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의료는 많은 제약을 받으면서도 경제 성장과 함께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20세기의 한반도에서의 복잡한 격동과 함께 때로는 행정적인 뒷바침도 있었지만 때로는 오히려 행정이 의료의 발전에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현실을 의료의 획기적인 변혁과 함께 연계하여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세기에 우리나라에 있었던 의료계의 획기적인 변혁을 가져왔던 5가지 사건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는 구(舊) 한말에 현대의학인 서양의학을 제도적으로 정착시켰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현대의학이 비교적 빨리 정착할 수 있었으며, 특히 625사변으로 인한 UN군의 참전으로 우리나라에서 다른 분야보다 한발 앞서 의학이 가장 먼저 세계화의 물결을 수용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두번째로는 전문의제도의 정착이라 할 수 있다. 625사변 이후 미군 군의관과 함께 근무하면서 접하게 된 선진화 된 의학으로 세계화에 눈을 뜨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미국식 전문의 제도가 동양권에서는 가장 먼저 도입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현재에는 그 정도가 넘쳐서 세계에서 드물게 전의사전문의 시대에 돌입하게 되었지만 다른 한편 주치의(主治醫)의 부재 시대에 접어들게 되어 국민들 입장에서 본다면 건강상담의 단골 대상의(對象醫)를 갖지 못하는 의료의 혼란을 초래한 측면도 있다.
세번째는 의료보험의 도입을 들 수 있다. 의료보험은 1977년에 처음 출범하였지만 세계적으로 12년이라는 가장 짧은 기간동안에 전국민의료보험시대로 돌입하는 용감성(?)을 보였다. 의료보험의 도입으로 한국 의료계는 크나 큰 변혁의 시대를 맞았지만, 기존의 의약동체(醫藥同體)의 국민적 의료정서와 현대 의학 도입이후 지속되어 온 자유진료로 체질화 된 진료행태에서 수가 제정으로부터 심사 및 지불에 이르기까지 의료제공자와 의료수혜자 이외에 제3자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의료보험제도하의 진료행태로의 변화에 충분한 수용준비를 갖출 여유도 없이 확대되었다. 따라서 그러한 의료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어떤 측면에 있어서는 아직도 그 적응과정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기관 경영측면에 있어서는 일반 환자가 대부분이고 보험 환자는 일부에 지나지 않아 초창기에는 기존 의료정서에서의 의료 시혜차원에서 적응해 왔었다. 하지만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으로 확대된 이후에는 의료기관의 전 진료수입원을 기존의 저수가체제의 형태 그대로 보험자로부터 지급받게 됨에 따라 진료행위가 성직자 모델보다도 경제적 생존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료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의료기관은 규정내의 진료형태로는 경영이 어렵게 되자 재정적 보충을 비급여 개발로 적응하게 되었고, 이와 병행하여 정부와 보험자는 한정된 재정에만 모든 의료정책에 초점을 맞추어 보험행정을 강행하였으며, 그 단적인 예가 청구 결과로 나타난 통계를 이용하여 행정상 착오까지도 부당청구라는 이름으로 언론매체를 통하여 매도하여 결과적으로 국민들과 의료제공자와의 이간 분위기를 지속해 왔다.
네번째는 의료이원화를 행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한 한방정책관실의 설정이다. 1953년에 처음으로 제정된 의료법에 의한 의료의 이원화를 개선하기 위해 의료계에서 그 동안 의료일원화나 혹은 양•한방 협진을 통해 하나의 의료로 정착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이에 대한 노력에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정부가 앞장서서 이원화를 고착시킨 사건이 1993년에 일어났다. 의료정책에 관해서는 그 동안 의정국에서 일괄적으로 총괄해 왔지만 1993년에 한방을 분리하여 의정국내에 한방의료담당관을 분리하더니 1996년부터는 2급의 한방담당관실을 위관설정하여 차관직속으로 승격하였었다. 국민 건강을 위한 의료정책을 통괄해야 할 행정부 스스로가 의료를 이원화로 강화하였을 뿐 아니라 의료정책보다 상위기관으로 군림하게 제도화했다는 것은 과연 이 나라에 의료정책이 존재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국민 건강을 위한 보건정책인지 다시 한번 제고해야 할 문제이다.
