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적혈구증가증(Polycythemia Vera, PV)은 골수의 돌연변이로 인해 적혈구가 과다 생성되는 희귀 혈액암이다. 질환이 진행되거나 악화될 경우 혈전증, 심혈관계 합병증은 물론, 골수섬유증이나 급성백혈병으로 이어질 수 있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면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는 중증질환이다.
현재 국내 진성적혈구증가증 환자는 2023년 기준으로 4995명에 이른다. 환자는 저위험군과 고위험군으로 구분되며, 현재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치료제로는 하이드록시우레아(Hydroxyurea) 하나뿐이다. 상당수의 환자들이 하이드록시우레아로 치료받고 있으나, 전체 환자의 약 10~20%는 이 약제에 불응하거나 부작용으로 인해 복용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러한 환자들에게 베스레미주(로페그인터페론알파-2b, 유전자재조합) 는 사실상 유일한 치료 대안이다.
베스레미주는 2019년 유럽의약품청(EMA), 2021년에는 미국식품의약국(FDA)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았으며,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 유럽백혈병네트워크(ELN) 등 주요 국제 진료지침에서 진성적혈구증가증의 1차 및 2차 치료제로 권고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베스레미주는 1회 투여에 425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비급여 약제로 연간 치료비는 수천만 원에 이르러 감당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로 인해 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하거나, 가계 파탄 위기에 놓여 있다.
특히 하이드록시우레아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들에게는 사실상 치료 수단이 없는 상황으로, 베스레미주는 생존을 위한 마지막 희망이다. 이러한 절박한 환자들의 요구는 지난 2024년 2월 14일부터 3월 15일까지 진행된 베스레미주 급여화 촉구 국회 국민동의청원에서 30일만에 5만552명의 동의를 얻는 결과로도 분명하게 나타났다. 이는 치료의 필요성과 사회적 공감이 모두 확인된 상징적인 사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스레미주는 2024년 3월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 급여기준이 설정된 이후 14개월이 경과한 지금까지도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 상정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해당 제약사가 치료 수단이 없는 환자들의 절박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환자의 시간은 제도와 행정의 속도보다 빠르다. 그 기다림은 곧 통증이고, 생명을 위협하는 절박한 시간이다. 더 이상 그 시간을 허비하게 해서는 안 된다.
한국백혈병환우회는 오는 5월 8일 개최 예정인 제5차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베스레미주의 상정과 통과를 촉구한다. 아울러 이후 진행될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의 약가협상이 신속하게 진행될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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