간호인력개편안에 대해 “규제개혁위원회 의결에 의해 졸속으로 만들어진 개악안”이라면서 “이로 인해 간호서비스 질을 크게 떨어뜨려 환자 안전을 위협하며 간호사 교육체계를 송두리째 망가뜨려 의료계를 혼란에 빠트릴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우진하 수술간호사회 회장(건국대병원 간호팀장)은 “복지부는 4년 전에는 질 높은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간호교육 4년제 일원화 정책을 결정하고 진행하더니 이제 와서 갑자기 2년제 간호인력을 도입하려는 무책임하고 일관성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2년제 간호학제 신설반대를 위한 협의체는 이날 결의문을 통해 보건복지부에 ▲법적 간호사 인력기준을 준수하게 할 것 ▲간호사 처우 개선 정책을 마련할 것 ▲2년제 간호학제 신설 정책을 철회할 것 등을 촉구했다.
협의체는 “이 정책이 철회될 때까지 전 국민과 함께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