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반짝 평가 · 보여주기식 인증이라는 오명으로 의료 질 · 환자 안전 제고의 실효성에 꾸준한 의문이 제기됐던 의료기관 인증제도가 어느덧 3주기를 앞두고 있다.
이에 3주기 의료기관 인증제도는 △'인증입문'이라는 세분된 단계 마련 △인증 관련 수가 신설 등 인센티브 확대 △조사 결과 공표 및 인증마크 차별화 △수시조사 △조사위원 전문성 제고 등을 고려해 보다 실질적이고 신뢰 받는 인증제도로 거듭나고자 했다.
12일 오전 9시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의료기관 인증제도 혁신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윤 의료기관 인증혁신 TF 위원장(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이하 김 위원장)이 '의료기관 인증제도 혁신 방안' 주제로 발제했다.
3주기를 앞둔 의료기관 인증제도는 인증 준비 부담을 비롯한 자율 인증 참여 저조, 조사위원의 편차 · 전문성 부족, 인증 의료기관에서의 안전사고 지속 발생 등으로 전면 검토 · 개선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한 보건복지부는 금년 4월 인증제도 혁신 TF를 발족해 인증제도의 문제점을 진단하여 인증제도 개편방안을 논의 ·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김 위원장은 "현재 인증제도와 간호인력 간 악순환의 구조가 형성돼 있다.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인증 기준은 그 인력이 감당하기에 힘든 수준에 이르렀고, 간호사 사직으로 인력은 더 부족해지는 상황이다. 인증 기준이 높다는 건 인력 배치 수준에 비해 높다는 의미로, 적정 간호 인력을 확보하고 환자 안전을 제고하는 것이 선순환의 구조이다."라고 말했다.
병원에 취업한 10명의 간호사 중 4명이 병원을 떠나며, 신규간호사의 이직률은 무려 38%에 이른다. 이러한 현상에는 인증제도가 하나의 요인으로 작동한다. 김 위원장은 "인증 기준을 감당할 수 없는 인력 구조가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을 감은 것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책임이 있다. 인증을 받게끔 요구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보상하지 않은 점이 복지부 책임이다. 병원도 마찬가지이다. 인증을 소위 반짝 인증이라는 형태로 임시로 대응했고, 그 결과 준비하는 기관만 힘든 인증이 됐으며 환자 안전은 기대한 만큼 되지 않았다."라면서, "간호계도 책임이 있다. 간호 인력이 뻔히 부족한데도 간호대 정원을 늘리지 않았다. 인력을 늘리지 않고서는 병원 내 의료 인력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인증제도 혁신 TF에서 도출한 개선 방안은 ▲단계별 인증 도입 ▲인증 보상 방안 마련 ▲분야 질환별 인증 도입 ▲국민 대상 인증제도 홍보 확대 ▲인증마크 차별화 ▲조사 결과 공표 확대 ▲조사위원 대상 맞춤형 상시 교육 · 자질 관리 강화 등이다.
인증 참여 활성화를 위해서는 △중소병원 등 의료기관 규모별 질적 수준을 고려한 '인증입문 단계'를 도입했고 △인증에 따른 수가 연계 등 인센티브를 추진했으며 △의료 질 관리가 필수적인 전문 영역에 대해 '분야별 인증'을 도입했다.
김 위원장은 "현행 인증을 훨씬 축소한 인증입문 단계를 도입했다. 이는 종별 구분이 없는 구조 · 과정 중심의 단계이다. 병원들이 인증을 받고 싶어 하지만 인증 문턱이 너무 높아서 진입을 두려워하는데 사다리를 놔주자는 의도이다."라면서, "기본 인증은 캐나다 · 호주에서도 운영한다. 캐나다의 경우 인증(Qmentem) 이전에 사전인증 프로그램(Accreditation Primer)을 운영하며, 호주에서는 전통적인 EQulP(Evaluation and Quality Improvement Program) 이전에 좀 더 기본적인 인증 프로그램인 NSQHS(National Safety and Quality Health Service)를 운영한다."라고 설명했다.
선진국의 병원 대다수는 의료 질 · 환자 안전에 대한 높은 책임감으로 자발적 인증이 이뤄지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자율 인증 없이는 국가가 운영하는 건강보장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는 환자를 진료하지 못하게 돼 있다. 즉, 겉으로는 자율이지만, 실제로는 의무인증인 셈이다.

