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전공의협의회는 25일 성명서를 통해 대부분의 수련병원이 시행하고 있는 ‘전자의무기록(EMR) 셧다운제’의 실태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하며 이 제도를 즉각 폐지할 것을 수련병원과 관계 당국에 요구한다고 밝혔다.
최근 대전협이 전공의를 대상으로 EMR 셧다운제 실태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70%가 넘는 전공의가 ‘근무 시간 외 본인 아이디를 통한 EMR 접속 제한이 있거나 처방이 불가능하다’, ‘타인의 아이디를 통한 처방 혹은 의무기록 행위를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자신의 아이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공의가 대리처방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지정된 근무시간 외에는 EMR 접속이 차단되기 때문이다. 설문조사에서 전공의 대부분은 대리처방이 의료법 위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본인의 아이디가 차단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는 곧 EMR 셧다운제가 전공의의 근로 및 수련환경을 개선시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전공의에게 불법행위를 암암리에 조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아이디 공유 실태에 대해 수련 기관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해 ‘대부분의 교수진이 알고 있고 암묵적인 합의가 있다’고 답한 경우가 절반에 가까웠다.
전공의를 가르쳐야 하는 선배 의사들은 이를 알고도 병원의 운영을 위해 전공의를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이며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궁지로 몰아넣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함께 환자를 보고 치료하는 의료인으로, 선배로, 스승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EMR 셧다운제는 전공의의 노동을 일률적으로 착취함으로 정당한 대가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전공의의 실제 근무시간을 축소 보고할 수 있는 편법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전공의가 실제 근무하는 시간과 무관하게 마치 전공의법이 명시하는 근로시간 조항을 준수하며 근무하고 있다고 보고되는 작금의 사태를 낳게 한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대전협은 “꼼수가 뒤섞여 있는 이 제도에 대해 실체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관계 당국의 관리·감독의 부실함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전공의법은 거짓된 서류와 통계로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수련병원의 태도와 관계 당국의 안일한 관리·감독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각 수련병원은 전공의에게 불법을 강요하고 근로시간 조작을 종용하는 EMR 셧다운제를 즉각적으로 폐지하라”며 “관계 당국은 EMR 셧다운제와 관련된 수련병원의 실태를 명명백백히 조사하며, 이 제도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폐단에 대해 관리 감독의 의무를 다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