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괄 약가인하의 영향으로 R&D투자비율이 급감해 오히려 제약산업이 후퇴될 것이라며 전문가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11일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 약인가? 독인가?’라는 주제로 개최된 국회세미나에 참석한 학계 및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약가인하로 대부분의 기업의 영업이익 손실이 예상됨에 따라, R&D의 투자위축과 제조기반 약화, 인력 구조조정 등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제약협회 갈원일 이사는 “우리나라 제약업계가 연구개발에 투자한 것은 이익이 남기 시작하던 99년 이후로, 10여년 남짓에 불과한 태동기에 불과하다”며 “연구개발은 각고의 노력과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는 측면에서 시간을 주고 기다려주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어 갈 이사는 “제약업계도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고 건보재정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일정부분 어렵겠지만 고통을 감내하고 분담할 용의가 있다”며 “기등재목록정비로 7000억원, 일괄 인하로 1조 7000억이 1~2년에 이뤄지는 것은 감내할 수 없으니 단계적 절차를 달라는 것”이라고 요구했다.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 이규황 부회장은 구체적인 수치를 들며 약가인하로 인한 R&D위축 가능성에 대해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제약산업의 R&D에 1조원을 투자했을 때 GDP가 5.4배 증가한다. 평균 산업에서의 증가수준은 3.3배다. 제약산업의 배수가 다른 사업보다 64%높기 때문에 반드시 육성시켜야 할 산업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제약산업에서 줄일 수 있는 R&D 투자비용이 8000억원 정도 된다. 이는 약 4조 3000억원에 해당하는 GDP가 감소하는 것과 같다”며 “임상시험하는 숫가 진행 중인 것과 새로 진행될 것 까지 666건 정도인데, 이를 줄이면 환자 9만 2000명~10만명이 신약을 접할 기회를 잃는 것”이라고 따졌다.
결국 이번 일괄 약가인하는 R&D 비용을 줄이고 관련 인력과 인프라까지 감소시키면서 현재까지 발전한 기술을 후퇴 시킬 수 있어 의료서비스 확대 등을 추진하는 복지부의 정책기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
제약산업에만 책임을 묻는 정부에 대한 쓴소리도 나왔다. 강원대 약대 이범진 교수는 “그동안 정부가 육성한 것이 피부에 와 닿게 됐었는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운을 뗐다.
이 교수는 “리베이트 관행으로 볼품없어진 업계에서 혁신기업을 가려내겠다는 것이 정책기조인데, R&D 투자가 낮다는 근거를 살펴보면 의약분업 후 제네릭 공급을 위해 약가를 우대하고 피부에 와 닿지도 않는 연구를 남발해왔다”고 꼬집었다.
이러한 환경이 결국 제약산업을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우며 고공 성장을 이어가게 한 원인제공자가 다름 아닌 정부라는 뜻이다.
이와 함께 최대 10만명의 일자리가 감소하는 등 고용불안에 대한 비난도 이어졌다.
‘정부의 약가 일괄 인하’가 제약산업의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과 대책‘에 대한 주제발표를 진행한 노무법인산하 김원기 대표는 “제약관련 산업 종사자까지 산정할 경우 그 인력은 8만여명의 5배인 40만명에 달한다”며 “이런 셈법이면 일자리 감소규는 10만개에 달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제약업계의 인력감축이 당장은 이뤄지지 않다고 해도 청년실업 문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대표는 “제약사들은 정년퇴직 및 자발적 퇴직 등에 따라 발생한 일자리를 신규 채용하지 않을 가능성은 매우 크며, 이는 국가적인 문제인 청년 시럼 분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의 하나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제약노조 대표인 한국노총 의약품분과 이명현 부위원장은 매출이 급격하게 감소한 회사들이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들 것이라며 극심한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이 부위원장은 “시장규모가 12조 8000억원인데 20%정도가 정책으로 한순간에 사라지는 꼴이다. 약가인하는 매출감소에 그치지 않고 그 여파가 이익감소로 이어진다”며 “정부의 약가정책이 워낙 폭력적이어서 필연적으로 악성실업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이렇듯 악성실업이 발생할 상황에서 고용안정에 대한 대안과 대책은 하나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제약산업이 붕괴되면 최대 피해자는 노동자”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