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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환자를 내 가족처럼 생각한다면”

홍성수 의료윤리연구회장 “의사, 생명연구가 본업”


많은 의료계 이슈들로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는 요즘. 윤리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의사들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2년전 발족한 ‘의료윤리연구회’에 소속된 회원의사들로 그 중심에 신임 홍성수 의료윤리연구회 회장이 있다.

“모든 의사들이 환자를 내 가족, 내 친지, 내 절친한 친구처럼 대한다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그를 기자가 만나봤다.

의료윤리연구회장이 된 다음에 느끼는 감회와 각오는?
취임사에서 밝혔듯이 연구회가 앞으로도 계속 즐겁고 보람차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은 의사들이 참여해야 한다. 특히 젊은 의사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SNS나 연구회 카페활동 등을 활성화시킬 계획이다. 또 다양한 연제도 개발해 나가겠다.

의료윤리에 관심을 갖고 회장직까지 맡아서 활동하게 된 계기는?
개인적으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 관련된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30여년 가까이 진료일선에서 환자들을 대하면서 느끼는 점이 많았다. 항상 “어떻게 하면 의사와 환자가 좀 더 잘 소통할 수 있을까”하고 고민해왔다. 그러던 차에 같은 이비인후과 의사인 전임 이명진 회장의 권유를 받았다. 늘 갖고 있었던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해소해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됐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환자를 볼 생각이 있다면 이러한 소양을 더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료윤리는 동서양의 인문사회학적 윤리개념과 차이점은?
의료윤리를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네 가지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환자의 자율성, 둘째 악행금지, 쉽게 말해 환자들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는 것, 셋째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는 선행의 원칙, 넷째 정의의 원칙, 이렇게 네 가지가 서양 의료윤리의 4대 기본원칙이다. 일선 진료현장에서 어떻게 이것을 적용하는 지가 핵심가치라 생각한다.

여기서 보듯 의학은 원래 서양학문이기 때문에 의료윤리는 기본적으로 서양윤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동양윤리가 선비정신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면 서양윤리는 개인주의 사고관을 바탕으로 법치를 중요시 한다.

때문에 책임과 권리에 대한 개념이 명확한데 한국정서에는 아직도 선비정신을 중요시하는 동양윤리적 가치관이 매우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어서 의사들에게도 지나치게 높은 윤리기준을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사들이 각박해져만 가는 세상에서 동양적 사고에 바탕을 둔 선비의식을 갖고 있을수는 없다. 결국 동양윤리적 가치관에서 비롯된 한국국민정서와 서양윤리에서 비롯된 의료가 서로 충돌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내가 환자와 의료상담을 하고 약이 필요없겠다는 판단이 들어 약 처방을 안하면 왜 이야기만 하고 돈을 받냐고 화를 내는 환자들이 아직도 가끔 있다. 이러한 현상은 모두 동양윤리적 선비정신을 의사들에게 기대하는 한국정서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한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는지?
농담삼아 환자에게 “제 얼굴 보신 것만 해도 어딘데요”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또 “약을 먹어야 하는지 안 먹어도 되는지 판단하는 것도 다 의료행위라고 설명한다. 그래도 너무 화를 심하게 내는 환자는 가끔 그냥 돌려보내기도 한다.

사람들 정서에 권리와 의무의 균형이 잡혀있지 않은 것이 하나의 딜레마라고 생각한다.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것인데, 권리와 의무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가치관과 정의에 대한 소신은?
각자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한 점 부끄럼 없이 사는 것이다. 또 내가 받기 싫은 대접을 남한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혁명원칙이 자유, 평등, 박애인데 사실 어떻게 보면 자유와 평등은 양자가 정말 중요한 가치이면서도 극대화된다면 양립하기는 힘든 개념이다. 그러나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이 바로 박애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어떤 가치가 우선돼야 하는지 항상 고민해야 한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면 어느 항목을 살펴봐도 정의에 대한 결론이 없다. 한마디로 고민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끝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성찰의 시간을 갖고 그 다음에 실행을 해야한다고 믿는다.

의료윤리회의 주요 활동은?
의료윤리연구회는 어디까지나 공부모임이다. 그래서 공부 외에 특별한 활동을 하는 것은 없다.(웃음) 한달에 한번 변호사나 법대교수, 인문사회학 교수 등을 초청해 강의를 듣는다. 하루종일 환자를 진료해 지친 몸이지만 다들 즐겁고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분위기다. 공부도 파고들어서 학문적으로 성과를 내기 위해 연구를 한다기보다는 개원의사들이 중심이 돼 진료일선에서 느낄 수 있는 윤리적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공부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의대에서 교육받을 때는 윤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의료윤리라는 말이 부각된 게 불과 5,6년밖에 안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의료윤리에 대한 관심이 더욱 확대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의료윤리연구회장으로서 의료수가 등 한국의료체계에 대한 생각은?
진료일선에서 어떻게 환자를 대해야 하는가를 고민함과 동시에 “왜 우리는 적정수가나 도가니법에 대해 비판해야 하는가?” 하는 이론적 토대를 세우는 것이 연구회의 목표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낮은 의료수가 등 당연히 한국의료체계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환자를 진료하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의사가 가장 보람을 느끼고 잘할 수 있으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의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가 전문가들에게 베풀어서 동기와 의욕을 줘야할 부분도 있다. 그러한 것들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제대로 된 사회라고 생각한다.

