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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의약정 합의 훼손 규탄…“강행 시 의약분업 폐기가 마땅”

최근 환자 진료에 있어 필수적인 상당수 의약품들의 수급불안정으로 인해 의료현장의 혼란은 지속되고 있고, 제때 약을 복용하지 못하는 환자들의 피해는 커지고 있다. 

필수의약품의 수급불안정이 발생하는 원인은 원료 및 완제품 수급 불안정, 제조 및 품질 문제, 과다한 수요, 정부의 정책적 관리 미비, 낮은 약가로 인한 제약사 생산 유인 부족 등 다양하다. 

물론 타 선진국들에서도 의약품 수급불안정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대한민국에서 이 문제가 자주 발생하면서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 원인은 정부의 정책 실패와 낮은 약가 정책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정부와 국회에서는 의약품 수급불안정 문제 해결을 위해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문제 해결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대체조제 간소화 및 성분명 처방 의무화를 입법을 통해 강제하려 하고 있다. 

이미 지난 5월 보건복지부는 내년 2월부터 약사가 대체조제 사후 통보를 의사에게 직접 하는 방법 이외에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통보하고, 심평원이 의사에게 다시 대체조제 사실을 알리도록 하는 시행규칙 개정을 단행했다. 그리고 이러한 조치의 법적 근거를 확보하고 안정적인 예산 마련을 위해 일명 ‘대체조제 간소화법’을 국회와 논의해 입법한 후 보건복지위까지 통과시켰다.

현재 의약품 수급불안정으로 인해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의료기관과 약국 사이의 실시간 상의를 통해 환자의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처방과 조제가 이뤄지고 있고, 이 과정에서 합법적인 대체조제 역시 잘 이뤄지고 있다. 현재까지는 의약품 공급 불안정으로 인해 환자에게 투여되는 약제가 바뀔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처방한 의사가 이 사실을 즉시 인지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약제 변경에 대해 환자에게 대부분 설명도 이뤄지고 있어 약화사고 발생 시 빠른 대처가 가능한 상황이다.

그런데 대체조제 간소화가 시행되면, 약사는 대체조제와 관련해서 의사와 상의를 할 필요가 없어지고, 대체조제 사실이 약사에서 심평원을 거쳐 의사에게 전달되는 추가 과정 때문에 시간적인 지연은 불가피하며, 환자는 약제 변경 관련 정보의 흐름에서 소외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렇게 됐을 경우 약제 복용 초기 발생할 수 있는 약화사고에 환자는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고, 의사 또한 이 사실에 대한 인지가 늦어져 제대로 된 대처가 어려워진다. 게다가 의사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대체조제로 인해 발생한 약화 사고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짐에 따라 의료계와 약계의 분쟁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대체조제 간소화법 만으로도 심각한 상황에서 지난 9월 2일 더불어민주당 장종태 의원은 수급불안정의약품으로 지정된 경우에는 아무런 제한 없이 대체조제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의사와 치과의사를 대상으로 성분명 처방을 의무화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 시 징역 1년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의사가 환자 치료를 위한 약제를 선택할 때 만약 효과가 검증된 약제의 처방이 어렵다면, 약효가 검증되지 않은 제네릭 약제를 선택하는 대신 다른 성분의 약제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의사가 지고 있다. 그런데 장종태 의원의 법안대로라면 의사가 수급불안정 의약품을 선택하면, 성분명 처방을 하게 돼 어떤 제약회사의 약품이 환자에게 투여될지 전혀 알지 못하게 되므로, 수급불안정 의약품이 아닌 다른 약제 선택이라는 의학적 판단을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의사가 처방하는 약제가 수급불안정 약제라는 사실을 모른 채 상품명으로 약제를 처방하는 경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환자 치료를 위해 약제를 처방하는 선의의 행위 과정에서 단순히 약제를 성분명으로 처방하지 않았다고 의사에게 형사처벌까지 내리는 국가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즉, 장종태 의원이 발의한 성분명 처방 의무화법은 과잉 입법이며, 상식적으로 납득이 어려운 법안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대한민국 의약품 수급불안정 문제는 대체조제 간소화나 성분명 처방 의무화와 같은 황당한 조치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앞서 밝혔듯이 낮은 약가 정책과 정부의 정책 실패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신약 및 오리지널 약제 가격은 주요 선진국 7개 국가(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일본)와 비교했을 때, 64~6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대로 제네릭 약제의 경우 유럽에서는 제네릭 약제 가격이 오리지널 약제 대비 2~10% 수준이고, 미국은 10~30% 수준으로 매우 낮은 반면, 대한민국은 제네릭 약제 가격이 오리지널 약제 대비 50% 수준으로 높다. 심지어 일부 제네릭 약제는 오리지널 약제와 가격이 같거나 개량신약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더 비싼 경우도 있다.

