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사총연합(이하 전의총)이 성종호(청아정신과의원) 회원을 합류시켜 3인 공동대표 체제를 구축했다.
지난해 4월 28일 제2차 정기총회에서 강대식, 김성원, 이주병 회원을 공동대표로 선출했지만 이주병 공동대표가 의사협회 대외협력이사를 맡으면서 대표직을 사퇴해 10개월여 동안 2인 체제로 운영해오다가 성 대표를 영입한 것이다.
대국회 활동 강화에 주력하겠다는 성종호 새 공동대표를 메디포뉴스가 만나봤다.
봉직의로 근무하다가 개원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다소 늦게 트레이닝을 받고 정신과 전문병원에 취직해 근무했다. 그런데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알게됐다. 다른 의사들이 말하길 내가 환자진료에 적극적이었다는 것. 정신과는 특성상 환자를 느긋하게 봐야한다. 알코올 환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려고 6개월 정도 열심히 일했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환자도 기본적으로 5~6개월은 입원해야 하는데 의사가 적극적인 것 보다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한 병원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중학생 환자를 진료했는데 ADHD(주의력 결핍/과잉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Hyperactivity Disorder)라고 했다. 그런데 책에서 본 ADHD와 완전히 달라 당시 충격을 받았다. 정신과 의사인데 소아파트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당시 충격을 받고 일산병원에 펠로우로 들어갔다.
1년 정도 근무하고 개업하려고 하니 담당교수님이 개원스타일이 아니라고 반대했지만 개원을 고집했더니 그 교수님이 지금의 개원자리까지 정해줘 개원하게 됐다.
최근 개원 환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역시 많이 어려워졌다. 10년 전 병원을 개원할 때 앞건물에 병원이 네 곳이었는데 지금 한 곳 남았다. 그 한곳도 환자가 없어서 원장님이 문닫았다가 다시 열었는데 비뇨기과 선생님이 피부미용하려고 쉬었던 것 같다. 이후 현재 개원하고 있는 주엽역 부근에는 새로 들어온 곳이 없다. 일단 여기 들어오는 것 자체가 어렵고, 개인병원이 뭘 해보려고 해도 수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굴지의 대형제약사 회장의 딸도 소아과의사였는데 이곳에 개원했다가 문을 닫았다.
전의총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사실 386세대로 학생 때 데모도 하고 그랬다. 기본적으로는 그런 부분에 대해 생각이 많았지만 소아정신과 특성상 방과 후 오는 환자들을 늦게까지 진료하느라 6~7년 동안 개인적인 시간이 전혀 없었다. 집도 노원구에 있어 일산에 있는 의원까지 출퇴근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때는 차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세워놓고 시청하고, 차도에서 자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닥플을 들어가게 되고, 전의총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창립식까지 참석했다. 어쩌다 대표직까지 맡게됐지만 사실 난 비주류였다. 그러다 지난 해 투쟁 때 의협 노환규 회장과 정식으로 인사할 기회가 있었다. 노 회장이 천막치고 단식할 때였는데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 오전 10시쯤 의협에 갔다가 저녁까지 있으면서 일반회원 신분으로 모임마다 다 참여한 것이다.
학생 때 데모에 적극 나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중앙의대 84학번으로 당시 시대의 요구이자 소명이었다. 1986년 전후였으니 전두환 퇴임과 직선제 개헌 등 많은 정치적 이슈가 있었다. 그때는 의대생들도 수업 안하고 데모에 모두 참여하는 분위기였다.
전의총 대표를 맡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앞서 밝혔듯이 비주류의 일반회원으로 대표직을 맡을 때까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주병 대표가 의협에 들어가고 사실상 김성원 대표가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인 지난 5월 13일 상임이사회에서 결정됐다. 생각해보니 나말고 할만한 사람이 딱히 없기도 했다. 의협과의 관계에서도 일부 잡음이 나왔고 누군가가 수습을 하고 새로운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어 갑작스럽게 맡게 됐다. 이전에 경기도의원협회를 창립하고 일년 가까이 꾸려온 경험이 있다. 그 과정에서 다른 회원들이 나를 좋게 본 것 같다. 이 때문에 제안을 받았고, 두번째로는 50세 언저리인 내가 지금 시기에서 맡아줘야 다음 후배들이 올라온다고 생각했다. 바로 아래 친구들은 정말 똑똑한 친구들이 많지만 나이가 다소 부족하다.