우리 의사들의 윤리수준은? 또 의사들이 지녀야할 윤리적 가치기준은?
과거에나 현재에나 의사들이 특별히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집단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눈에 띄는 몇몇 사례에 의해 의료인들이 도매급으로 파렴치하게 취급당하는 게 문제다. 나도 의사지만 가끔 알려지는 일부 부도덕한 의사들이 저지른 사건사고들이 알려지면 한심스럽고 부끄럽다. 그러나 극히 일부사례인 그러한 사건들 때문에 의사전체가 욕을 먹는 것은 솔직히 억울하다.

언론이나 정부, 시민단체 등에서 침소봉대한다거나 선정적으로 다루는 것 때문에 지탄을 받는 것이 가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것도 남들 눈에 많이 띄는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의사들이 좀 더 높은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책임감은 분명히 느끼지만,일반 국민이나 언론이 좀 더 객관적으로 사건의 본질을 바라보길 바란다. 제도나 환경 등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 언론 역시 선정적 보도를 자제하길 바란다.


존엄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
기본적으로 안락사 또는 존엄사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기에 “얼마나 아름답게 죽을 수 있는가” 또는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확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엔 어머니가 뇌혈관계 질환으로 19년을 투병생활을 하셨다. 마지막 3~5년 동안은 정말 고통스럽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돌아가셨는데,그때 문득 든 생각이 “꽃같이 곱던 분이 저렇게 연명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존엄사에 대해 기본적으로 찬성하는 생각을 갖고 있음을 밝히며 좀 더 나아가서 사람들이 명료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의식이 있을 때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종교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부단한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같은 연구회가 있는 것이 아닌가.

윤리적 관점에서 의사사회의 문제점과 개선점은?
만성적 저수가 문제로 의료가 왜곡되는 현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의대에서도 높은 성적을 유지했던 최고의 수재들이 쌍커풀이나 점빼는 수술 등만 하는 현실. 생명을 다루는 내과나 외과, 신경외과 등은 비인기과로 전락해 전공의 수급조차 어려운 현실.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전문분야를 연구할 의사를 양성할 수 없는 현실. 이런 모든 문제들을 비쳐보면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너무나 불합리하고 의료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의대 상위권 학생들은 전부 성형외과, 피부과, 안과로만 가고 있다. 수입이 그쪽으로만 몰리니까 그쪽으로만 가는 것 아닌가. 외과 같은데 가면 먹고 살기도 힘들다. 자본주의를 완전히 무시하고 의사들에게 사명감만 강요해서는 안된다. 한국의료체계의 가장 큰 폐해는 무엇보다 그런식으로(미용성형 등에만 수재들이 몰림으로써)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에 인재들이 가는 것을 막는 것이다. 분명히 개선돼야 한다.

장-단기적으로 의료윤리연구회의 과제는 무엇?
우리 연구회는 이제 창립한지 2년밖에 안됐지만 모든 회원들이 바쁜시간을 쪼개 지금까지 정말 알차게 공부해 왔다. 바쁜 의사들이 매달 한번씩 모여 김밥 한줄 먹고 열심히 공부했는데 이러한 열의나 소중함을 끝까지 이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우리 회는 공부모임이니까 더욱 공부를 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해야한다.

마지막으로 당부할 말씀은?
모든 의사들이 환자들이 내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형이상학적 또는 철학적 논제를 제시할 필요도 없이 최선의 노력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갖고있는 의사로서의 소명이다.

덧붙여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의협에 있는 윤리위원회와 의료윤리연구회는 다르다. 가끔씩 특정사안에 대한 질문이 전임 이명진 회장이나 나한테 굉장히 많이 온다. 그러나 그러한 질문들에 대해 내가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부분만 개진하는 것이지 구체적 실행 방안을 정할 수는 없다.

그러한 판단은 권한과 체계를 갖고 있는 위원회가 할 일이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관찰자로서 또 연구자로서 의견을 포괄적으로 제시할 뿐이다.

나는 연구회가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성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물론이고 회원들에게도 발언을 할 때 조심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한편 지난 9월 3일 의협 동아홀에서 열린 의료윤리연구회 정기총회에서 신임회장에 선출된 홍성수 신임회장은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장, 의사협회 보험이사, 의료윤리연구회 운영위원 등을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