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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등급 판정 의사마다 제각각 ‘장애인 두 번 운다’

“최초로 달에 간 사람이 누구죠” 올해 나이 스물 일곱살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김병찬씨(가명·경산시 하양읍)는 얼마전 한 취업지원센터의 능력검사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김씨는 ‘뇌병변장애인’이다. 뇌병변장애는 신체적 장애일뿐 지적능력과는 상관 없다. 김씨는 말을 조금 더듬거리고 팔과 다리의 움직임이 비장애인에 비해 다소 부자연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그의 장애인복지카드에는 ‘정신지체 3급’으로 기록돼 있다.

이 기록 때문에 취업지원센터의 면담자가 그의 지적능력을 낮춰보고, 4년제 대학 졸업자에게는 걸맞지 않은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이다. 잘못된 기록으로 그의 취업은 항상 좌절의 연속이다.

1998년 병원진단 결과 그의 장애유형은 뇌성마비였다. 그러나 당시 읍사무소 직원이 ‘정신박약으로 등록하는 게 더 혜택이 많다’는 권유를 했고, 부모님이 선뜻 동의해 버린 것이다. 판정기관의 ‘잘못된 친절’이 병찬씨의 삶에 큰 짐을 지운 것이다.

장애인등록제도의 부실한 판정시스템이 장애인들에게 또 다른 고통이 되고 있다. 이 제도는 장애인권익운동의 결과로, 당초 장애인 복지혜택을 확대하자는 긍정적 취지에서 비롯됐다.

◆ 재(再)판정은 하늘의 별 따기

한 번 잘못된 장애유형 판정을 바로잡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행정적 부주의로 ‘정신지체장애인’이 돼 버린 병찬씨도 재차 변경을 시도했지만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아예 포기했다. 그는 “몇 달 전 읍사무소의 지시에 따라 병원 진단서를 받으러 갔지만, 신경과에서 6개월간 진료를 받아야 발부해 준다고 했다”면서 “번거롭기도 하지만 당장 6개월 진료비를 마련하는 것도 어려워 진단서 발급을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신상훈 대구시 대명2동사무소 복지담당은 “절차상 의료기관의 장애정도 진단서가 있어야 ‘장애등급표’가 정하는 기준에 따라 변경이 가능하다”면서 “일시 장애로 장애인등록을 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절차가 세밀화됐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불편을 겪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장애인복지법시행규칙 2조가 정한 장애인 등급은 장애유형에 따라 1∼6등급으로 분류돼 있다. 각 급수는 또 몇 개의 호(號)로나뉘어져 세분화 돼 있다.

◆ 고무줄 등급 판정

의료기관의 진단을 받는 과정에서 전문적 전담기관이 없어 장애등급의 기준이 애매모호하다는 비판도 많다. 서준호 대구장애인연맹 간사는 “의사 개개인의 판단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같은 유형의 장애를 갖고 있어도 진료기관이나 의사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면서 “때로는 복지혜택을 더 받기 위해 허위로 장애정도를 심하게 진단하는 일도 발생한다. 좀더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병원을 옮겨다니는 장애인도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일이 생기는 데에는 장애등급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것도 한 몫을 한다. 예를 들면 뇌병변장애 등급기준에 따르면 3급1호가 ‘100m 이상 보행이 어려운 사람’인데 반해 4급1호는 ‘근거리 보행이 가능한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둘 사이의 차이도 애매모호하고 의사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들쭉날쭉할 수 있다.

◆ 중증장애인에 편중된 복지혜택, 장애등급 상향 부추겨

장애인등록제도의 각종 복지혜택이 1∼2급 등 중증장애인에 집중돼 있어 ‘유사(類似) 중증장애인’을 부추기고 있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면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장애수당의 경우 중증 장애인은 13만원, 경증 장애인은 3만원으로, 그 차이가 심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증장애인들은 불명확한 장애등급 판정기준을 이용해 중증장애인으로 등급을 상향조정하는 일이 적지 않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자료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중증 장애인(1∼2급) 일부에 대해 장애판정심사를 다시 실시한 결과, 무려 35.2%가 기존 신청등급에서 하향 조정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향조정된 장애인의 28.1%는 경증 장애인(3급 이하)으로 판명났다. 하지만, 의료기관의 장애판정 오류를 시정할 수 있는 시스템은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노금호 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의료기관에서 중증장애인으로 진단받을 경우 전문 심사기관의 위탁심사를 거쳐 중증장애인으로 등록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의사의 판정에만 의존하는 기존 방식대로라면 장애인등록제도를 통한 장애인 복지혜택 확대는 실질적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메디포뉴스-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 영남일보 이효설 기자(hobak@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