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공공의대 증설 및 의대정원 확대부터 이어지고 있는 정부·여당과 의협의 입법 힘겨루기가 올 연말 국회까지 계속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의협이 대표적인 의료악법 중 하나로 반대하는 원격의료 도입 의료법 개정안이 1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안소위에 회부키로 의결됐다.
강병원 의원과 최혜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두 개장안은 의료기술 및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을 반영해 의료법에 의료인-환자 간 원격 모니터링 또는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하는 것이 골자다.
구체적으로 보면 강병원 의원안은 의원급 의료기관에 한해 장기진료가 필요한 고혈압·당뇨·부정맥 등의 재진환자를 대상으로 의사(치과의사·한의사를 포함)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원격으로 관찰, 상담 등의 모니터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혜영 의원안은 의원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격오지 거주자, 교정시설 수용자·현역복무 중인 군인,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자·정신질환자 및 수술·치료 후 지속 관리·관찰이 필요한 재진환자(주기적 대면진료 전제) 등을 대상으로, 관찰·상담·교육 및 진단·처방까지 가능하도록 하는 비대면 진료 허용의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이때 수용자·군인, 수술 후 관찰이 필요한 환자 등에 대해서는 병원급 의료기관에서도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의료기관은 비대면 진료만으로 운영할 수 없도록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허용 비율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고, 보건복지부장관은 적정 처방일수 등을 권고할 수 있도록 하며, 비대면 진료를 하려는 의료기관은 시·군·구에 신고하도록 신고제를 도입했다.
복지위 전문의원 검토보고서를 보면 정부는 수정수용한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는 “일반적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는 안전한 의료이용을 원칙으로 안전성, 의료접근성, 편의성 등을 고려, 국민 건강증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대면진료를 보완하고 의료취약지 및 취약계층 등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제도화하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며 “비대면 진료에 대해 제기됐던 사회적 우려를 해소하고 안전한 비대면 진료가 이뤄질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취지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또한 복지부는 비대면 진료의 대상을 섬·벽지 거주자, 교정시설 수용자, 군인, 대리처방 대상자, 만성·정신질환자, 수술 후 관리환자로 규정한 것에 대해 “현재 재외국민 비대면 진료 서비스가 규제샌드박스 임시허가를 통해 운영되고 있음을 감안해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계를 보면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가 상반된 의견을 제출했다. 먼저 의협은 개정안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의협은 “그간 비대면 진료, 웨어러블 등을 이용한 환자의 자가정보 전송, 전화처방 등 일련의 사안에 대해 일시적인 편의를 위해 대면진료라는 대원칙이 훼손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며, 결국 국민건강에 위해가 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며 “개정안들의 경우 코로나19 등 감염병 상황을 특정하지 않고 일반적인 비대면 진료의 체계와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인바, 비대면 진료의 범위, 대상, 기간, 방법, 조건 등을 규정함에 있어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행위의 연장선인 만큼 더욱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강병원 의원안을 보면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그 범위와 대상을 최소화하고 비대면진료가 아닌 ‘원격모니터링’ 정도의 수준으로 명시했으나, 법의 파급력과 부작용 등 여러 부작용이 우려되므로 신중하게 재검토 돼야 한다”며 “무엇보다 차후 하위 법령과 세부 규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자칫 법안 취지와 달리 무분별하게 확대되거나 남용될 경우 국민들에게 미치는 효과는 더욱 치명적이라 할 것이며, 비대면 진료로 인한 의료사고의 경우 그 책임부분에 있어서 동 법안의 규정만으로는 발생 가능한 경우의 수가 많아 이를 충분히 담보하지 못하는 부분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현재 비대면 진료, 재택치료, 전화처방, 각종 의료플랫폼 등이 한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고 할지라도 결코 대면진료를 대신할 수 없으며 단지 대면진료의 보조적 수단으로 돼야 한다”며 “아울러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비대면 진료와 관련된 사항은 전문가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와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 진행돼야 할 것이며, 일련의 사항이 원격진료를 시행하기 위한 단초가 되는 것에 강력한 반대입장을 밝힌다”고 분명히 했다.
반면 병협은 종별 간 차별 금지와 대상 질환·환자 설정에 사전 합의를 강조하며 도입 자체는 찬성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병협은 “전국민 건강보험 가입과 지역제한 없이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국민의 의료기관 선택권을 담보하고, 보다 효과적이고 적절한 치료를 위해 질환 및 환자의 상태에 따라 병·의원 구분없이 모두 적정하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며 “현행 감염병법상 한시적 비대면 진료도 병원급·의원급 의료기관 간 차별없이 시행되고 있으며, 코로나19 기간 동안 비대면 진료의 70% 이상이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시행됐다는 조사 결과를 보면 원격의료에 병원급 의료기관을 포함해도 병원으로의 환자쏠림 현상이 크게 우려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정안에 따른 원격의료 대상 질환·환자군은 현재 대면진료시 병원급과 의원급 간 차이가 발생하는 영역으로 보기 어렵다. 경증 만성질환으로 명시된 고혈압, 당뇨는 2차 합병증 발생 우려로 복합상병으로 간주될 수 있어 전문인력과 검사시스템 등 장비가 구비된 병원급 의료기관에서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며 “환자의 건강권과 선택권 보장, 환자의 의료기관 선호 반영 및 효과적이며 균형적인 치료를 위해 병원급·의원급 의료기관 모두 원격의료가 시행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부정맥의 경우 환자 맥박의 불규칙한 정도 등을 촉진·청진, 심전도 검사 등으로 확인해야 하는 등 중증 악화 우려 질환이라는 다수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주기적 검사가 필요하므로 일반적인 만성질환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적정한 원격의료 대상환자 및 질환 선정은 각 종별을 대표하는 의료전문가 단체를 포함한 협의체에서 충분한 사전 협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의협은 지난 4일 제25차 상임이사회에서 원격의료 대응 TF를 구성키로 의결하고 협회차원의 대응방안 마련에 나섰다. 총 14명으로 구성된 대응 TF는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과 이정근 의협 상근부회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의협은 “환자-의사간 원격모니터링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2021년 국정감사 전후 여당 의원들을 통해 발의됐다”며 “의협의 기본입장은 지난 9.4합의에 따라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정부-의료계 간 구성된 의정협의체를 통해 논의키로 한 사항인 만큼 이를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