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1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모 산부인과에 20여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들이닥쳐 주차장을 봉쇄하고 의료진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5억 원을 내놓지 않으면 병원에 불을 지르거나 차사고를 내 죽이겠다는 등 협박을 일삼는 진풍경이 일어났다.
사내들은 5억 원을 당장 지급하지 않으면 11월 19일부터는 더 본격적인 집단적 무력행사에 들어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이 병원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해당병원에 따르면 지난 10월 8일 이 병원에서 Y라는 산모가 출산을 했다. 그런데 산모가 급속분만을 하게되어 출혈이 있었고, 자궁 무기력증으로 인해 지혈이 용이하지 않아 즉시인근 상급종합병원인 S병원으로 전원조치 했다.
담당 산모의 주치의 J가 다행히 S병원의 산부인과전문의 출신이라 빠르게 응급 대처할 수 있도록 조치해 수술실로 옮겼지만 S병원에서도 지혈이 용이하지 않아 보호자의 동의하에 결국 자궁적출을 시행하고 말았다.
산모는 다행히 회복이 빨라 5일 만에 S병원에서 건강하게 퇴원했고 그 기간 동안 아기는 산부인과병원에서 돌보고 있었다.
해당 산부인과는 병원에서 출산 후 자궁을 적출하게 된 케이스라 병원 직원 두 사람이 산모가 입원해있는 S병원에 병문안을 가 쾌유를 빌고 돌아 왔다고 밝혔다.
그런데 문제는 3일이 지난 후 산모의 남편인 K씨가 산부인과병원에 대해 본인 사무실로 찾아오라고 연락하면서 시작됐다.
산부인과에 따르면 ‘대한민국 특수 임무 유공자회 강남지회장’이라고 소개한 Y산모의 남편 K씨는 이번 건에 대해 의료사고라고 주장하며 5억 원의 보상금을 요구했다. 또 “그 어떠한 법적 절차를 원하지 않으며 보상이 적절치 않을 시 협회 차원에서 집회를 하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병원은 이 건은 의료사고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K씨에게 차라리 보험사에 이 건을 의뢰해 정확한 판단을 받고 의사의 과실이 인정되면 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K씨는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즉시 5억 원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11월 11일 오전, 병원 직원이 K씨의 사무실을 찾아가 접촉을 시도했지만 돌아온 것은 욕설과 함께 강제로 쫓겨난 것뿐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오후 1시경 ‘대한민국 특수 임무 유공자회 강남지회’의 사무처장을 위시해 20여명의 건장한 남자 회원들이 병원에 들이닥쳐 주차장을 봉쇄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등 난장판을 만들고 돌아간 것이다.
산부인과병원은 자문 변호사와도 긴밀히 의논해봤지만 “민·형사 고발을 해 봤자 전문적으로 집회를 하는 사람들이라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풀려 나와도 계속 찾아와 행패를 부릴 것이 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실제로 ‘대한민국 특수 임무 유공자회 강남지회’ 회원들은 배석하고 있던 형사에게도 “X새끼야 넌 빠져”라고 위협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Y 산모와 아기가 건강한 상태를 유지있는 현 상황에서도 회원들은 “사람을 죽인 병원이라는 허위 사실 유포와 함께 관을 짜 와서 병원 앞에서 시위를 하겠다는 협박을 계속 하고 있다”고 병원은 말했다.
해당 산부인과 관계자는 “모든 전문가들이 이번 산모의 출산사례를 로컬 병원의 빠른 대처와 3차 기관의 협력으로 산모의 생명을 살린 좋은 사례로 거론하고 있는데도 본 건을 의료사고라고 규정하고 턱없는 액수를 요구하며 협박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억울하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 사연은 현재 해당 산부인과의 행정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원장의 부인이 청와대 신문고에 올린 상태이다.
'대한민국 특수 임무 유공자회' 회원들이 병원에 찾아와 집단적 무력행사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힌 19일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
원장 부인은 “저희가 받은 협박에 대해 동영상, 녹취록, 사진을 증거물로 보관하고 있다”며 “본 건의 정확한 진위를 빠른 시일 내에 파악해 조치해 달라”고 강력히 건의했다.
또 “국가 유공자 단체에 몸담고 있는 분들이 사적인 사유로 금품을 요구하며, 병원에 난입하며 이런 행동을 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국가차원에서 답변해달라”고 밝혔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회장 박노준)도 이번 사건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며 분만실을 운영하는 산부인과 의사라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라는데 공감하며, 사건의 객관적 조사와 병원 내 난동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을 촉구하기로 결의했다.
김재연 법제이사는 병원에서 폭행이나 난동 등을 부리거나 협박하면 쉽게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더 이상 통용 되어서는 안되도록 강력한 공권력의 엄정한 대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박노준 회장은 대한민국이 법치 국가라는 점을 실감하며 분만 산부인과 의사들이 안심하고 분만할 수 있는 환경조성이 필요하다고 밝히며, 관련 기관의 적극적인 대처와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