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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HIV 감염인 의료차별 예방 가이드라인', 의료 차별 심화에 일조

의료 현실 외면, 폐기 후 현실성 있는 대안 마련해야

최근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는 감염인에 대한 의료 차별 예방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HIV 감염인 의료차별 예방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11월 6일까지 의견 조회를 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병원의사협의회(이하 병의협)는 5일 성명에서 동 가이드라인이 HIV 감염인의 의료 차별을 오히려 심화시키며, 실현 가능성에 대한 고찰도 없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병의협은 HIV 감염인 문제는 단순히 인권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며, 질병 자체의 특수성 · 사회 전반 인식까지 고려하여 접근할 것을 당부했다.

가이드라인에서는 '의료서비스 제공자는 HIV 감염인 · 의심 환자와 대면하는 모든 상황에서 혐오 · 경멸 등을 뜻하는 언어적 · 비언어적 의사표현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적시하고, '동성애 등 성 정체성에 대한 혐오 발언 · 차별적 태도를 보이는 것'을 의료 차별의 예시로 들었다.

병의협은 "진료에서 문진은 기본 · 필수 과정이다. HIV 감염인 진료에서 감염 경로를 파악하기 위한 구체적 질의 · 사실 확인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문진 과정에서 언급될 수 있는 동성애 등의 표현에 대해서도 차별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의료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라고 했다.

의사는 환자 질병 ·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 환자 성기를 진찰할 수 있고, 과거력 문진을 통해 부끄러울 수 있는 환자 사생활 정보도 얻을 수 있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 얻은 정보를 환자 질병 진단 · 치료를 위해서만 사용할 뿐 타목적으로 유출하는 것을 내부적으로 엄격히 금하고 있다.

병의협은 "의료인 사이라도 환자 질병 치료를 위한 협진 · 자문 목적이 아니라면 절대로 이를 유출하지 않으며, 현재도 환자 개인 정보 유출 시 처벌을 받는다. HIV 감염자에 대해서만 이러한 문진 · 진찰 과정에서 의료 차별 개념을 대입하면, 이는 오히려 진단에 어려움을 주게 돼 결국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을 기회를 박탈당한다."라고 했다.

HIV 감염인에 대한 식별은 환자뿐만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의료 종사자들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했다.

병의협은 "감염병 환자 관리는 특히 중요하며, 만약에라도 발생할 수 있는 감염병 전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의료기관이 하는 필수 노력 중 하나는 감염병 환자에 대한 식별이다. 이는 당연히 다른 환자 · 일반인은 모르도록 의료기관 종사자끼리만 알 수 있는 표식으로 하고 있다."라면서,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국내 의료 환경 때문에 의료 종사자는 자기 안전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장 흔한 사고가 바로 주사침 자상이다."라고 언급했다.

주사침 자상의 경우 환자가 가진 감염병에 따라 대처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의료기관 대부분은 B형 간염 · C형 간염 · 매독 · HIV 등 주사침 자상으로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질병을 가진 환자를 구분해 의료진만이 알 수 있는 약속된 식별을 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차별이라고 예시한 '처방전이나 차트 등 의료기기에 감염 여부를 표시'하는 행위는 처치 과정에서 해당 의료진이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 감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필수 행위이며, 환자를 차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병의협은 "감염병 전파를 막고, 의료진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차별이라고 규정하는 질본은 반성해야 한다. 만약 가이드라인대로 '의료서비스 제공자는 의료기관 내에서 HIV 감염인임을 식별할 수 있는 별도 표시는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를 엄격히 지켜야 한다면 이는 HIV 감염자에 대한 기피 현상을 심화시키고, HIV 감염자에 대한 의료차별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가이드라인에서는 의료 차별이 발생할 경우 △의료법 제15조(진료거부 금지 등) 제1항 · 제89조(벌칙)에 근거해 1년 이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 벌금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6조(응급의료의 거부금지 등) · 제60조(벌칙)에 근거해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손해배상의 책임을 져야 할 수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법에 근거해 진정이 제기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병의협은 처벌을 강화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다. 병의협은 "이는 가이드라인을 강제로 지키도록 의료기관 · 의료 제공자를 겁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라면서, "중소병원 · 의원급에는 HIV 감염자를 포함한 감염병 환자에 대한 관리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아 감염병 환자를 어쩔 수 없이 전원해야 한다. 그런데 일률적으로 모든 의료기관이 가이드라인을 따르게 하고 만약 이를 따르지 않을 시 처벌하게 되면, 중소병원 · 의원급 의료기관은 HIV 감염자가 방문하지 않기를 더욱 바랄 것이며, 이는 또 다른 방식으로의 차별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라고 지적했다.

HIV 감염 예방 · 감염자 관리 및 치료는 철저히 정부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병의협은 "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에서 의료차별을 부각하는 것은 HIV 감염인 처우 개선 · 관리 등에서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으로 비칠 수 있다.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이에 대한 준수를 의료기관에 강제하는 것은 HIV 감염자에 대한 의료 서비스 제공을 국가가 전담할 생각이 없으니 민간에서 국가로 책임을 넘기지 말고 해결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HIV 감염인의 인권 신장 및 차별 해소를 위해서는 질병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기 위한 대국민 캠페인 · 교육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HIV 감염인이 마음 놓고 국가로부터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고, 국가 구성원으로서 아무런 편견 없이 활동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으로 인권이 지켜지고, 차별이 없어진다고 했다.

병의협은 "인권에 대한 근시안적인 접근과 의료 현실에 대한 무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HIV 감염인 의료차별 예방 가이드라인'은 현실화될 수 없고, 현실화됐을 때 그 역효과는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이다. 이러한 가이드라인 제정을 통한 의료기관 압박은 정상적 진료행위를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오히려 HIV 감염인들에 대한 편법적 의료차별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라면서, 가이드라인의 즉각적인 폐기를 요구했다.

HIV 감염인에 대한 국가 주도 의료서비스 제공 계획을 수립하고, 진정한 인권 신장 · 차별 금지를 위한 현실성 있는 대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병의협은 "본 회의 요구를 무시하고 가이드라인 시행을 강행할 경우 이로 인해 단 한 건이라도 HIV 원내 감염이 발생한다면 모든 책임은 질본이 져야 한다. 본 회는 가이드라인 통과 후 HIV 감염사고 발생 시 질본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등의 사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며, 이번 가이드라인 추진 · 시행과 관련해 질본에 다른 정치적 외압 등이 작용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감사청구도 진행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