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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기관 규모 관계없는 마약류 관리약사 의무배치 반대

최근 의료기관 규모와 관계없이 마약류를 취급하는 의료기관에 ‘마약류 관리 약사’를 의무 배치하는 법안이 국회서 발의됐습니다. 의료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해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깊은 유감과 우려를 표명합니다.

이번 법률개정안은 기존에 병원급에만 두던 마약류관리자를, 마약이 아닌 향정신성의약품을 취급하는 1차 의원에까지 두도록 강제해, 향정신성의약품이 마약과 똑같은 공포스러운 약인 것처럼 호도는 악법입니다. 

마약과 정신질환의 치료에 사용되는 향정신성의약품은 엄연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한꺼번에 마약류로 분류되는 부분은 문제가 많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저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수년간 노력해왔습니다. 그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해 여전히 이런 분류를 바탕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약물들이 오해를 사는 부분을 개선하지 못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합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약사에게 의사를 감시하라고 하는 악법은 국민정신건강의 향상을 위한 치료를 방해하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이번 법률개정안은 약사가 마약류관리를 해야한다면서도, 약사의 역할에 대해서는 규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고, 문진하고, 검사하여 내린 처방에 대해서 제 3자가 관리 한다면, 이 과정에 대해 약사가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현재 식약처의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을 통해, 의사 1인이 근무하는 의원에서조차 매일 마약류의 처방에 대해 보고하고 있습니다.

전산 관리에 미비가 있을 경우 보건소 등에서 불시에 점검을 나오기도 하고, NIMS에 미보고나 지연보고로 행정처분 등이 이루어져, 설령 관리 미비가 있어도 의료인들이 직접 책임지고 있습니다. 자정작용과 통제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정부가 마련한 전산 시스템을 불신하고 약사를 따로 두는 것은 시대를 역행한 법안입니다. 현재 병원급의 마약류 관리 약사가 실제로 의미있는 어떤 업무를 하고, 어느 범위까지 책임을 지는지에 대한 파악이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책임 없이 의무적인 고용만 하라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이번 법률개정안으로 영세한 1차 의료기관의 폐업이 우려됩니다. 같은 상황에 대해 동일하게, 다른 상황에 대해서는 실정에 맞는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평등입니다. 의사 수와 관계없이 모든 의원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평등의 원칙에 위배됩니다. 의사가 1명 근무하는 곳에도 예외없이 약사를 배치한다면 고용에 대한 인건비 등에 대해서 지원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특히 의료 소외 지역에서 고군분투하는 의원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입니다. 군단위에서 약사 고용을 못해서 징역까지 받을 수 있다면, 진작 위기에 봉착한 지방의료를 마저 죽이는 것입니다. 마약류의 처방 및 조제 과정을 굳이 제3자에게 감독받는 취지라면, 약국에도 조제와 복약지도를 하는 약사 외에 별도로 마약류 관리 약사를 배치해야 할 것인데 의원에만 이러한 법률을 적용하는 것이 불합리합니다. 법률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많은 간호사 및 간호조무사를 비롯한 직원들이 직장을 떠나야만 할 것입니다.

이번 법률개정안은 약사만이 마약류 관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는 바, 마약류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던 의료인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도 향정신성의약품을 취급하는 1차의료기관에 약사를 두도록 강제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마약류 관리자는 의사, 수의사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통제물질법(Controlled Substance Act)에서도 관리자(adminstator)의 역할을 약사에게만 부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중국 정부의 약품 관리법(Drug Administration Law) 역시 의료기관과 약국 모두 마약류 관리에 대한 책임을 부여합니다. 마약류 관리자의 역할을 약사에게만 부여하는 나라는 없으며 의원의 법적 총책임자인 의사가 마약류관리자를 겸하지 못할 이유는 없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안입니까?

의료기관에서 오롯이 감당해야 하고 시행해야 하는 법률개정안에 대해 일선 의료 단체와의 그 협의도 없었으며, 법안은 의료 현실 및 국민건강에 미칠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극히 일부 사례를 통해서 의료인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며, 중범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징역이 포함된 큰 벌금의 처벌로 과도한 강제성이 부여되는 법안을 강력히 반대하는 바입니다. 

약사 고용 의무화는 지방 의료 및 1차 영세 의료기관을 더욱 위축시킬 수 있는 비현실적인 법안입니다. 이번 원칙은 의료현장과 행정원칙을 기반으로 다시 한번 검토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국민 건강에 도움될 수 있는 법안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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