다섯번째는 준비되지 않는 의약분업의 강제적 도입과 이로 인한 의료대란, 그리고 그 후폭풍으로 닥친 의보재정파탄의 연속이다. 모든 소비자 물가가 인상되고 있는 가운데 의료보험수가에만 의존해 의료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의료계만이 유독 3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그 후유증은 재정적으로 아직도 의료계를 압박할 뿐 아니라 제도권내의 재정압박은 결국 의료의 왜곡현상을 조장해 나갈 수밖에 없다.
현재 모든 경제정책이 시장경제 하에 운영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의료보험만은 사회보장 하에 운영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월이 지날수록 관치 형태로 강화되고 있다. 그 결과 불안정한 의료계내부 사정으로 인해 언젠가는 폭발의 개연성이 잠재하고 있다고 본다. 소위 말하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있는 상태에서는 땜질 형식의 처방으로는 백약이 무효할 뿐이다. 일반 통설에 의하면 처음 의료보험이 도입될 당시 보험재정의 안정성 때문에 보험수가를 그 당시의 관행수가의 약 50-70%를 기준으로 책정하였으며, 또한 의료행위의 원가와는 상관없이 초창기의 이 수준을 기준으로 매년 수가 조정시 의료기관 경영분석에 의해 도출되는 조정율에 의해서만 수가를 조정하는 형태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보험 초창기인 1977년의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소득은 1,009$에 지나지 안했지만 2003년에는 12,646$로 되어 국민들의 삶의 질은 그 당시보다 12배나 증가하였다. 하지만 통제속의 의료보험수가는 그 동안 조정율 누적이 7배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며 특히 초창기의 관행수가의 50-70%인 점을 감안한다면 의료관계의 삶의 질은 겨우 50%내외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2000년 이후의 변화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80년대에는 국민 1인당 소득이 년 평균 15.22%라는 고도 성장일때 의료수가는 8.85%로 겨우 58.1%에 지나지 않아 전국민의료보험으로 확대된 90년대 이후의 원천적 불실의 원인이 되고 있다. 2000년도 이후를 보아도 국가적으로는 IMF로 치명타를 입었지만 국민소득은 년 평균 7.93%의 신장을 보인데 비해 수가 조정율은 그 반정도에 지나지 않는 4.81%를 보이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의료계의 상대적 박탈감을 객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표 년도별 의료보험 수가 조정율과 국민 1인당 소득]
년도
의보수가
조정율(%)
의보수가 조정
누진율(%)
1인당국민소득 인상율(%)
국민 1인당
소득($)
1977
제정
100.00
0
1,009
1978(1979-1)
20.75
120.75
38.65
1,399
1979-2
11.14
134.20
16.94
1,636
1980
19.38
160.21
-2.32
1,598
1981
16.60
186.80
9.45
1,749
1982
7.10
200.07
5.60
1,847
1983
4.00
208.07
9.37
2,020
1984
0.00
208.07
8.42
2,190
1985
3.00
214.31
1.78
2,229
1986
3.00
220.74
14.40
2,550
1987
0.00
220.74
25.53
3,201
1988
12.20
247.67
33.33
4,268
1989
9.00
269.96
21.49
5,185
1990
7.00
288.86
13.52
5,886
1991
8.00
311.97
15.70
6,810
1992
5.98
330.63
5.48
7,183
1993
5.00
347.16
8.74
7,811
1994
5.80
367.29
15.20
8,998
1995-1
5.80
388.59
27.05
11,432
1996(1955-2)
11.82
434.53
6.69
12,197
1997-1
5.00
456.25
-8.37
11,176
1997(1997-2)
9.00
497.32
-
1998
3.50
514.72
-34.19
7,355
1999
9.00
561.05
28.32
9,438
2000-1
6.00
594.71
14.87
10,841
2000-2
9.20
649.42
-
2000-3
6.50
691.63
-
2001
7.08
740.60
-6.26
10,162
2002
-2.90
719.12
13.10
11,493
2003
2.97
740.48
10.03
12,646
2004
2.65
760.11
평균(‘78-89)
8.85
15.22
평균(‘90-99)
6.90
7.81
평균(‘00-03)
4.81
7.93
평균(전체)
7.27
11.25
* 주 : 1979년, 1995년, 1997년에는 년 2차례, 2000년에는 년 3차례 조정이 있었는데 반해
