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호 신뢰가 축적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보장성 강화 정책에 대한 공감 형성은 어렵다."
23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 노보텔 앰배서더에서 열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국제심포지엄'에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문옥륜 명예교수(이하 문 명예교수)가 이 같이 말했다.
문 명예교수는 "건강보험 보장성 우선순위는 가입자의 보험급여에 대한 기대치 · 보험자의 재정 여력 크기에 비례하며, 보건문제 해결의 단위비용 크기에는 반비례한다. 일례로 암에 대한 공포가 우리나라를 휩쓸었던 2~3년 전에는 모든 질병을 제쳐놓고 암 질환의 보험급여에 우선순위를 뒀다."며, "특정질병에 대한 우선순위는 문제의 크기 · 심각도에 비례하지만, 정치적 고려가 크게 작용하기도 한다. 미국 대통령 중 소아마비를 앓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소아마비 · 유전병을 앓던 존 케네디는 정신질환에 보건사업 우선순위를 뒀다."라고 언급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일명 문재인 케어(이하 문케어)의 비급여의 급여화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건강보험 보장률은 지난 10여 년간 60% 초반에서 정체된 상태로, 문케어에서는 보장률을 70%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비급여를 줄여나가고 있다.
문 명예교수는 "비급여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저수가 구조에 기인하기 때문에 기존 건강보험 수가체계 · 보험료 부과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대수술이나 대체 수단 없이는 해결이 대단히 어렵다. 또한, 건강보험 정책에 대한 의료계의 신뢰도가 그다지 높지 않아 보장성 강화 정책에 대한 시선이 곱지 못하다. 상호 신뢰가 축적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주요 정책 문제에 대한 공감 형성은 어려운 문제다."라고 했다.
그간 저수가 구조에서 비급여로 손실을 상쇄해온 의료계에서는 비급여를 해소하는 보장성 강화 정책에 큰 불만 · 불신을 표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교수는 "합리적인 정책 부재에 대한 불만 · 불신이 계속 누적된 결과다. 우리나라 의료보험 제도의 빛나는 성과가 의료계 희생으로 점철돼 있다는 것을 정부도 상당 부분 인정하고 있다. 서구의 건강보험 역사에서도 의료인 이익에 반하는 정책은 성공한 사례가 없다."며, "의료인 이익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과제다. 이제부터라도 쌍방의 입장을 경청 · 이해하여 사회적 공감대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보장성 강화 정책은 의료공급자 · 소비자 역할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아 빠른 해결이 어렵다고 했다.
교수는 "대다수 불만은 건강보험 수가가 기대를 충족하지 못해 발생했다. 이 가운데 건강보험은 오늘의 성과를 이뤄왔고, 여기에는 민간 의료 부문의 양적 · 질적 확대에 건강보험 제도가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며, "사회보험 도입 이전에는 종사자 수 · 의료기관 수 기준으로 공공의료체계가 주류를 이뤄왔으나 1977년 이후부터는 민간주도형 의료체계로 전환하게 됐다. 이는 건강보험제도 역할에서 전적으로 비롯된 것이다. 현재 80~90%가 민간의료기관이기 때문에 이제는 민간의료를 중심에 두지 않고 보건행정 · 건강보험제도 · 사업관리를 논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민간의료기관이 그간의 건강보험 제도에 대한 불만을 충분히 토로한 만큼, 보장성 강화 정책의 성공을 위한 이해 · 협조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의료소비자의 경우 보장성 강화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가입자 · 피보험대상자 권리를 적극적으로 신장하고, 의무를 신중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문 명예교수는 "의료소비자는 제도를 감시하고 의사결정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능동적 · 참여형 소비자로 거듭나야 한다. 건강보험제도 도입 후 41년간 이러한 소비자 · 공급자를 얼마나 육성 · 결집했는지 반성해봐야 한다. 이를 통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의 대상을 확보하고, 부담의 벽을 이해 · 설득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