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강남의 부유층 자녀들이 ‘역삼패밀리’라는 조직을 결성해 또래 학생들에게 폭력과 갈취를 일삼다가 경찰에 검거된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의 주동자 격인 학생 중에는 판사, 의사, 변호사, 공기업 간부 등 사회 고위층과 부유층 자녀가 포함되어 있어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사건에 연루된 부유층 자녀들은 “부모가 공부만 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싫어 가출을 반복하다보니 폭력과 갈취를 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강동경희대병원 화병스트레스클리닉 정선용 교수는 부모의 연봉이 높고 사회고위층일수록 자녀는 물질적으로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지만, 정신적으로도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부유층의 자녀들은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이는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저 아이는 OO의 자녀니까 미래가 기대된다” 라든가 “쟤는 OO의 자녀인데 왜 저래?” 라는 식의 선입관은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
그러다 보니 잘못을 저지르면 아이 스스로도 위축될 뿐만 아니라, 부모는 공개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꺼려하게 돼 자녀의 잘못을 쉬쉬하고 덮기 급급해진다.
게다가 직업 특성상 판사, 의사는 하루의 대부분을 범죄자, 환자를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상당한 편이며 업무량도 많아 귀가가 늦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부모가 자녀들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고, 의사전달을 빨리 하기 위해 요점만 간략하게 말하기 쉽다. 그러다보니 평소 아이들에게도 “공부하라”는 이야기만 반복하게 되는 현실.
하지만 청소년기 아이들의 현재, 미래를 결정짓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와의 관계이다. 어릴 적부터 부모와 자녀가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를 지속적으로 파악해 자녀의 관심과 흥미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이후에는 이미 성격이 굳어져 있어 태도 개선에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므로, 학교에 가기 전인 유아기 때부터 자녀와의 충분한 대화를 이어 나가고 지속적인 행동 교정이 필요하다.
자녀와의 대화 부족, 더 이상 가정의 문제가 아니다
정선용 교수는 자녀와의 대화 부족은 이제 더 이상 가정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받은 스트레스가 무의식적으로 쌓여 있다가 신체적으로 성장하고 사고가 발달한 청소년기에는 문제행동과 분노폭발을 시작할 수 있으며 분노는 곧 사회를 향해 표출되어 문제아가 되거나, 혹은 자기 자신에게 표출되어 우울증이나 자살충동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주변의 기대에 대한 부모와 자녀의 스트레스와 부모의 일방적 의사전달 방식에서 비롯된 가정의 소통 부재가 결국 사회적인 문제로 번지고 있는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며, 청소년 문제가 더 이상 일부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가정문제는 이제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가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고 충분한 소통이 이뤄질 수 있도록 탄력근무제, 육아휴직과 같이 부모의 근무시간에 대한 다양한 국가 정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절실하다. 그리고 나서 부모 교육, 자녀와 함께하는 프로그램 마련 등 더 나은 가정을 만들기 위한 여러 방법이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정선용 교수는 “정규직이나 고위층조차도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이들과의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청소년 문제의 개별적 해결책 강구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회적 해결에 우선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