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의료인들은 모두 봉이다?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모든 의료인은 법률상의 지위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9일 주최한 ‘전국의사대표자회의’에서 의협 왕상한 법제이사는 ‘법률상 의료인의 지위는 무엇인가?’란 주제 발표를 통해 ‘사적자치계약자유원칙’이라는 법률을 들며 “의료인들은 동등한 계약을 전혀 하지 못하는 현실에 있다”고 말했다.
왕상한 법제이사가 말한 ‘사적자치계약자유원칙’은 계약을 체결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계약 당사자에 맡기는 것으로 누구와, 어떤 내용으로 계약할 것인지를 당사자가 결정한다는 법률이다.
왕상한 법제이사는 “지금 여기에 모인 선생님들께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스스로 계약을 결정한 분이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즉, 현재의 상황에서 동등한 계약을 체결한 사람은 없다는 것.
왕상한 법제이사는 발표에서 의료인에 대한 법적규제로 ▲보건의료기본법 ▲의료법 ▲국민건강보험법 등을 예로 들었다.
먼저, 보건의료법 제5조 보건의료인의 책임에 관한 법률에서는 ‘적정한 보건의료서비스’에 관한 문항을 지적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적정한 보건의료서비스의 문항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
왕상한 법제이사는 “적정한 보건의료서비스였는지의 관한 판단을 건강보험공단이 한다. 이것이 바로 진료비 삭감의 법적 판단의 근거가 되고 있다”며, “판례를 예를 들면 그 내용 중에 ‘최선의 진료를 다해야 하는 의무’라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공단은 적정진료를 두고 판단을 하기 때문에 의료인은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라며 법적 판단의 모호성에 의료인이 노출돼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법 제15조 진료거부 금지, 제59조 지도와 명령 등에 관한 내용과 관련해 왕상한 법제이사는 “의료인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진료를 거부하면 안 된다. 그리고 의료인은 휴업을 하거나 폐업하려 할 때에도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 등으로부터 명령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건강보험법의 ▲요양기관 강제지정제 ▲급여 vs 비급여 ▲수가계약제 ▲의료사고피해구제법 등이 의료인을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양기관의 강제지정제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 ‘요양급여를 거부하지 못한다’에 대해 왕 상한 법제이사는 “요양급여 수령의 강제화”라며 왜 국가에 의해서 강제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나타냈다.
급여 vs 비급여의 경우 국민건강보험법 제39조 ‘비급여 대상을 업무 또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질환으로 설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급여하는 체제’, 제43조 ‘소정의 기준에 따라 심사’ 등이 의료인을 매우 어렵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왕상한 법제이사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질환을 비급여로 설정하고 나머지는 급여화 한다고 했는데 과연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질환이라는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소정의 기준에 따라 심사한다는 말은 또 뭔가. 급여 대상임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공단과 심평원이 심사해 자기들의 기준과 맞지 않으면 삭감한다는 이야기 밖에 안 되는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수가계약제 제42조(요양급여비용의 산정) 제1항(계약당사자) 공단이사장과 의야계 대표자, 제2항(계약체결효과) 계약체결시 그 계약은 공단과 각 요양기관에 체결된 것으로 본다, 제3항(계약 성립) 심의위원회 거쳐 보건복지부장관 고시와, 의료사고피해구제법안의 입증책임의 전환, 임의적 조정천치주의, 종합보험 가입시 반의사불벌죄 등이 의료인에 대한 법적인 규제를 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왕상한 법제이사는 이 같은 조항들을 예로 들며 “이러한 모든 것들이 의료인을 봉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법제이사를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의료인들이 법을 너무 모르거나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들이 있음에도 너무 무관심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헌법상 의료인이 직업인으로 가지는 기본권에 대해 강조했다.
헌법 제11조(평등권)의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약사, 간호사, 건축사 등 타 전문직과 비교해서 평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제15조(직업의 의무) 직업 선택의 자유, 직업행사의 자유(선택한 직업을 통해 사회경제적 생활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는 자유), 제23조(제산권 보장)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되고 공공의 필요가 있는 때에는 법률로서 재산권을 수용, 사용, 제한할 수 있으나 그러한 경우에는 반드시 보상을 해야 하며, 재산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사유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고 나와 있다.
또한, 헌법 제21조(결사의 자유)의 다수의 자연인 또는 법원이 공동의 목적을 위해 단체를 결성할 수 있는 자유 등이 의료인이 직업인으로서 가지는 기본권이다.
그러나 왕상한 법제이사는 “의사들이 타 전문직과 비교해 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 가지고 있는 병원은 사적 재산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라며, “병・의원은 사유재산이 아닙니다. 공공의 필요가 있는 때에는 법률로서 재산권을 수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소수의 의견으로 의료인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주는 의견이 있었다. 지난 8월 30일 법정에서 조대현 재판관은 “국민건강보험법은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운용에 필요한 사항을 규율하고 있는 법이며, 이로 인해 국민들의 의료수준에 대한 선택권을 침해하고 있으며, 의료인의 의료행위를 규제하는 것으로 이는 의료행위의 전문성에 반한다”는 내놓았다.
왕상한 법제이사는 의료인의 지위를 찾고 동등한 계약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에 관해 “신정부는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위한 제반 인센티브 제공, 다양한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한 시스템 구축해야 한다”며, 의료인들에 대한 기대로 “법과 제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협회를 중심으로 한 단합, 자정 노력 등을 통한 대국민 신뢰회복”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