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의료원이 국내 응급실 데이터를 활용한 호흡기 감염병 경보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기존의 호흡기 감염병 예측 모델이 평상시 계절성 유행 감지에는 효과적이나, 코로나19와 같은 대규모 팬데믹 상황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14일 밝혔다.
연구진은 시계열 예측 분석 기법인 ARIMA(Autoregressive Integrated Moving Average) 모델을 적용해 국가응급진료정보망에 등록된 2017년~2022년도 전국 응급실 내원 환자 약 3,100만 명의 발열 및 호흡기 증상을 모니터링하여 분석했다.
연구 결과,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는 0~4세 영유아 집단에서 호흡기 감염 유행을 탐지하는 조기 경보 시스템의 성능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3일 및 7일 연속 경보 기준을 적용했을 때 민감도가 100%에 달하며, 소아 환자의 응급실 방문 추이가 지역사회의 계절성 호흡기 바이러스 유행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알리는 '조기 레이더' 역할을 수행함을 입증했다.
반면, 2022년 오미크론 변이 대유행 시기에는 호흡기 감염병 경보 시스템 성능이 급격히 저하되었다. 가장 성능이 우수했던 0~4세 영유아 집단조차 유행 탐지 민감도가 1.6%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성인 및 노인 집단에서도 유의미한 경보를 제공하지 못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시스템 실패의 주된 원인으로 기존 시계열 분석(ARIMA)이 전제하는 '정상성(stationarity)' 가정의 붕괴를 지목했다. 오미크론 유행처럼 환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기준선 자체가 급격히 높아진 상황에서는 과거 데이터에 기반한 고정된 임계값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데이터 분석과 방법론 설계를 주도한 이경신 주임연구원은 "오미크론 대유행 당시 시스템이 마비된 핵심 원인은 시계열 분석의 전제인 '정상성' 가정이 무너졌기 때문이며, 환자 규모가 폭증하여 기준선 자체가 높아진 상황에서는 기존의 고정 임계값 방식이 '신호'와 '잡음'을 구분하지 못한다"라며 "향후 시스템 고도화를 위해서는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데이터 패턴을 스스로 학습하고 기준을 조정하는 머신러닝 기반의 동적 예측 모델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기술적 대안을 제시했다.
연구를 총괄한 성호경 전문의는 "이번 연구의 의의는 기존의 정적인 감시 체계가 평상시 계절성 유행에는 유효하지만, 국가적 재난 수준의 감염병 위기 시에는 취약함을 실증한 것"이라며 "미래의 팬데믹은 언제나 우리의 예측 범위를 벗어난 형태로 다가오는 만큼, 감염병 위기 상황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동적 대응 시스템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고정된 임계값을 사용하는 기존 감시 체계가 대규모 신종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줬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 연구 결과는 저명한 국제학술지 <감염 및 공중보건 저널(Journal of Infection and Public Health)> 최신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