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e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Care 중심 구조로 가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이 제시됐다.
지난 23일 오전 9시 30분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 개최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연례학술회의에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허대석 교수가 '근거기반의학과 가치기반 보건의료' 주제로 기조연설을 맡았다.

기조연설에서 허대석 교수는 근거기반 의학에서의 ICT에서 나온 결과가 통계적 유의성만으로는 불안하기 때문에 임상적 유의성까지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른 비용 문제를 해결하여 가치 · 근거 기반 및 환자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허 교수는 "지난 40년간 우리는 치료(Cure)만을 생각했으며, 치료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부도덕하다고 여겼다. 모든 투자가 큐어에 집중됐다."라면서, "환자 거주지 · 지역사회 중심의 커뮤니티 케어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 부분을 망각하고 치료에만 집중하는 것은 잘못된 구조이다."라고 주장했다.
동네의원부터 대학병원까지 지역사회별 리소스를 파악하여 최선의 결과를 내야 한다고 했다.
허 교수는 "단적으로 삼 년 전 메르스 사태 때 한 병원에서 감염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 병원의 환자들이 전국을 랜덤으로 다녔다."라면서, "이러한 전달체계에서는 가치 기반 보건의료가 대단히 어렵다."라고 했다.
환자를 중심으로, 신뢰 · 양보 기반으로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허 교수는 가치 기반 보건의료의 궁극적 목표가 ▲낭비를 줄이고 ▲의료 질을 높여 ▲최선의 결과를 내는 것이라고 했다.
허 교수는 "의료계 공급자들은 자원을 코디네이션하는 데 협조해야 한다."라면서, "우리나라 빅데이터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잘 돼 있다. 그런데 이제는 기존의 종이보험카드로는 안 된다. 대만의 경우 전자보험카드를 도입하여 갑작스러운 사고 발생 시 카드만으로 환자 정보를 다 알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전자보험카드의 경우 장시간 논의가 진행됐으나 개인정보 문제 때문에 진척이 없는 상태이다.
또한, 허 교수는 "우리나라는 공급자 통제도 40년간 해왔다. 제도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당시 이 병원에 소아과 전문의가 20명이 있었다. 그런데 이 전문의들은 주말에 외래를 보느라 정신이 없어서 신생아 중환자실에 참여하지 못했다."라면서, "우리나라는 병원에 안 가도 되는 사람들이 병원에 간다. 과소비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경증 환자가 대형병원에 가지 못하게 사회적 합의가 돼 있다."라고 지적했다.
닥터 쇼핑(Doctor Shopping) 문제를 지적했다.
허 교수는 "저수가다 보니 환자들이 과소비한다. 의료 인력은 제한돼 있는데 의료 소비는 늘어났다. 저렴하니까 소비자가 의료서비스를 많이 이용한다. 간호사 · 의사 수가 부족하다 보니 안전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분쟁이 발생한다. 악순환의 연속이다."라면서, "환자가 대학병원에 다니며 CT를 3~4번 찍는다. 그런데 여기에 아무런 통제가 없다. 필수 의료인력인 간호사 · 의사 수가 매우 부족한데, 거기에 더하여 이 인력들이 경증환자 보는 데 지쳐서 중증환자를 못 보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하드웨어가 부족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 수를 늘리고 병원을 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끝으로 허 교수는 보장성 강화의 패러다임을 '의료의 질'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허 교수는 "기존까지는 비용을 줄이고 접근성을 높이는 기제가 작동했는데, 인구 · 사회 구조가 변하면서 이 법칙으로 문제가 해결될 시점은 지났다."라면서, "'의료의 질'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의료 질을 향상해서 국민이 어느 병원에 가더라도 안심하게 하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토론에는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이상일 교수와 서울대 보건대학원 권순만 교수가 참석했다.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이상일 교수는 의학적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를 합리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모든 비급여를 포함한 의료행위 목록의 정비 및 코드 표준화 ▲의학적 비급여의 판단 기준 설정 ▲급여 우선순위 결정 ▲급여 항목의 가격 수준 설정 ▲급여 항목의 본인부담률 결정 ▲급여 확대에 따른 재정영향분석과 급여 항목 재평가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를 위해서는 보건의료기술평가를 통한 근거 확보와 가치 · 판단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현재 이에 대한 구체적 정책 추진 계획이 공개돼있지 않아 정책 집행의 합리성 · 실행 가능성 등을 검토하기 어려운 상태이다."라면서, "전반적으로 볼 때 국내 보건의료기술평가 기반이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 있으며 단기간 내 의사결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근거에 바탕을 둔 의사결정보다는 의견에 바탕을 둔 의사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라고 말했다.
이 경우 앞으로 의사결정의 적절성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 생성이 요구될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보건의료기술평가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매우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에 대응해 이른 시일 내 기반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근거 확보에 있어서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적절한 역할 분담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공공 재원 분배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진지한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권순만 교수는 "보건의료에서 중요 키워드는 근거와 가치이다. 근거의 경우 정확히 산출하고 평가해 그것을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 또, 근거를 누가 창출하느냐도 중요하다."라면서, "의사결정이 정치적으로 휘둘리면, 국민을 위한 정책보다는 이해관계자들의 이해를 돕는 정책이 되기 때문에 근거 기반의 정책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경제성 평가가 윤리적 문제나 형평성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비용 대비 효과 등에 있어서 좋은 대안이 여러 가지가 있을 때 어떤 것을 택할지는 궁극적으로 가치에 기반을 둬야 한다. 이 가치는 소비자인 환자 가치이다. 의료서비스의 궁극적 목표는 환자를 낫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문가 가치가 아니라 환자 가치를 측정해야 한다."라면서, "가치 부분은 근본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요구한다. 환자 중심을 얘기하지만, 보건의료체계에서 사실 환자는 굉장히 뒤로 밀려있다."라고 말했다.
환자 중심은 도구적 가치가 아닌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했다.
허 교수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가 가진 궁극적 · 본질적 문제의 해결은 쉽지 않다. 모든 제도에는 그 사회의 오랜 문화 · 역사 · 철학 등이 오랜 시간 걸쳐서 응축돼 있기 때문에 이를 깨나가는 것이 어렵다."라면서, "우리나라 의료 공급자의 경우 경제적 보장수준이 높다고 생각한다. 수가가 낮은 게 사실이지만, OECD 국가의 근로자 평균 임금과 비교하면 의료공급자 기대 임금 수준이 높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우리나라 소비자는 새로운 기술을 무조건 좋아한다. 또, 우리나라 소비자들 뼛속 깊이 소비문화가 쌓여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큰 타협이 있어야 한다."라면서, "정부는 통상 보험료 수준에 머무르면 된다고 말하지만, 소비자도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보장률과 수가가 올라간다. 의료 질도 올라가고, 의료전달체계도 혁신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