경기도의원협회는 대행체제로 가는 것인가?
그렇다. 이호수 부회장이 회장 대행을 맡아 이끌고 있다.
전의총 대표에 합류하면서 앞으로 중점 계획은 무엇인가?
전의총에서 하고 있던 법적인 문제, 고발고소, 재판은 진행하고, 의료현안 대처 등 그대로 진행할 것이다. 특히 국회입법 활동에 진력하려 한다. 의료관련 법안발의 과정에서부터 전문가 단체로서 초기부터 개입해 주도면밀하게 심사하고 싶다. 대표 발의자나 공동발의자에게 연락해 문제점에 대해 면밀히 짚어줄 계획이다. 사실 국회의원에게 연락해 보면 자신이 발의한 법안에 대해서도 제대로된 현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 언론에도 적극적으로 자료를 제공해 기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의료현안에 대한 우리의 데이터나 소스들이 많은데 이것들도 언론에 상시적으로 보낼 것이다. 이를 위해 이번에 언론사들 연락처를 보충하기도 했다.
특히 입법팀과, 대언론 홍보팀, 젊은의사들을 위한 모임 등을 활성화시킬 것이다. 젊은의사, 의대생, 전공의들과 분기마다 1회 정도 만나면 각 그룹과 한 달에 한 번씩 만날수 있다. 젊은 의사들에게 의료현안에 대해 각성할 수 있는 모임을 진행할 계획이다.
의사사회가 달라져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의사들이 사실 편협한 면이 있다. 학생 때부터 본인이 알아서 공부하고 지금 자리까지 와서 그런지 너무나 자기중심적이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데 취약한 점이 있다. 그래서 융합도 어렵다. 전의총 대표에 취임하고 나서도 많은 의사들과 통화를 해봤는데 각자 생각이 비슷해보이면서도 달라 깜짝놀랐다.
다만 의사들이 사회성이 없다고 하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사회문제에 너무 관심이 적다고 할 수 있다. 의사들도 우리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사회문제에 동참하고,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게 무엇인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전문가로서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지 느껴야 한다. 의사들이 그런 생각도 하기 전에 의료수가 등에서 핍박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진전이 없는 것이다.
의료수가는 사실 돈을 적게 벌고 많이 벌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떤 행위를 할 때 의학적 지식에 맞는 행위를 해야 하는데 이것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의 문제다. 국내 의료정책의 핵심은 재정을 절감하는 것이다. 한정된 돈으로 알아서 하라는 것으로 공단과 심평원은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건보재정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다. 그런 역학을 의사에게 요구해 의사들이 힘들다는 것이다.
노환규 회장의 착한손, 자정선언을 지켜보는 회원의 시선이 다양한데 지향점은 올바른 의료제도의 항구적 정착이라면 방법론적으로 다른 것 같다.
전체적인 맥락은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시민단체와 손을 맞잡고 대화하는 의협 집행부가 없었다. 일반의사들은 비판적인 사람이 많지만 노환규 회장님이 회원들과 보폭을 좀 더 맞춰줬으면 좋겠다.
개업을 하고 청구프로그램을 치고 처음엔 개업을 잘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수입이 많았다. 그런데 사실은 계산을 잘못해서였다. 또 공단과 심평원의 심사도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트집을 잡고 들어오더라. 지난 10년간 개원가 사정도 많이 악화됐다. 처음 개원했을 때는 청구프로그램이 일년에 한번 업그레이드 됐지만 최근에는 수시로 업데이트 된다.
일례로 ADHD 관련 병명이 다섯개 있는데 사실 다섯개가 똑같은 병이다. 콘서타라는 약이 있는데 1000원이 넘는다. F909만 보험적용된다. 페니드란 약은 100원으로 똑 같은 약인데 보험이 된다. 약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약이 비싸냐 싸냐가 보험적용 기준이 되는데 그런 기준에 대해 의사들이 지금가지 자기만 알고 국민들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노환규 회장이 국민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정신과 의사로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나?
사실 전의총 활동을 시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스트레스가 없어졌다. 개업하고 나서 가려움증이 있어 지르텍을 가지고 다녔는데 전의총 사람들 만나서 어울리고 밥먹고, 이야기하다보니 스트레스가 풀려 가려움증도 없어졌다. 서로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대화하다 보니 그런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