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회째를 맞는 ‘세계 피임의 날’을 기념해 한국을 포함한 미국•유럽•아시아 태평양 지역 전세계 15개국의 15-24세 3천 2백여 명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性)과 피임에 대한 인식과 행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본 조사는 아•태피임협의회(APCOC)를 포함하여 성 건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10여 개의 국제 단체가 함께 참여했다.
바이엘헬스케어가 발표한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세계 청소년들은 의사를 피임 상담의 가장 신뢰할만한 창구로 인지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 또래 청소년들과 비교해 피임에 대한 올바른 정보가 부족하고 피임 자체를 편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0대의 임신중절수술이 한 해 1만 명을 넘어서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학교나 전문가를 통한 보다 실질적인 청소년 대상 성교육이 필요하며, 피임에 대해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인 환경이 조성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의사’나 ‘선생님’ 등 신뢰할 수 있는 채널을 통한 실질적인 성교육 마련돼야 세계 청소년들의 10명 중 6명(61%)은 피임 상담에 있어 가장 신뢰할만한 상대로 ‘의사’를 꼽아 산부인과 전문의를 활용한 교육과 상담의 유용성이 높음을 시사했다.
한국 청소년들 역시 어머니(27%), 선생님(21%)에 앞서 절반 이상이 의사(61%)를 가장 신뢰할만한 피임 상담 상대로 꼽았다.
한국 청소년 2백 명 중 ‘다양한 피임법에 대해 잘 모른다”고 답한 응답자는 무려 68%로 15개국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는 전세계 평균(27%)의 2배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이다. 또한 알고 있는 피임법의 수 역시 한국이 2.6개로 가장 적어 전세계 평균(3.7개)과도 1개 이상 차이가 났다.
이는 한국 청소년들이 다른 나라의 청소년들에 비해 피임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70%에 육박하는 한국 청소년들이 스스로 피임법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의사나 선생님을 가장 신뢰할만한 상대로 선택, 앞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이 의사나 선생님을 통한 실질적인 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준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청소년기에 의사를 통한 피임 교육 기회는 흔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여성의 경우엔 성인이 된 후에도 결혼 전에는 산부인과 방문을 매우 꺼리고 있어 청소년기에 산부인과 전문의 등 의사와의 피임 상담의 기회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실제로 올해 초 바이엘 헬스케어에서 실시한 피임에 대한 인식 및 태도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14-18세 여성 200명 중 산부인과에 방문해 본 청소년은 10명 중 1명 이하(8%)이며 산부인과 전문의와 피임 상담 경험이 있는 여성 청소년은 1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임, 보다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문화적 태도 변해야
피임에 대해 다른 사람과 편하게 얘기하지 못하는 이유로 대부분의 한국 청소년들은 ‘이 문제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한다’거나 ‘다른 사람들이 본인을 문란하게 생각할까 봐’라고 대답했다.
특히 유럽이나 미국 청소년들의 경우 피임에 대해 얘기할 때 다른 사람들이 본인을 문란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우려한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아 한국 청소년들은 성문제에 있어 남들을 의식하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한국 청소년들은 피임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피임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적 태도가 변해야 한다는 점에 가장 크게 호응했다.
무려 61%로 전 세계 평균에 비해 2배에 가까운 청소년들이 문화적 태도 변화가 필요함을 지적하였다. 그 밖에 학교에서의 성교육과 가정에서의 올바른 성교육이 중요하다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성에 대한 문제에 대해 가족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변화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남자 “그 당시에 피임 수단이 없어서” vs. 여자 “상대방이 원치 않아서”
성경험이 있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결과에서는 성관계 시 피임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질문에 남자의 경우, ‘그 당시에 피임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던 반면, 여자의 경우 ‘상대방이 원치 않아서’라는 대답이 가장 많아 피임에 대한 남녀간 큰 인식 차를 드러냈다.
한편 효과적인 피임 수단을 묻는 질문에는 전세계 대다수 청소년들이 콘돔과 먹는 피임약 등을 꼽았고, 이러한 결과는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먹는 피임약의 효과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나라에 비해 복용율이 매우 낮아 각 피임법에 대한 복용법 및 부작용에 대한 올바른 정보 전달을 중심으로 피임 교육이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줬다.
이와함께, 한국의 청소년들은 피임 실패율이 높은 생리 기간 중 성관계가 효과적인 피임법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청소년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임연구회 회장이자 아태피임협의회(APCOC)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임순 교수는 “2009년 세계 피임의 날을 맞아 세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는 우리나라 성교육의 실태를 보여주고 있는 반증이다”라며, “글로벌화에 따라 사회가 개방되고 청소년들의 성의식은 높아져가고 있으나 학교나 의료전문인을 통한 성교육이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어 청소년들의 성의식이나 행태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교수는 “학교의 보건교사나 산부인과의 전문의처럼 청소년들이 신뢰할 수 있는 채널을 통한 범국가적인 교육 시스템의 정착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설문조사는 2009년 세계 피임의 날을 맞아 바이엘헬스케어(바이엘쉐링제약)가 TNS 헬스케어를 통해 세계 15개국(오스트리아,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 러시아, 스페인, 터키, 영국, 호주, 중국, 싱가폴, 한국, 태국, 미국)의 15~24세 청소년 약 3천 2백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으로 올해 7월부터 8월에 걸쳐 온라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남녀 각 1백 명씩 총 2백 명이 설문에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