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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44년 만에 터져 나온 폭발력, 받쳐줄 힘 없었다”

연세의료원 파업에 노동계 “한노총 진두지휘 사실상 실패” 지적

연세의료원 총 파업이 지난 6일 종료된 것과 관련해 노조가 돌연 기존의 입장을 뒤집고 중노위 권고안을 수용한 것에 대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의료원의 직장폐쇄 조치에 맞서 원외 투쟁으로 파업을 계속해 나간 지 일주일 만인 지난 6일까지만 해도 노조의 파업 분위기는 별다른 이상 기류가 발견되지 않았었다.

오히려 집행부측에서는 원외 투쟁보다 파업 수위를 더 높여야 할 때가 아닌가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의료원측도 노조 요구안에 대한 기존의 입장변화는 없으며, 노조가 양보해 주지 않는다면 이대로 그냥 갈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성토하며 당장에 노조의 합의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거의 하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노사가 이번 조정안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하자 연세의료원 노조원들은 이 같은 돌연한 합의에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을 격렬하게 쏟아냈다.

조금씩 파업대오에서 이탈하는 조합원들이 생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성이라는 명분 때문에 끝까지 대오를 지켰던 10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투쟁이 의지와 상관없이 한 순간에 무위로 돌아갔다는 충격과 허탈감에 휩싸인 것.

때문에 합의에 임했던 노조 집행부에 대한 비난은 물론 노조 존립 여부에 대한 무용론까지 빗발치는 등 연세의료원 노조는 그야말로 혼돈에 빠졌다.

조합원들은 물론 의료원 외부에서도 이 같은 난데없는 상황을 초래한 노조 집행부의 입장변화에 대한 갖가지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강경 입장을 고수한 의료원에 맞선 단일노조의 투쟁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며 연세의료원 노조를 뒷받침해 줘야 했던 한국노총의 진두지휘가 사실상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이번 상황을 분석했다.

한 민주노총 관계자는 “18년 전 소규모 파업을 제외하면 사실상 44년 만에 일어난 대규모 파업이 지닌 폭발력을 엄호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해 줄 세력이 없었다”며 노조의 이번 타협이 현실적인 한계로 인한 것임을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연세의료원 파업 사태에 대해 공공성이라는 정당성이 확실했고, 조합원의 참여율도 좋았으며 지도부 역시 열심히 하는, 그야말로 3박자를 다 갖춘 최강 정예 조직을 갖추고서도 단위 사업장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파업 한달 째 정도가 되면 조합원 일부가 복귀하는 현상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해 파업참가자 이탈이 점차 증가할 것을 우려해 서둘러 파업을 마무리한 것 아니냐는 항간의 추측은 뒷심을 발휘해 보지 못하고 이번 사태가 종결된 것에 대한 실질적인 이유가 되지 않았을 것임을 시사했다.

가령 민주노총 산하 보건의료노조의 경우 산별이라는 틀은 물론 민노총이라는 상위 조직이 노조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하지만 단일 사업장인 연세의료원 노조가 그 같은 지원 없이 단독으로 조직적인 의료원측을 상대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

즉 연세의료원노조 파업에서 상위 조직인 한노총의 진두지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한노총이 그간 투쟁 보다는 원만한 합의로 교섭을 마무리 지어왔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 연세의료원 노조의 파업은 한노총 역사상 가장 큰 일이 터진 셈이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장기파업의 경험이 많고, 사측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민노총 보건의료노조와 비교해 봤을 때 투쟁력이 거의 전무한 한노총이 아무리 한달 간 진두지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세의료원 노조를 뒷받침해주기에는 역부족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민노총 보건의료노조가 지원요청 시 언제든지 연대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것과 관련, 한국노총이 이를 결사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연세의료원 노조 집행부측으로서는 선뜻 공식적으로 지원 요청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노조 집행부 입장에서는 상급단체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지원 없이 단독으로 의지도 없는 사측과 진전 없는 교섭을 무한정 해 나가기에는 연세의료원 노조의 열정과 의지만으로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측의 입장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무런 지원이나 연대없이 단위 노조만으로 ‘CMC사태’와 같은 장기파업을 감당하는 것은 무리이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쯤에서 파업을 접고 더이상의 전력 손실을 막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계산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랬을 경우 이 같은 정황과 상황 인식을 집행부가 조합원들에게 공개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상황으로 보여진다.

노조 집행부가 이번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 없이 유례없이 조합원의 일치단결의 힘을 보여줬다고 두리뭉실하게 강조하는 이유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중노위 조정안 합의 과정과 관련해 바로 그 자리에서 합의하기 보다는 조합원들과 토론의 과정을 거쳐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는 평가다.

아울러 한국노총 자체가 임금단체협상에 대한 원칙과 절차가 미비했다는 점도 이 같은 ‘과정 없는 결정’에 한 몫을 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어찌됐든 공식적인 교섭이 종결된 이상 이번 파업을 실패로 받아들일 것인지 생산적으로 수습해 나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연세의료원 노조의 과제로 남았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이번 파업을 실패로 규정짓고 만약 주저앉는다면 노조 제거라는 사측의 궁극적인 의도에 충실하게 되는 것”이라며 “어떤 노동단체라도 파업과 관련된 부분은 수습이 쉽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고 포기하지 말고 다음을 위해 잘 수습해 나갈 것”을 당부했다.

한편 이번 사태가 사실상 ‘노조의 백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에서 복귀한 조합원들에 대한 의료원의 탄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원은 이번에 연세의료원노조가 보여준 열광의 배경을 알아야 할 것”이라며 한 번 투쟁의 맛을 본 조합원들을 현명하게 대하지 않는다면 이후 더 큰 어려움을 자초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그는 “그들이 ‘일반직’이라는 화두로 이번 파업에 임했던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며 “단순히 노조 집행부의 선동으로 치부해 노조를 꺾으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일반직으로서 그들이 의사와의 관계에서 가졌던 해묵은 소외감이 어떠했는지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응어리를 풀어주기 위한 해결책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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