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홍콩에서 아토피피부염 환자가 자신의 부모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만성 아토피 질환이 환자의 삶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있었다.
20일 CNN은 홍콩에서 23세의 한 여성이 지난 17일 아토피피부염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신의 부모를 살해한 후 자살한 사건을 보도했다.
그가 남긴 유서뿐 아니라 이전 온라인 포스팅을 통해서도 그는 아토피 치료에 따른 스테로이드 복용의 부작용과 그로 인한 고통, 그리고 해당 질환을 물려준(?) 부모에 대한 원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고 외신은 전했다.
그가 포스팅한 내용을 살펴보면 “가난한 부모가 자식에 가난을 물려주는 것보다, (아토피)피부염을 가진 부모가 자식에 피부염을 물려주는 게 훨씬 끔찍하다. 당신이 가난하다면 열심히 일함으로써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당신이 피부염을 앓고 있다면 일생토록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 받을 것이다”라는 뉘앙스의 글을 올려, 그가 늘 아토피피부염으로부터 고통 받고 있었으며, 이를 물려준 부모에 대해 원망하는 맘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국내의 모 일간지가 CNN이 보도한 해당 외신을 전달하며, 환자가 앓고 있던 만성 아토피피부염을 ‘피부 습진(eczema)’ 정도로 명기해 환자가 겪은 질환의 중대성보다는 살인사건에 이목이 집중될 소지가 발생하기도 했다.
'습진'이라는 단어가 이론적으로는 문제의 여지가 없으나, 국내에서는 주부습진 등 비교적 경증의 증상을 떠올리는 탓에 질환으로 인한 환자의 중대한 고통을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토피피부염에 대한 인식 부족, 국내 환자에 치료접근성 저해와 편견으로 돌아와
국내에서 아토피피부염은 경증 질환, 그리고 환경성 질환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환자나 환자의 보호자는 아토피 치료를 위해 주변 환경적 요인을 바꾸거나 친환경 소재, 유기농 식품을 사용하는 등 의료적 치료보다는 생활환경 개선에 더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인식들은 국내 아토피 환자들의 의료적 조기 치료접근성을 떨어뜨리며,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도록 한다. 또한 보건당국이 경증 아토피피부염을 지정해 1차 의료기관을 이용하도록 유도하며, 중등도 이상의 환자들에게 필요한 상위 의료기관의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늦추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 들어서야 아토피피부염이 환경적 요인도 있지만 유전적 요인에도 기인하며, 국내에서는 성인 환자의 비중이 높아져(2016년 심평원 자료 기준 40.1%) 사회경제적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환자의 삶의 질을 현저하게 떨어뜨린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조금씩 인식의 변화가 생기고 있다.
국내 중증 아토피피부염 환자, 질환의 심각성에 비해 치료환경 열악해
하지만 여전히 중증 아토피피부염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현저히 낮은 상태이며, 의료적 치료에 대한 치료법 정립과 치료제 옵션도 열악한 상황이다.
때문에 피부과 전문가들은 정책토론회 등을 열어 아토피피부염에 대한 인식 개선 및 중증 환자에서의 치료접근성 개선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달 25일 국회에서 개최된 정책토론회에서 박창욱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교수는 국내 성인 아토피 환자의 증가 추세를 지적하며 “성인의 아토피는 대게 유병기간이 길고 중증인 경향이 있어 이에 대한 의료적 치료를 독려하고 사회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증증 아토피피부염 환자는 질병의 기전과 사회적인 인식 부족으로 인해 우울 및 불안, 자살관념에 대한 비율이 일반인 대비 2~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토론에 참여한 소비자단체는 단순한 아토피 증상의 치료뿐 아니라 스트레스 완화요법과 같은 정신과 치료 또한 급여 지원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뿐 아니라 아토피피부염은 적절한 치료로 조절되지 않으면,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는 질환이다. 일부 환자에서는 짧은 기간 동안 발생하고 치료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일생에 걸쳐 영향을 주는 만성 아토피피부염 환자가 많은 만큼 심혈관질환, 자가면역질환, 감염 등 합병증 유발할 수 있는 위험이 높다.
때문에 환자 개인의 아토피피부염 치료비용뿐 아니라 향후 발생하는 합병증으로 인한 사회적 의료비 부담이 높아 아토피피부염의 적절한 치료는 개인의 관점에서나 사회적 관점에서나 중요하다.