김 위원장은 "정부는 의료기관 인증제도 출범 당시 인증에 대한 인센티브를 만들었어야 했다. △별도 수가 신설 또는 가산 추진 △의료 질 · 환자 안전 관련 수가 지급에 인증을 요건으로 포함 △인증 단계에 따라 평가점수 차등화 · 배점 상향 조정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라면서, "우리나라의 인증 기준은 국민소득 · 의료비 규모를 고려하면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다. 우리나라 중환자실 사망률은 동남아 국가보다 높은 게 현실이다. 응급실의 경우 매일 밤 환자를 타 병원으로 전원하기 위해 의료진이 전화기를 붙잡고 있다. 외국에서는 자기 병원에 온 중환자는 스스로 책임지고 진료한다."라고 말했다.
인증결과 환류를 강화하기 위해 △소비자 알 권리 보장 · 선택권 강화를 위한 인증조사 결과 공표 확대 △인증 의료기관 신뢰도 제고를 위한 종별 · 단계별 인증마크 차별화 △대국민 인증 인지도 향상을 위한 홍보 강화 등이 이뤄진다.
인증 결과는 필수기준 · 최우선 관리기준부터 전체 기준 조사 결과까지 단계적으로 결과 공표를 확대한다. 인증마크의 경우 의료 소비자가 인증 종류를 알기 쉽도록 인증 종류별로 구분하고, 인증 · 질적 격차를 고려해 은색 입문 인증마크가 신설된다. 또한, 국민 대상으로 인증제 홍보를 위해 매년 조사 결과 우수 모범기관을 선정 · 공표하고, 의료법 제42조(의료기관의 명칭) 제2항에 인증등급을 포함하도록 개정이 이뤄질 전망이다.
사후관리에서는 실효성을 위해 '불시조사'를 도입하자고 했다.
김 위원장은 "어떤 경우에 수시조사가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라면서, "외국에서도 수시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대만의 경우 사후조사를 불시조사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본 조사와 사후조사 모두 불시로 한다. 불시조사 도입을 고민해야 한다. 미국 병원에서는 불시 인증제도 도입 후 인증 준비가 훨씬 더 쉬워졌고, 만족도도 올라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불시 인증제도를 도입해야 하며, 대신에 몇 퍼센트를 만족하면 인증을 받을 수 있다는 인증 기준의 상한선을 잘 조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조사위원 대상으로는 △인증 교육센터 운영을 통한 맞춤형 교육 실시 △조사위원 등급제 · 면접 전형 확대 △인증원 직원 조사 참여 등이 진행된다. 이를 위해 인증원 내 교육 전담부서를 설치해 지속적인 교육이 이뤄지며, 조사위원 전문성 제고를 위한 분야별 전문가 · 유관단체 간 협력체계가 구축된다. 또한, 조사위원 경력 · 조사 경험에 따라 등급을 구분하고, 조사팀 구성 시 조사팀장 선발에 해당 등급을 반영한다.
김 위원장은 "바쁜데 시간 내서 힘들게 일해도 좋은 소리를 못 들으면 좋은 인력을 확보할 수 없다. 조사위원이 명예로운 자리가 되기 위해서는 인증제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제도가 돼야 한다. 단순히 돈만으로는 조사위원 확보가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나라가 미국 · 호주처럼 조사가 안 되는 이유는 조사위원 역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조사위원 역량이 높으면 포괄적인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풀타임으로 조사위원을 확보하자고 주장하는데, 파트타임으로 현역에서 일하는 우수한 인력을 확보해야만 조사위원 역량을 제고할 수 있다. 풀타임은 대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종별 특성을 반영한 인증제도 개선을 통해 인증 실효성이 강화된다. △중소병원은 전문병원별 인력 · 시설 · 서비스 특성 반영 △요양병원은 요양병원에만 필수적으로 적용되는 당직 의료인 인증기준 개정, 요양병원 질 향상을 위한 수가 등 인센티브 마련, 불인증 요양병원 관리 방안 마련 △치과병원은 외래 중심인 치과병원 특성을 반영한 인증기준 개선, 감염 예방 · 관리 지원을 위한 감염관리 수가 마련 △한방병원은 한방병원 인센티브 마련, 인증 준비 교육 지원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은 대단히 폐쇄적으로 운영돼왔다. 최근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되면서 이사회 구성이 일부 바뀌었으나 그것만으로 개방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될지 의문이다."라면서, "인증혁신안이 폭탄 돌리기가 돼서는 안 된다. 만일 이게 폭탄 돌리기가 돼버리면 3년 뒤 폭탄은 더 크게 터질 것이다."라고 시사했다.
한편, 본 인증혁신안과 관련하여 오창현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TF에서 만든 안건은 의료기관인증위원회에 올려서 심의를 받아 추진해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TF에 보고해서 이 혁신안이 어떻게 팔로우업 되는지를 점검받을 계획이다.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잘못된 점을 지적받아서 최대한 개선해보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