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원협회(회장 윤용선 이하 의원협회)가 정부의 공공의료 부재에 대한 책임이 의사들에게 전가되어 의사들이 정부 대신 국민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다며 정부를 강력히 비판했다.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가 최근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 국적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것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안 선수가 최고의 실력을 갖고도 우리나라에서 꿈을 펼치지 못한 이유를 살펴야 한다”며 파벌주의, 줄세우기, 심판부정 등 체육계 저변에 깔려 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을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의원협회는 17일 논평을 통해 “안현수 선수의 활약,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의사들은 남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안현수 선수의 상황에 빗대 우리나라 의료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의원협회는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지출과 건강보험으로 구성된 우리나라의 공공의료비의 비율이 대단히 낮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원협회가 밝힌 대로 우리나라의 전체 의료비 중 공공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대단히 낮아 다른 나라 28개국 평균이 72.2%인 반면, 우리나라는 55.3%에 불과하다. 전체 병상 중 공공병상이 차지하는 비율 역시 10.4%로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전체의료비의 70% 이상을 공공의료비로 부담하고 전체 병상 중 60~70% 이상을 공공의료기관이 담당하고 있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민간의료비 비율이 매우 높아 의료의 대부분을 민간의료기관이 담당하고 있는 것.
의원협회는 “공공의료비가 낮고 공공의료기관이 적다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부분을 그만큼 민간이 대신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처럼 의료제도를 실행하기 위해 공공의료를 충분히 확보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사회보험제도를 실행했다”고 그 원인을 지적했다.
지난 1989년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료가 매우 낮은 상태에서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를 시행했기 때문에 정부가 전 국민에게 보험혜택을 주기 위한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와 저수가 정책이라는 두 가지 편법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의원협회는 “충분한 재정지원 없이 민간의료기관에 의존하는 불합리한 정책기조는 지금도 그대로 이어져 국민들은 큰 병에 걸리면 큰 비용지출로 인해 고통을 받고, 민간의료기관은 당연지정제에 묶여 저수가를 강요받으며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고 현 상황을 비판했다.
이어 “이 때문에 정부가 할 몫을 대신하는 우리나라 민간의료기관은 당연히 칭찬을 받고 적절한 상과 지원을 받아야 함에도 현실은 오히려 정부는 물론 시민단체, 언론, 정치인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은 물론 국민들로부터의 신뢰 조차 점점 잃어가고 있다”고 억울함을 나타냈다.
정부가 민간의료기관을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로 옭아매고 건정심을 통해 저수가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의사들에 대한 도덕적 공격을 통해 모든 문제가 공급자에게 있는 양 시선을 분산시켜 자신들의 책임을 은폐시켰다는 것이다.
의원협회는 “정부가 의사를 허위청구 부당청구를 일삼는 탈세의 주범이자 행위별수가제로 무분별하게 행위를 증가시키고 잘못된 처방행태로 약제비까지 증가시키는 것처럼 사실을 호도했다”고 분노를 나타냈다.
또한 “정치인들 역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의사를 사회적 강자로 포장해 정부와 함께 공격했고, 언론 역시 마찬가지로 의사들을 대한 결과 국민들이 의사들을 적대시 하게 됐다”고 억울함을 나타냈다.
의원협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파벌주의, 심판부정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 “정부, 정치권, 시민단체, 언론이 한편이 되어 의료계를 의도적으로 왕따시키는 것이 바로 파벌주의이고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나 비민주적인 건정심과 같은 제도가 바로 심판부정”이라고 일침했다.
이어 “제대로 된 정부라면 공공의료를 강화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민간의료기관과 의료인에 대해 최대한의 고마움을 표시하고 적극적인 보상과 지원을 실행해야 하지만 오히려 최근에 들어서는 원격진료나 자법인 설립과 같은 정책으로 의료계를 더욱 뒤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원협회는 “어쩔 수 없이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처럼, 대한민국 의사들은 지금이라도 기회가 된다면 대한민국을 떠나거나 의사 자체를 포기하고 싶어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안 선수가 귀화한 이유를 조사하라는 대통령 자신이 바로 의사들의 대대적인 엑소더스를 유도하는 주역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