아토피피부염의 치료는 보통 면역조절제, 면역억제제, 스테로이드, 항히스타민제 등을 이용한 국소치료와 전신치료가 이루어지지만, 중증 환자에서는 이들 약물치료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으며 장기간 사용이 어려워 치료옵션이 매우 적은 상황이다.
중등도 이상 아토피피부염 치료 최초의 생물학적 제제 ‘두필루맙’ 등장
최근 ‘두필루맙’이라는 생물학적 제제가 개발, 국내에도 도입되어 중등도 이상의 아토피피부염 환자에 가뭄에 단비 같은 희소식을 전했지만, 여타 다른 생물학적 제제와 마찬가지로 값비싼 치료비용으로 환자들의 치료접근성은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책토론회에서 박창욱 교수는 “최근 많은 제약사에서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뛰어난 다양한 생물학적 제제를 연구개발, 출시하고 있지만, 1회 치료 시 100만 원을 상회하는 치료 비용으로 중증 환자들이 이런 치료제의 혜택을 받기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영국이나 일본 등지에서 ‘두필루맙’이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국내 중증 환자에서의 급여 요구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영국 국립보건임상평가연구소(NICE, The National Institute for Care and Health Excellence)는 지난 22일 면역억제제 등 최소 1개의 다른 전신 치료제에 반응하지 않거나 이들 치료제 사용이 불가 또는 내약성이 없는 중등도-중증 성인 아토피피부염 환자에게 ‘두필루맙’을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 National Health Service)의 치료제로 권고하는 최종평가결정안을 발표했다.
‘두필루맙’ 사용에 대한 NICE의 최종기술평가 가이드라인(TAG, Technology Appraisal Guidance)은 최종평가결정안을 토대로 오는 8월 1일 결정될 예정이다.
‘두필루맙’은 영국의 의약품 조기접근제도(EAMS, Early Access to Medicines Scheme)를 통해 도입된 치료제로, NICE의 최종 가이드라인에 권고될 경우 NHS는 가이드라인 발표 30일 이내에 보험 급여를 제공해야 한다.
여기에 대해 옥스퍼드대학교 피부과 그레이엄 오그(Graham Ogg) 교수는 “두필루맙에 대한 NICE의 권고는 중등도-중증 아토피피부염 관리를 위해 꼭 필요한 수순”이라고 강조했으며, 영국 국립피부염학회(NES, National Eczema Society)의 앤드류 프록터(Andrew Proctor) 회장은 “이번 결정안은 중등도-중증 아토피피부염 치료가 진일보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환자들이 NHS를 통해 두필루맙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NICE가 아토피피부염 환자들이 치료 및 관리에 있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인식하고, 새로운 치료 옵션인 두필루맙을 권고해 기쁘다”며, “이번 결정안으로 많은 아토피피부염 환자들이 희망을 가질 것”이라고 전했다.
중증 환자에 중요한 치료옵션 ‘두필루맙’, 급여 없이는 국내 환자 사용 요원
한편, 국내에서도 지난 3월 국소치료제로 적절히 조절되지 않거나 이들 치료제가 권장되지 않는 중등도-중증 성인 아토피피부염 환자 치료에 ‘두필루맙’이 식약처 허가를 받았지만, 급여에 대한 적용 여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두필루맙(상품명 ‘듀피젠트’)’의 제조사인 사노피 측에 의하면, 지난 5월 급여신청서를 제출해 심평원이 현재 검토 중이라고 알려졌지만 올해 안 급여 획득은 기대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전했다.
국내 피부과 전문가들 역시 중증 아토피피부염 환자에 ‘두필루맙’이 중요한 치료옵션임을 주장하며 산정특례와 중증 아토피피부염 코드신설 등을 통한 급여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두필루맙’의 치료대상 환자수를 산출하고 급여 범위를 결정하는 게 쉽지 않으며, 코드신설의 경우도 중증 환자를 진단하는 진단기준을 정립하는 데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어 국내 중증 환자들이 빠른 시일 안에 ‘두필루맙’ 치료혜택을 누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서울대학교병원 피부과 이동훈 교수는 중증, 난치성 아토피피부염 치료 현황을 설명하며, “중등도 이상 환자 중 많은 수는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법이 없다”고 말하며, 광선치료는 주 2~3회 내원이 필요하고 광선에 민감한 환자가 많으며, 전신 스테로이드 치료는 효과는 좋지만 장기 치료가 불가능하고 부작용 우려가 있으며, 사이클로스포린 등 기존 약제에 대해서도 장기 치료 혹은 부작용 문제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따라서 중증, 난치성 아토피피부염에는 효과적이고 안전하며,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치료 옵션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