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든 지금, 전 세계 산업계는 ‘융합’이라는 키워드 아래 전면적인 산업구조 재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제약산업도 다르지 않다.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중심으로 산학연 전반에 걸친 교류가 활성화되고 혁신 신약의 연구개발을 위해 전방위적인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산업에서 글로벌화가 이미 진행된 이상, ‘전방위적’ 협력에는 국내 산학연뿐 아니라 글로벌 제약사들 또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국내 제약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단계부터 글로벌 제약사와 공동연구를 추진하고, 국내 임상기관에 있어 글로벌 제약사의 투자를 확대시키는 등의 방안이 필수적”이라고 전하며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력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따라서 한국의 제약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국내에서 활동 중인 글로벌 제약사들을 대표하는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이하, KRPIA)의 역할이 더욱더 중요해진 것이다.
이에 메디포뉴스는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김옥연 회장(한국얀센 대표)을 만나 협회가 국내에서 이뤄온 그간의 성과와 노력, 그리고 최근 국내 제약업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윤리경영’에 대한 협회장의 철학과 국내 제약산업 발전을 위한 협회와의 협력 방안들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 최근 KRPIA는 한글 이름을 예전의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에서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로 변경한 바 있다. 협회의 한글 명칭 변경에 어떤 의의가 있는지?
협회의 영문 이름은 ‘Korea Research-based Pharmaceutical Industry Association’이다. “Research-based”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협회의 원 취지는 혁신적인 신약개발에 힘쓰는 ‘연구중심’ 글로벌 제약기업들의 모임이다.
하지만 처음 협회가 설립된 1999년 당시에는 국내 연구활동이 미비한 상황으로 ‘연구중심’이란 용어를 사용하기에는 다수의 인식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글로벌화 이전으로 여러 국가에서 온 글로벌 기업들을 대변할 수 있는 명칭으로 ‘다국적’이란 단어가 사용된 것 같다.
그러나 이후 국내에서도 연구개발 활동이 시작되었고, 글로벌화가 본격적으로 자리잡았으며, 무엇보다 ‘다국적 기업’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인 인식이 만연하여 명칭 변경에 대한 지속적인 의견 제기가 있어 왔다.
따라서 협회는 이해관계자의 동의를 얻어 지난 3월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새로운 한글이름을 승인 받아 등기 절차를 완료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글로벌화’는 더욱 중요시되고 있으며, 이러한 최신 제약산업계의 방향성을 조금이라도 담고자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로 변경하게 된 것이다.
◈ KRPIA가 그간 국내에서 이뤄온 성과를 소개한다면?
협회는 그간 국내 연구개발 역량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지속해 왔다. 국내 제약사들의 임상 수준이 이렇듯 빠르게 향상된 데는 글로벌 제약사들의 공이 컸다. 현재는 한국, 특히 서울의 경우 임상 수준이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지만, 1980~90년대에는 국내 임상연구 수준이 높지 않았다.
90년대에 걸쳐 국내에 처음으로 임상시험에 대한 지식이 도입되고, 인증을 받고, 임상센터들이 생기며 국내 제약사들의 임상 수준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향상됐다. 이러한 성장은 글로벌 제약사들의 적극적인 교육뿐 아니라 임상연구 참여가 그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글로벌 제약사의 임상 참여라고 해도 3상 임상에서의 참여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초기 임상을 한국에서 시작할 만큼 우리나라 임상연구 역량은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진화했다.
글로벌 제약사의 혁신 신약에 대한 초기 임상을 국내에서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수준의 국제적인 신뢰성을 획득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초기 임상연구들이 전 세계에 발표되고, 그 결과들이 모여 국내 임상연구 역량이 국제적으로 인정 받는 것임으로, 글로벌 제약사의 임상 참여는 앞으로도 국내 제약산업 역량 강화에 지대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 최근 국내 제약업계에서는 ‘윤리경영’에 대한 이슈가 한창이다. 현재 글로벌 제약사의 대표이기도 한 협회장님의 ‘윤리경영’에 대한 철학은 무엇인지 그리고 제약계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협회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무엇이 있는지?
현재 굴지의 제약사로 자리잡은 글로벌 제약사들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윤리경영’이 장기적으로 기업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필수적인 가치임을 알고 있다. 단기적인 성과를 쫓아 윤리적 경영을 소홀히 한 기업들은 머지않아 기업의 존폐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도 ‘경영’과 ‘윤리’는 함께 가야 하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기업 경영에 있어 윤리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은 소비자로부터 외면 받게 되어 있다. 이제는 기업의 ‘윤리경영’이 결과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이러한 점을 국내 기업들도 잘 인식하고 있으며, 그런 결과로 윤리경영에 대한 자정 노력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KRPIA는 국내에서 업계 내 공정경쟁규약을 만든 최초의 단체이다. 규약을 만들었던 2002년 당시 법적인 규제가 없었음에도 경영의 윤리성에 대한 대중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체적으로 규약을 만들었으며, 이런 협회의 노력은 2006년 국가기관에 공식적인 승인을 받으며 인정됐다.