1978년, 1966년에는 조정이 없었음.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이를 개선하는데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될 몇 가지를 지적해 두고자 한다. 그 첫째는 의학의 목적은 인간을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따라서 건강과 질병에 대한 개념 정립이 중요하다. 물론 일부에서는 질병에 대한 접근방법에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현대 과학은 과거 거의 해명되기 어려웠던 부분 다시 말하면 신의 영역에 가까이 접근하고 있어 기존의 추상적인 추정이 현재에는 과학적으로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질병에 대한 접근은 그 질병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지 접근 방법에 따라 이원화로 문제해결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 결과 현재의 상황으로 보아서는 허(虛)와 실(實)에 의한 접근방법으로 인해 ‘건강에 대한 개념‘의 혼돈으로 건강의 개념에 대한 혼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결과적으로는 국민의 의료비가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는 하나의 의료로의 접근과 건전한 심신(心身)의 건강 개념에 의료계와 정부가 함께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두 번째로는 선진국의 정책을 도입하는데 있어서는 굉장히 적극적이지만 이를 유지•관리하는데 있어서는 다소 소원하다. 현대화의 가장 선두주자는 전문의제도 도입이다. 동양권에서는 가장 먼저 도입되었고, 또한 가장 철저하여 전 의사의 전문의화로 오히려 문제가 될 정도이다. 그러나 국가 의료정책에 있어서 1차 의료부재의 정책은 곧 국민을 위한 진정한 의료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의료인력 정책은 의료이원화 의학교육, 의과대학의 난립, 종합병원 경영을 위한 전문의 수련제도 등 모두가 국가의 의료인력 정책과는 거리가 먼 근시안적인 의료인력 양성체계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의료로 종합적으로 연계되는 의료인력 양성제도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의료수가와 의보재정의 관계이다. 과연 적정한 의료수가는 어디에 그 기준을 두어야 하느냐?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기업규모의 대형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직이나 또는 그 의료기관의 외형 수입에 관한 자료가 공개되어도 별로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의원급 의료기관에 있어서는 의료의 비정상적인 모든 책임을 전가할 뿐 아니라 의원의 수입을 곧바로 의사 개인의 수입으로 간주하고 오도하고 있다. 의원급도 그 규모가 작을 뿐 소규모의 기업이라 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1977년 당시의 일반 관행수가의 50%수준에서 수가가 결정된 이후 전국민 의료보험으로 확대될 때까지 한번도 원가 개념에서 검토한 일이 없이 오로지 경영분석 측면에 의해서만 전년도 대비 조정율만에 의해 정치적으로 조정해 온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특히 현대 과학의 발달에 의해 새로운 의료기기와 새로운 의료기술의 발달로 그 원가가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고 국민들의 욕구는 최상급만을 강요하고 있다. 한편 의료기관은 이러한 경제적 보완을 위해 비급여 개발이라는 변칙적인 운영을 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결과로 보험제도하에 본인부담율이 가장 높은 국가로 지목받고 있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이를 개선할 책임이 있는 정부는 국가의 통제권과 제재만을 강요하고 있을 뿐 의료발전을 위한 원활하게 가동될 수 있는 행정적인 연구는 도외시하고 있다. 보험재정도 중요하지만 의학발전의 기(氣)를 죽이는 정책은 지양하여야 한다.
부가적으로 한 가지 더 언급할 것은 의료보험운영에 있어서의 ‘시민단체’의 성격이다. 바람직하기는 이권단체에 관계되는 법률에는 해당 단체의 합립적인 의견을 수렴하는 기구가 필요하다. 의료보험법에도 과거에는 의료보험심의위원회의 구성원을 보면 보험자측과 의료제공자측, 그리고 이를 중재하는 정부나 연구기관 측에서 각각 동일한 인원수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왔었는데 최근에는 각종 위원회에 당연직으로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그 역할이 애매하다. 정부측이냐 아니면 보험자측이냐, 아니면 제3자의 위치냐에 따라 그 역할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현재에 보여지고 있는 형태는 안티(anti) 의료제공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역설적으로 말해 의료제공자를 고갈시키는 역할로 밖에 보이지를 않는다. 4천만 국민의 건강 지킴을 위해 건전한 의료보험의 정착을 위한 제도적인 안전장치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