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의 공백을 이용해 사무장병원이 날이 갈수록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사무장병원으로 인한 막대한 건보재정 누수를 막기 위해 건보공단에 전담부서를 신설하는 등 특단의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법무지원실 김준래 변호사(사진)는 최근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사무장병원의 폐해를 막기 위해 법·제도적 지원마련이 시급하며 특히 건보재정을 관리하는 건보공단에 전담부서를 신설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과거의 전통적인 방식의 사무장병원 형태라면 의료법 상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는 비의료인이 의사의 명의를 빌려 의료기관을 개설해 의료인을 고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자격자인 비의료인이 사실상 의료기관을 개설하고 운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준래 변호사에 따르면 최근 사무장병원들은 이런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교묘히 법망을 피해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그가 첫 번째로 제시한 신종 사무장병원의 대표적 유형은 ‘오너형’ 방식으로 우리나라 의료법이 1인 1개소 원칙을 고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다른 의사를 고용해 복수의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경우’를 말한다.
즉, 이미 자신의 이름으로 병원을 개설해 운영 중인 A의사가 다른 병원을 개설하기 위해 B의사를 고용해 B의사의 명의로 병원을 개설하고 운영비용을 모두 부담하며 실질적으로 병원 운영을 하는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대표원장이 전국에 여러 병원을 두고 다른 의사를 원장으로 내세워 ‘실질적으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오너형 사무장 병원에서 각 지점 병원의 원장은 직함만 원장일 뿐 사실은 한 대표원장에게 고용된 ‘바지사장’에 불과하다. 이들이 수익의 일부만 갖고 매출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는 탓에 의사들이 ‘과잉의료’의 주범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김준래 변호사가 제시한 또 다른 유형은 여러 사람이 지분을 갖고 참여하는 ‘조합형 사무장병원.’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나라 의료법의 ‘1인 1개소 원칙’에 따라 한 사람 명의의 한 개의 병원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사람이 지분을 투자한 방식으로 의료법 위반에 해당한다. 이런 식으로 한 사람이 전국에 걸쳐 10여개의 병원 지분을 투자한 경우도 있다.
김 변호사는 또 “각각 다른 병원들이 하나의 병원그룹에 속한 것처럼 보이는 ‘프렌차이즈형 사무장병원’ 형태 역시 횡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은 각각 다른 의사가 운영하는 별개의 병원이지만 공동의 이름을 써 마치 하나의 병원그룹인 것처럼 보이도록 해 브랜드 가치를 올리고 공동마케팅과 공동구매 등을 전개하는 등 시너지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김준래 변호사는 “현재 의료법은 ‘오너형’과 ‘조합형’ 모두 불가하다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프렌차이즈형 병원’은 가능한 것으로 해석된다”면서 또 “오너형 사무장병원에 대한 판례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지만 너무나 방대해 일일이 다 설명하기는 힘들다”라고만 전했다.
그는 또 다른 사무장 병원 유형으로 “법인이 의사 이름으로 자연인인 의사를 고용해 그 의사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경우도 있다”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비영리법인인데 정관상 의료사업을 못하게 돼있는 비영리법인이 의사 개인의 명의를 빌려 사실상 병원 운영을 해 수익을 올리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와 반대로 “의사들이 법인 명의를 빌려 병원을 개설·운영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의사가 신용불량자이거나 하는 경우엔 의사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해 수익을 내더라도 그 수익을 채권자가 다 압류해버리기 때문에 차라리 법인명의를 빌려 병원을 운영하는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김준래 변호사는 또 다른 특별한 케이스로 자신이 직접 원고인 공단 측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했던 ‘동업형 사무장병원 사건’에 대해 설명하며 “불법인지 합법인지를 판단하기 매우 어려운 경우”라고 소개했다.
김 변호사는 “원래는 무자격자를 고용해 약을 조제한 사실이 적발된 한 병원과 이로 인한 요양급여 환수처분 소송을 진행 중이었는데 소송 과정에서 상대측 변호사가 이 병원에 투자해 동업형태로 의료기관을 운영해 온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소송 진행 도중 처분을 취소하고 의료법상 요양기관 개설기준 위반으로 고지해 승소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준래 변호사는 “이 사건은 최초의 ‘동업형 사무장병원’ 케이스로 기록 됐다”며 “이 분야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일반인은 고사하고 법률전문가 조차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까다로운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사무장병원은 아니지만 여기서 변형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출장검진’ 방식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김준래 변호사는 “병원에 출장검진팀이 따로 없는 경우 임상병리사가 의사나 간호사를 고용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출장검진을 한 후에 정식으로 요양기관을 개설한 것이 아니라서 요양급여를 청구할 수 없으니 고용했던 의사 명의로 청구하고 그 수입 중 일부를 의사에게 떼주는 방식이다”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사실 이 경우는 요양기관 개설기준 위반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의료법 상 의료인이 의료업을 하려면 자신이 개설한 병원에서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의료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지금까지의 판례를 살펴보면, 지난 2009년부터 봉직의에 대해서는 개원의보다 필요한 경우 다른 의료기관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이는 의료를 새로운 신성장동력으로 활성화해야 한다는 정부 정책 기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김준래 변호사는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사무장병원들이 의료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고 말해 이 문제에 대해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다.
또한 공단이 지금까지 사무장병원을 포착하고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이유로 “요양급여 환수율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요양급여를 다 지급하고 난 후 뒤늦게 사무장병원을 포착해봤자 수사과정에서 재산을 다 빼돌려버려 환수해도 껍데기만 남는 사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라고 토로했다.
김준래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제보를 받고도 좀처럼 출동하지 않는 현재 풍토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매우 어렵다. 일단 우선적으로 공단과 수사기관이 지금보다 협조체제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여러 기관이 공조한 TFT을 설치해 사무장병원이 포착됐을 때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사무장병원 적발은 무엇보다 빠른 대처가 중요하다. 건보재정을 관리하는 보험자 기관인 건보공단이 막대한 재정누수를 막기 위해 사무장병원을 전담하는 부서를 신설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김준래 변호사는 “과잉의료를 남발하는 사무장병원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는 다름 아닌 국민들”이라면서 “사무장병원으로 인한 재정누수를 차단해 이 돈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 국민에게 이로운 사업에 투자하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