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이하 추계위)는 12월 30일 제12차 회의를 열고 의사인력 수급추계 결과를 심의했고, 그 내용을 발표했다.
추계위의 발표에 따르면, 2040년 의사인력 부족 규모는 최소 5704명에서 최대 1만 1136명으로 전망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정부에서는 추계위의 수급추계 결과를 존중해 2027년 이후 의대정원 규모를 1월 중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이하 보정심)에서 논의해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이하 본 회)는 추계위의 어이없는 발표내용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추계위에 다수의 위원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황당한 결과를 회원과 국민들로 하여금 확인하게 한 대한의사협회의 무능과 안일함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추계위가 의사인력 수급 추계를 한 내용을 살펴보면, 현재 대한민국 의료 상황의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과거의 의료이용 및 공급 행태에 기반해 추계를 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의사인력 수요 추계는 입∙ 기반으로 산출한 전체 의료이용량을 활용해 수행했다고 밝혔는데, 이미 정부는 간호법 제정을 통해 PA 제도를 합법화시켰으므로 입원 의료 공급 영역에서 필요한 의사 인력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추계에 반영하지 않았다. 외래 의료 공급 영역의 경우에도 비대면 진료의 확대로 인해 필요한 의사 인력은 줄어들고 있으며, 정부의 요양병원 구조조정 및 돌봄 사업 확대로 인해 요양 관련 의료 공급에서도 필요한 의사 수는 빠르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나 이러한 부분들 역시 추계에 반영되지 않았다.
의사인력 공급 추계에서도 추계위는 의사의 유출을 전년도 면허의사의 사망률을 반영하고, 연간 이탈자에서 사망자를 분리해 순 은퇴자 수를 도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의사들은 사실상 사망하지 않는 한 은퇴를 하지 않을 정도로 고령 의사들의 활동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활동 의사 수를 추계했어야 함에도, 추계위는 과거 자료와 통계를 통해서만 판단해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추계위의 이번 발표는 대한민국 의료 현실과 미래에 다가올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채 과거의 자료와 의료 행태를 바탕으로만 계산된 오류투성이 결론이라고 볼 수밖에 없으므로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본 회를 비롯한 의사 회원들이 추계위 발표 내용을 보고 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미 이러한 결과 도출이 예견돼 있었음에도 제대로 된 대처를 전혀 하지 않은 대한의사협회의 무능과 안일함 때문이다.
추계위라는 조직은 직접 연구를 수행하는 조직이 아니라 추계된 내용을 보고 현실을 반영해 결론을 내놓는 사실상 정치적인 조직이기에, 연구 관련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임상 의료 현장을 잘 아는 의료 전문가들이 다수 포함돼 추계위 내부 논의 과정에서 의료 현실과 미래를 충분히 반영시켜서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따라서 대한의사협회는 추계위에 위원 추천 시 임상 의사들을 중심으로 추천했어야 마땅하지만 대부분 임상 의료 현실을 잘 알지 못하는 예방 및 보건 전공 교수들을 추천했고, 이로 인해 이번 추계위가 의료 현장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 중심으로만 채워지게 만들었다. 이는 사실 추계위 구성 초기부터 우려되었던 문제였음에도 이러한 문제점을 사전에 예측하지 못한 의협의 안일함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지난주 추계위 11차 회의 이후 언론을 통해 2040년 부족한 의사 수가 1만 8천여명 수준이라는 내용이 알려졌을 때, 의협은 이와 유사한 규모로 결론이 날 것을 예측하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추계를 요구하면서 기존 의협 추천 추계위원을 사퇴시키고 임상 의사 중심으로 새로운 위원들을 추천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도 의협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의협은 추계위 운영과 관련해 무능과 안일함으로 일관했고, 이는 정부가 의대정원 증원을 추진하는 명분을 확보하는데 협조한 행태이므로, 철저히 전체 의사 회원들의 권익을 침해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의대정원 증원 문제는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전 정권의 폭압에 맞서 자신들의 인생을 2년 가까이 희생하면서까지 막아낸 핵심 이슈이다. 이에 의협은 추계위 구성부터 신중해야 했고, 회의 진행 과정을 항상 예민하게 지켜보고 내용을 철저히 분석해 매 회의 결과마다 적극적인 대응을 했어야 함에도 적절한 대처를 하지 않음으로써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고귀한 희생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다.
이에 의협 집행부는 회원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1월 중 있을 보정심에서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직을 걸어서라도 모든 역량과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추계위에서 발표한 내용대로 보정심에서도 최종적으로 의대정원 증원이 결정된다면, 의협 집행부는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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