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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과잉의료 천국 대한민국 의료의 현주소

질병 진단 늘었지만 사망률 변화 없고 오히려 병 키운다

한국의료가 과잉진단과 과잉치료의 늪에 빠져 ‘환자를 위한 의료’가 아닌 ‘의료를 위한 의료’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안형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27일 오전 11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지하대강당에서 ‘과잉진단 및 과잉진료의 현황과 보험자의 역할’을 주제로 개최된 제23차 건강보험정책세미나에서 한국의료체계에서의 과잉의료 현황을 설명하며 이같이 밝혔다.

과잉진단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 아니어서 가만히 놔두면 별문제가 되지 않는데도 굳이 질병으로 진단해 환자를 치료하고 의료비를 지출하며 정신적 트라우마를 주는 것을 말한다. 심지어 약을 먹음으로써 없던 부작용이 생기는 사람도 있다.

과잉진단은 영상의학 진단장비의 발달로 과거에는 발견하기 힘들었던 병변을 훨씬 더 쉽게 발견하고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가능하게 됐다.

암진단은 늘었는데 사망률은 변화없어
안형식 교수는 “사실 유방암이나 전립선암이 진단돼도 이 중 악성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 유방암의 경우 20-30%만이 악성으로 변하며 보통의 사망자를 부검하면 대부분 유방암과 갑상선암 등 암세포가 소량 발견될 정도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암세포가 조금씩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진단이 늘어났는데도 사망률이 그대로라는 것은 진단으로 질병이 더 많이 발견된 덕분에 치료가 잘 이뤄져서 원래 늘어날 뻔했던 사망률이 줄어든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안 교수는 “그럴 가능성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안 교수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갑상선암 과잉진단 논란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없는 대표적인 과잉진단 케이스”라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도 갑상선암은 단골 과잉진단 메뉴이지만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더 심해 갑상선암 진단이 최근 10년 사이 무려 7-8배로 증가했지만 사망률은 전혀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안형식 교수는 “유방암과 전립선암도 마찬가지이며 모든 진단이 모두 과잉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심지어 질병의 정의가 확장되는 경우도 있다”며 ‘골다공증 캠페인’, ‘대사증후군 캠페인’ 등 의료학회들이 벌이는 질병 예방 캠페인을 대표적인 케이스로 지목했다.

위험요인을 아예 질병으로 전환시켜 골밀도 수치가 낮은데도 골다공증으로 진단하고, 경계성 고혈당을 당뇨병으로 진단하며, 심지어는 대사증후군 캠페인과 같이 일상 생활습관에 불과한 것을 질환으로 전환해 환자에게 약을 주고 치료를 받게 하는 등 과잉의료가 남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질병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질병기준이 바뀌어서 새로운 환자 생겨
안형식 교수는 “사실 문제는 질병판정기준이다. 누구나 골밀도와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 등에 이상이 있을 수 있지만 어느 순간 질병으로 발전하느냐가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수치의 변화가 아니라 기준의 변화에 따라 환자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우리나라 본태성고혈압 환자수는 지난 2000년 200만여명을 기록하다가 2010년에 이르러서는 500만여명을 기록하면서 약300만명 이상 폭증한 바 있다. 이는 갑자기 사람들의 혈압이 높아져서가 아니라 고혈압 진단 기준을 올린 덕분에 가능했다.

당뇨병 환자수가 지난 2000년 70만여명 수준에서 2010년 200만명에 가까운 것도, 협심증 환자수가 지난 2000년 30만여명 수준에서 50만여명을 돌파한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밖에 척추병, 경추골원판, 우울증 등 그 사례는 너무나 많다. 최근 10년 새 10배 가까이 환자가 늘어난 질병도 심심찮게 보인다.

안형식 교수는 “척추디스크 환자가 늘어난 것은 요통이 전혀없는 사람들에게까지 고가장비인 MRI를 촬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를 정상이라고 할 수 있나? 이처럼 우리나라 의료 곳곳에 과잉진단이 셀수없이 많은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잉진단 남발되도 제약사·병원·환자는 웃는다
그럼 여기서 과잉진단이 남발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안형식 교수는 제약회사의 이익창출, 각종 캠페인, 병원건강검진 등이 질병 환자를 늘리는 요인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외국에서도 제기되는 문제들이다. 대한민국은 ‘과잉의료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외국과 비교해도 과잉진단이 너무나 많은 실정이다.

과잉의료의 원인은 결국 ‘잘못된 의료제도 때문’
안형식 교수는 유독 우리나라에서 과잉진단 및 과잉치료가 남발되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에 대해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잘못된 의료구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안 교수는 “행위별 수가제로 의료공급자 입장에서 서비스를 많이 제공할수록 이윤이 남는다. 또한 국민의 병의원 접근이 어느 나라보다도 쉬운 점도 과잉의료의 큰 원인이다”라고 진단했다.

병원입장에서도 검진 시 질환이 미발견 됐을 경우의 책임, 환자의 병원방문동기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과잉의료라기 보다는 방어진료차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말이 있다.

안형식 교수는 “과잉진단 문제는 무엇보다 ‘인간에게 병이 과연 무엇인가? 환자 건강수준에 얼마나 기여하나?’라는 근본적 물음이 필요하다”며 “전 세계가 갖고 있는 이러한 ‘불편한 진실’에 대해 광범위하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과잉진단에 대한 정확한 규모 파악하고 해결책 마련해야
안형식 교수는 “미리 예상을 했지만 이번 연구를 진행하면서 정말 많은 과잉진단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정말 놀랐다”고 말했다.

사실 과잉진단은 병원과 제약사 입장에서는 이롭다고도 할 수 있다. 환자입장에서도 불편할 게 없다.

안 교수는 “과잉진단 문제는 제약회사와 병원 입장에서는 환자가 많으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어 좋고, 환자입장에서도 마음 편하게 진단을 받고 크게 돈을 안들이고 병원을 찾을 수 있어 실제 과잉진단으로 불편을 겪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사회가 급속히 고령화되어 노인의료비 급증하고 의료 이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이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

안형식 교수는 “최근 10년 사이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급속히 변함에 따라 누구도 제기하지 않으려 하는 과잉의료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며 이제 공론화 시킬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