여기에 더해 대한민국 식약처는 최저가 우선, 소수 낙찰, 단일 원산처 구조를 고집하는 경향이 높아 일부 약제는 제약회사 한곳만 흔들려도 전국적 품절이 발생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무균주사제나 소아용 약제 등 고정비와 품질관리비가 큰 품목에서 저가 강제, 일괄 낙찰, 단일 계약으로 인해 제조 유인이 약화되고 공급 중단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의약품 수급불안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격-공급-책임의 문제를 동시에 교정해야 한다. 오리지널 약제와 제네릭 약제의 비정상적인 상대가격을 외국 수준으로 교정해, 최소한 오리지널 약제만큼은 공급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제네릭 약제의 경우 원가와 품질을 공급비용에 반영해 상환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재설계 해야 하고, 단일 낙찰 원칙을 완화해 공급망을 다양화해야 한다. 또한 특정 필수 의약품의 경우 최소 3~6개월 정도의 사용분을 재고로 확보하도록 규정하고, 생산 부진 의약품 생산 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의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결국 정부와 국회가 진정으로 의약품 수급불안정 문제 해결을 위해서 노력할 의지가 있다면, 대한병원의사협의회(이하 본 회)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대체조제 간소화와 성분명 처방 의무화같이 문제 해결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황당한 정책과 입법만을 추진하고 있어, 과연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도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대체조제 간소화법과 성분명 처방 의무화법 추진이 더욱 황당한 이유는, 대체조제와 관련된 원칙은 2000년 의약분업 투쟁의 과정에서 의료계, 약계, 정부가 함께 논의해 맺었던 의약정 합의안으로 만들어진 원칙이라는 점이다. 즉, 대체조제와 관련해 원칙을 바꾸거나 없애려면 반드시 의약정 재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이러한 재합의 과정 없이 무리하게 법안이 만들어지고 정책이 추진된다면, 이는 곧 의약정 합의 폐기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의약분업 제도는 폐기돼야 마땅하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무리하게 강행했던 의료 농단으로 인해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은 회복할 수 없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이에 현재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은 의료 붕괴의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계와 치열하게 논의해 의료 정상화를 위한 근본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25년간 지켜져 왔던 합의안마저 무시하면서, 효과도 없고 오히려 국민 건강에 위해만 가해질 정책 추진과 법안 양산에만 몰두하는 정부와 국회의 만행은 규탄 받아 마땅하다.

지금이라도 국회는 대체조제 간소화법과 성분명 처방 의무화법을 폐기하고,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입법 활동에 매진해야 한다. 정부 또한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추진하려던 대체조제 간소화 계획을 철회하고, 보다 근본적인 의약품 수급불안정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에 돌입해야 한다. 본 회는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의약분업의 원칙마저 훼손하는 국회와 정부의 폭압에 끝까지 맞설 것이며, 정책 추진 및 법안 제정 강행 시 의약분업 폐지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임을 천명하는 바이다.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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