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의학·보건의료 분야의 석학들이 참여하는 국가 최고 수준의 학문단체로서, 의학 뿐만 아니라 약학, 간호학, 치의학, 생명과학, 보건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한의학 분야의 교수도 일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림원은 직역 간 이해관계에 앞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공동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습니다.
최근 발의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서영석 의원 대표발의)’은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안전관리책임자에 의료기관 개설자를 포함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조항은 결과적으로 한의사도 안전관리책임자가 될 수 있도록 허용하게 돼, 국민 건강과 방사선 안전관리 체계의 근본 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있습니다.
방사선은 질병 진단에 필수적인 도구이지만, 동시에 인체에 위해를 초래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소입니다.
이에 따라 국제방사선방어위원회(ICRP)는 ‘정당화 원칙(Justification)’, 즉 검사로 인한 이익이 위해보다 클 때만 방사선을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임상 현장에서 안전하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방사선의 물리·생물학적 특성, 임상적 적응증, 영상 판독에 대한 전문 지식과 충분한 임상 경험이 필요하며, 이는 의학적 수련을 통해 검증된 전문가에 의해 수행돼야 합니다.
현행 의료법과 시행규칙은 이러한 과학적 근거에 따라, 의사·치과의사·방사선사·의학물리사 등 방사선 사용과 안전관리에 대한 전문교육을 이수한 인력만이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책임자가 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직역 구분이 아니라,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과학적 안전장치입니다.
한의과대학 교육과정에 일부 영상 관련 교과목이 포함돼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한의학적 진단을 위한 기초 수준의 교육에 불과합니다.
의과대학에서는 해부학, 병리학, 영상물리학, 방사선생물학 등 다학제적 기반을 포함한 6년간의 통합 교육을 거친 뒤, 전문의 과정에서도 3~4년간 영상검사 처방, 판독, 안전관리에 대한 체계적 수련을 받습니다.
따라서 교육과정의 표면적 유사성만으로 전문성을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의료기술의 발전과 융합을 적극 지지합니다. 그러나 그 활용은 어디까지나 과학적 검증과 환자 안전의 원칙 위에 이뤄져야 하며, 직역 확대의 논리가 국민 건강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 체계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입니다. 그 운영과 제도 개선은 충분한 학문적 검토와 전문가적 합의를 거쳐야 합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다음과 같이 제언합니다
하나. 방사선의 안전관리는 의료기술 발전의 근간입니다.
둘, 의료행위와 방사선 사용 권한은 전문성, 임상 경험, 과학적 검증에 기반해야 합니다.
셋, 의료제도의 개선은 국민의 건강 보호와 환자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합니다.
넷, 정부와 국회는 의료법 개정 논의 시, 관련 학문단체와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앞으로도 의학적 근거와 윤리에 기반한 제언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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