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건산업에도 4차 산업혁명 물결이 도래하며 빅데이터 활용과 AI 접목에 대한 기대와 우려 등 논의가 한창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관련 산업기술 수준 대비 규제나 정책의 뒷받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과 함께 지난 8월 30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생명윤리정책을 말한다’라는 주제하에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두 번째 세션에서는 ‘보건의료정보의 공익적 활용과 정보 주체 보호를 위한 데이터 거버넌스’에 대한 첨예한 토론의 장이 열렸다.
이날 토론회의 패널로 참여한 김경화 변호사(법무법인 민후)는 헬스케어 데이터 공유의 중요성과 수행방안에 대해 주장하며, “한국의 경우 GDP 대비 의료비 부담이 급증하고 있는 나라”라고 포문을 열었다.
매년 GDP의 성장율은 3~5%가 증가하는 반면, 경상의료비의 증가율은 매년 2배씩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저성장 경제와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GDP 대비 의료경상비 증가는 피할 수 없는 현실로 국가에 큰 부담이 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많은 선진국들이 GDP 대비 의료비 비중을 낮추기 위해 핵심 방안으로 헬스케어 데이터의 공유 정책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정밀의료 또는 맞춤의료 등을 통한 의료서비스 수준을 올리기 위해서도 역시 헬스케어 데이터의 공유는 필수적이라고 전했다.
또한 헬스케어 데이터의 공유는 관련 일자리 창출뿐 아니라 헬스케어 데이터 산업이라는 신사업 창출 또한 가능할 것이라 부언했다.
헬스케어 데이터란 정보 주체에겐 무척이나 예민한 정보이다. 현재 선진국에서는 통계나 연구, 학술 관련 목적으로는 개인식별이 불가능한 형태의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사회의 전반적인 동의가 되어 있는 상황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개인 단위의 정보에서 발생한다. 이 날 김 변호사는 몇몇 국가의 사례를 들며 정보 주체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개인의 헬스케어 정보를 활용하고 있는 경우를 제시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정보 주체가 각 의료기관에 흩어져 있는 자신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자신의 정보를 다른 의료기관에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blue-button initiative’ 제도를 시행 중이라고 전했다.
또한 미국의 HIPPA 프라이버시 규칙 및 일본의 차세대의료기반법(의료기관의 연구개발에 이바지하기 위한 익명가공 의료정보에 관한 법률)은 정보 주체의 비식별화를 통해 데이터 공유를 가능케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실질적인 비식별화 입법 도입도 안 된 상태로 EU GDPR이나 일본의 개인정보보호법 입법 시기에 비해 그 발전 속도가 뒤떨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더 좋은(자세하고 체계화된) 헬스케어 데이터의 공유가 더 나은 보건복지제도를 만든다며, 공공의 이익을 위한 헬스케어 데이터 활용을 가능케 할 국내 개인정보보호법의 개정 입법 논의가 시급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날 토론 패널로 참석한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4차 산업혁명에 맞서 헬스케어 데이터의 활용과 가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의 정보 공유를 당위성 측면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라고 반론했다.
장 위원은 “상식 선에서 헬스케어 데이터의 정보 주체는 해당 당사자 개인으로, 그 정보를 공유하고 말고는 개인의 기본권 영역에 속한다”며 공공의 이익이 개인의 기본권에 우선할 수 없음을 확고히 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국민이 정부의 개인정보에 대한 보호정책을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로 꼽았다. 대중의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개인의 데이터 공유를 논의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사실상 개인정보 유츨 사고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국내 상황에서 차별이나 불평등을 유발할 수도 있는 개인의 민감한 헬스케어 데이터와 같은 정보 공유를 국민이 동의하기는 어렵다는 것.
장 위원은 “지난 IMS헬스 처방전 매매에 대한 사건이 아직 판결도 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들의 이와 같은 불신은 합리적인 의심이며, 빅데이터에 관한 ‘기우’가 아니댜”라고 강변했다.
정보 공유 이전에 개인정보에 관한 철저한 관리∙감독 체계 확립이 필요하며, 정부가 우선 이런 노력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한 후에야 빅테이터를 위한 개인정보 공유를 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를 선도하지는 못할 망정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아야 공공의 이익을 지킬 수 있다는 입장과, 체제에 대한 대중의 신뢰 없이는 공공의 이익도 없다는 두 가치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