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공중파 방송에 출연한 전직 고위 정치인이 “ADHD 약에 마약 성분이 들어있다”, “부모와 학원이 성적 향상을 위해 아이에게 마약을 권한다”, “이 약을 먹다 중독돼 필로폰까지 이어졌다”는 등의 발언을 했습니다.
이러한 발언은 ADHD 치료제에 대한 명백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치료받고 있는 아동과 그 가족들에게 심각한 불안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는 해당 발언이 과학적 근거 없이 이뤄진 주장이라는 점에서 깊은 유감을 표하며,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힙니다.
ADHD는 의학적으로 인정된 신경발달질환이며, 약물치료는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 방법입니다.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는 전두엽 기능의 미성숙과 실행 기능 조절의 어려움으로 나타나는 뇌 발달 기반의 신경발달장애입니다. 진단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기준(DSM-5 등)에 따라 표준화된 평가와 전문적인 면담을 통해 이뤄집니다. 국내의 ADHD 유병률은 아동·청소년에서 약 6~8%로 보고되고 있으며, 학령기 아동의 주요 정신건강 문제 중 하나입니다.
치료받지 않은 ADHD는 청소년기 학업 중단, 약물 남용, 충동적 범죄 위험 증가 등 다양한 사회적 비용과 연결됩니다. 반면, 약물치료를 받은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향후 약물 남용 및 법적 문제에 연루될 확률이 낮다는 연구 결과들이 다수 보고되고 있습니다
ADHD 치료에는 약물치료, 인지행동치료, 부모훈련 등 다양한 접근이 포함되며, 그 중 약물치료는 증상 개선과 기능 회복에 있어 매우 효과적인 치료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국내외에서 사용되는 ADHD 치료제(예: 메틸페니데이트, 아토목세틴 등)는 식품의약품안전처(MFDS) 및 미국 FDA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승인한,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의약품입니다.
물론 ADHD 치료제의 오남용에 대한 적절한 모니터링은 필수적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우려를 반영해 해당 약물은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돼 엄격한 국가 관리 체계 속에서 처방·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통제는 의학적 필요에 따른 적절한 사용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이지, 약물 자체를 ‘마약’이라 낙인찍기 위한 근거가 아닙니다.
ADHD 치료제에 대한 오해가 반복될수록 치료를 망설이게 되고, 결국 ADHD 환자의 정서·학업·사회적 기능 회복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ADHD와 그 치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반드시 과학적 근거 위에 형성돼야하며, 약물의 의학적 필요성과 안전성, 중독에 대한 정확한 입장 정립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에 학회는 다음과 같은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1. ADHD 치료제는 '마약'이 아닌,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 수단입니다.
ADHD 치료제는 의학적 필요에 따라 전문의의 판단 하에 적절히 사용되는 치료 약물입니다. 오남용 방지를 위한 관리체계가 이미 마련돼 있음에도, 정당한 치료를 ‘마약 복용’이라 표현하는 것은 과학적 사실을 왜곡할 뿐 아니라, 치료받는 아동과 가족에게 심각한 낙인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2. ADHD 치료제는 중독을 유발하지 않습니다.
치료 목적의 적절한 사용에서 ADHD 약물의 중독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오히려 여러 연구에서, 약물치료를 적절히 하는 것이 향후 약물 남용의 위험을 오히려 줄인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치료받지 못한 ADHD야말로 향후 충동성과 자기조절의 어려움으로 인해 약물 중독, 학업 및 직장 적응 실패, 대인관계 갈등 등 다양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히 축적돼 있습니다.
3. ADHD 진단과 치료는 ‘성적을 위한 처방’이 아니라, ‘건강한 삶’을 위한 결정입니다.
ADHD 진단은 의학적 기준과 임상 평가를 기반으로 내리는 전문적인 판단이며, 약물은 치료의 여러 구성 요소 중 하나입니다. ADHD 아동에게 약물치료는 단순히 ‘성적 향상’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자존감 회복, 정서적 안정, 또래관계 회복, 학업 및 사회적 기능 향상을 돕는 치료적 결정이자 건강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반입니다.
4. 부정확한 정보는 치료받을 권리를 위협합니다.
공신력 있는 매체를 통한 근거 없는 발언은 ADHD 아동과 가족에게 낙인을 심화시키고, 치료에 대한 두려움과 회피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적절한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아동의 경우, 이와 같은 보도가 반복될 때 “나는 마약을 먹고 있다”는 오해 속에서 자존감 저하, 위축, 또래 관계에서의 소외와 낙인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는 치료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ADHD 아동의 장기적 예후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입니다.
5. 정신건강전문가가 아닌 인사의 왜곡된 발언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정신건강은 전문적인 평가와 치료가 요구되는 분야입니다. 전문가가 아닌 인물이 사실과 다른 발언을 공적 매체에서 반복하는 것은 국민 정신건강 증진에 방해가 됩니다. 우리 학회는 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며, 전문가와의 협의를 거치는 성숙한 소통 문화를 촉구합니다. 언론 또한 그 파급력을 고려하여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보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학회는 앞으로도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보 제공을 통해, 아동과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보호하고, 올바른 치료 접근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