이런 면에서 KRPIA는 새로운 윤리규정을 처음으로 만든 단체로서 사회적 기여도에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이후 국내의 다른 협회들도 KRPIA의 규정을 근거로 하여 자체 기준을 만들었고 이런 면에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일반적으로 다른 산업군에 비해 제약산업에서의 윤리 기준이 한층 더 엄격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자정 노력을 시행해 왔고 그런 과정에서 관련 단체와의 오해나 시행착오가 있어 왔다.
이런 제약사들의 자정노력에 대해 의료계와의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어 있지 못해 생겨난 일련의 일들도 있다. 제약사의 기준과 의학회의 기준이 맞지 않아 생겨난 갈등이 있지만, 앞으로 윤리경영 기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협회도 더욱 노력할 것이다.
◈ 국내 제약업계는 내년부터 일명 한국판 '선샤인액트(Sunshine-Act)' 시행을 앞두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 대표로서 미국의 '선샤인액트(Sunshine-Act)'와 비교해 다른 점이 있다면?
전반적인 시행 취지에 있어서는 비슷하지만 시행하는 데 있어 구체적인 기준는 한국판 선샤인액트가 더 엄격한 것 같다. 세부적인 부분까지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안 되고가 나눠져 있어 다른 국가의 CP 담당자들이 놀랄 정도다.
내용 면에서는 우리가 더 엄격하지만 미국의 선샤인액트 경우에는 그러한 정보들이 개인 단위로 대중에 공개되는 수준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시행되는 한국판 선샤인액트는 대중의 공개가 아닌 정부에 대한 ‘보고’의 개념이어서 이런 부분이 좀 다른 것 같다.
◈ 최근 협회 회원사 중 하나가 리베이트와 관련되어 연일 이슈가 되고 있다, 협회 차원에서의 처분 계획이 있는지?
그 부분과 관련하여 이미 내부적으로 두세 차례 논의가 있었다. KRPIA 정관에는 현재 법 위반 회원사에 대한 제재 규정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해당 회원사가 무죄를 주장하고 있고,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사건에 대해 협회 차원에서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판결이 완료되고 위반의 내용과 성격이 규정되면 정관에 따라 어느 정도의 제재를 취할지 논의할 예정이다.
◈ 최근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여 제약산업이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핵심 가치를 내세우며 발전 방향을 잡았다. 국내 제약산업과의 연계를 위해 KRPIA가 하고 있는 노력과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국내 기업들과 글로벌 제약사와의 정보 교류를 위한 장을 마련하는 것이 협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KRPIA가 하고 있는 대표적인 예가 ‘KPAC(한국 제약산업 공동 컨퍼런스)’이다.
KRPIA와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국내 제약기술을 다른 나라와 교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14년을 시작으로 매년 K-PAC을 개최하고 있다. K-PAC의 경우 올해로 3회째를 맞았는데 특히 이번 행사는 국내외 제약기업과 연구기관, 제약단체뿐 아니라 정부기관까지 참여하는 등 ‘오픈 인노베이션’ 취지에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최근 들어 정보교류의 장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스타트업 업체나 벤처업체, 혹은 연구자 단체 등 신약의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소규모 업체의 접근성은 아직 미비한 수준이다. 때문에 홍릉바이오센터 등 정부 차원에서도 이러한 소규모 업체의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협회는 앞으로도 이러한 산관학 모두가 참여하는 정보 교류의 장을 만드는 데 더욱더 주력할 예정이다.
◈ 마지막으로 국내 제약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에 전할 제언이 있다면?
현재 제약산업에서는 연구개발의 발전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혁신신약이 개발되고 있다. 이는 국내 제약사들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약가제도는 글로벌 제약사의 혁신신약이 국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내 제약사들의 혁신신약 개발 동력을 저하시키는 대표적인 요인이다.
또한 혁신신약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도 한국의 약가제도 개편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가 제약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규정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미래 성장동력으로 지정한 이 상황에서, 현재의 약가제도가 과연 제약산업을 ‘산업’으로서의 가치로 극대화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제약산업이 미래 성장동력이라는 말로만 그치지 않고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추진의지와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정부는 약가제도 개편에 있어 제도의 개발 단계부터 제약업계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최근 민관학 약가제도협의체가 구성된 것은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약가제도안을 만들기 이전에 제약업계와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며, 그 논의 과정에서 국내 제약사뿐 아니라 글로벌 제약사와도 충분히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정보의 ‘융합’이 키워드다. 글로벌 제약사를 배제하고는 시대에 맞는 약가제도 개편은 이뤄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