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7월부터 의무적용 예정인 도매업체 대상 의약품 일련번호 제도 시행을 앞두고, 갈등을 빚고 있는 유통업체와 정부측 간에 입장차는 전혀 좁혀지지 않는 모양새다.
지난 3월 23일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 추최하에 의약품 일련번호 제도 정책 토론회가 열렸고, 토론회에서 유통협회는 도매업체의 의무적용이 정해진 후 약 2년여의 기간 동안 관련 단체와 수도 없는 조율의 장을 마련해 의견을 나눴지만 정작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온 현재까지 개선된 부분이 전혀 없어 답답한 노릇이라며 입장을 전한 바 있다.
토론회가 열린 지 2주가 지난 지금, 유통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토론회 이후 정부 측과 전혀 개선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메디포뉴스는 이 제도의 시행 취지와 쟁점 그리고 유통협회 측이 정부에 요구하는 개선안 등을 정리해 보았다.
의약품 일련번호 제도는 의약품 유통의 투명화를 위해 최소포장 단위 개별 의약품에 고유번호를 부여하여, 생산부터 국민에게 복용될 때까지 전체 유통단계를 실시간으로 이력 추적하는 취지로 도입되었다.
다시 말하면, 제약사가 의약품을 생산하는 순간부터 유통업체를 통해 각 요양기관으로, 요양기관에서 환자에까지 전달되는 모든 루트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제도이다.
현재는 제약사가 지난 해 7월부터 의무보고를 시작해 생산 즉시 심평원 의약품정보센터에 보고를 하고 있는 상황으로, 올 7월에는 순차적으로 유통업체의 의무보고, 그리고 종국에는 요양기관과 의약품정보센터와의 데이터 구축까지 진행되어야 이 제도의 취지가 성립되는 것이다.
시행이야 순차적으로 진행된다지만 결국 제약사, 유통업체, 요양기관 이렇게 세 주체가 모두 이 시스템 안에서 '정보 교류의 의무'를 부여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며 이미 제약사의 의무보고가 시행되고 있는 지금 유통업체 측이 이렇게까지 반발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제도 시행에 앞서 유통협회가 정부에 요구하는 전제 사항은▲일련번호 정보를 담은 '툴'을 규격화하여 통일해 달라 ▲24시간 실시간 보고를 개선해 달라 ▲관련 행정처분 규정을 명확히 해달라 ▲요양기관에 현 제도 시행에 대한 인식 확산을 위한 적극적인 홍보를 해달라 등 몇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제약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2D 바코드와 RFID를 규격화하여 하나로 통일해 달라는 요구이다. 한국에프디시법제학회 권경희 회장에 따르면 2017년 3월 기준 RFID를 채택하여 사용 중인 제약사 혹은 수입사는 총 17곳, 나머지는 모두 2D 바코드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두 가지 방식이 혼재되어 있는 상황인 것이다.
시장 원리로 보자면 문제될 게 없는 사안이다. 게다가 RFID 도입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적극 권고하여 도입한 제도가 아닌가? 이제와서 또다시 하나의 방식으로 통일을 시킨다는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란 건 유통업체들도 이해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일선에서 이 두 가지 방식을 모두 다뤄야 하는 유통업계 노동자들에겐 가장 중대하고 피부에 와닿는 문제이다. 업무의 강도는 증가하고, 시간은 지연되며, 능률은 당연히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유통협회 관계자는 2D 바코드와 RFID는 제각기 규격이 다르고 리더기마다 인식 정도가 다르다며, 유통협회의 시뮬레이션 결과 현재의 규정대로 두 가지 '툴' 모두를 핸들링하며 제도가 시행된다면 동일 물량에도 작업시간은 약 2배가량 증가하게 된다고 전했다.
이런 결과는 자동적으로 현재 1일 2~3배송을 하고 있는 유통업체의 배송에 지연을 초래할 것이며, 결국 유통대란으로 인해 환자에게 제때 의약품이 전달되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지금껏 제약사로부터만 정보를 보고 받았던 심평원 의약품정보센터의 시스템이 유통업체까지 일시에 확장될 경우 온전히 그 정보량을 수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입장도 있었다. 단 한 건의 오류라도 업체 입장에서는 작업이 올스톱되는 결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문에 대해 현재 심평원은 유통업체의 의무보고 시행에 앞서 의약품정보센터의 서버를 확충했으며, 시뮬레이션 결과 제도 시행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유통업체 측의 우려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실제 유통업계에선 가장 규모가 큰 한 업체가 약 30억 가량을 투자해 시스템을 갖추고 우선 시행을 해본 결과, 제약사에서 정보센터로 보고한 내용이 유통업체 측에서는 업데이트 되지 않은 것으로 나와 작업이 정지되는 사태가 있었고 지난 국회 토론회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기에 유통업체 측에서는 이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유통협회 관계자는 이 제도의 취지도 이해하고 시행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며, 다만 시행 전에 당연하게 예상되는 문제점들에 대해 충분히 검토한 후 개선할 부분을 개선한 후 시행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보였다.
유통업체가 요구하는 나머지 사항들은 모두 그 개념이 맞닿아 있다.
현재 규정대로라면 24시간 실시간 보고를 한 후 보고사항에 오류가 있을 경우 수정 보고는 익일까지 허용된다고 하는데, 현재의 유통업체와 요양기관과의 거래 관례상 반품이나 회수, 폐기되는 의약품에 대한 24시간 실시간 보고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의무사항이니 규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 변화된 거래 방식을 요양기관에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데, 현재 요양기관에서의 이 제도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안 되어 있어 이로 인한 거래상의 불이익이 불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유통업체 측은 정부가 요양기관에 대한 일련번호제 인식 확산을 위한 적극적인 홍보를 함께 진행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유통협회 관계자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충분히 검토해야 하는 부분으로 행정처분에 대한 명확한 규정 요구를 들었다.
현재 규정인 24시간 실시간 보고의무는 유통업체 측이 고의가 아닌 오류나 절차상의 지연 문제로 위반을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규정 위반 시 '고의'에 의한 위반인지, 단순 오류나 실수에 의한 위반인지를 구분하고 그에 따른 행정처분을 달리하는 구체적인 명시가 없어 유통업체들 사이에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고, 고의가 아니더라도 오류나 실수는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기에 그에 따른 명확한 규정을 명시해 달라는 입장인 것이다.
대부분의 유통업체가 제도 시행에 대해 받아들이고 있고, 대형 유통업체의 경우 수십 억을 들여 이미 시스템을 구비해 놓은 상태로 제도가 시행되는 7월을 준비하고 있지만 지난 2년여간 유통업체 측이 제시한 그 어떠한 개선안도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다른 방식의 정부 지원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그저 제도 시행을 밀어부치는 정부의 태도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입장인 것이다.
이제 제도 시행까지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유통업계의 요구가 어느 정도 수용될 수 있을지, 정부가 관련 이해 단체 간의 조율자 역할을 제대로 해내어 의약품 일련번호제를 무사히 안착시킬 수 있을지 그 행보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