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단체연합회(이하 환연)는 임종기 환자의 존엄사 허용을 법제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제적 이유로 인한 남용 방지책을 마련하고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7일 성명을 통해 밝혔다.
정부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제도화 논의를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지난해 5월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이하, ‘권고안’)을 발표했고 이후 10개월 동안 사회적 논의를 거쳐 보건복지부가 그 결과를 지난 2일 국가생명윤리정책위원회(이하, 국생위)에 보고했다.
특별위원회 권고안’에 따르면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환자의 명시적인 의사표시는 없고 연명의료에 관한 가족의 진술만 있는 경우 ‘가족 2인 이상의 진술이 일치하는 경우 의사 2인이 환자의 의사로 추정하여 인정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국생위’에 보고된 내용에 따르면 존엄사의 요건을 좀 더 엄격히 강화했다.
가족 2인 이상의 일치된 진술을 환자의 의사로 무조건 추정하지 않고 일기, 유언장, 녹취록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는 절차를 추가한 것이다.
국생위는 환자의 명시적인 의사표사가 없어 가족 2인 이상의 일치된 진술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하는 경우와 연명치료 중단의 대리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 ‘특별위원회 권고안’에 따르면 가족의 범위가 “부모, 배우자, 자녀”로 국한되는 것도 “형재자매”까지 확대했다.
우리 사회에서 가족이 전혀 없거나 1명인 경우도 많아서 이 경우 가족의 범위를 “형제자매”까지 확대한 것이다.
또한 ‘특별위원회 권고안’에는 별도기구 설치에 대한 언급이 없었으나 ‘국생위’에 보고된 내용에는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자의 인적사항을 관리하고, 무연고 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여부를 결정하는 각각의 병원윤리위원회를 감독하기 위해 별도기구로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가칭)”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환연은 “연명치료 중단의 대리결정 허용된다면 환자의 의사추정 요건 강화는 당연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별위원회 권고안’에 따르면 환자의 명시적인 의사와 환자의 의사 추정이 인정될 수 있는 사전의료의향서 또는 이와 동일시할 수 있는 수준의 문서, 녹취, 영상 등이 없어도 오직 연명의료에 관한 가족 진술만 있으면 의사 2인이 환자의 의사로 추정해 인정할 수 있다.
환연은 “그러나 이 경우에도 가족 2인 이상의 일치된 진술을 의사 2인이 환자의 의사로 추정해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단순히 환자가족의 진술만으로 환자의 의사로 추정할 경우 의료현장에서 남용될 위험이 높기 때문에 연명치료 중단의 대리결정 절차를 따르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2008년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하며 존엄사 논쟁을 이슈로 떠오르게 했던 김할머니 사건에서 대법원은 가족 진술만으로 연명치료 중단의 의사추정을 폭넓게 인정했다.
환연은 “그러나 이는 연명치료 중단의 대리결정을 허용하지 않는 현행법령을 고려한 판결이라고 할 수 있고 만일 연명치료 중단의 대리결정이 법적으로 허용된다면 대법원도 연명의료의 의사추정을 폭넓게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국생위’에 보고된 내용에는 종교계와 환자단체의 우려를 반영해 가족 2인 이상의 일치된 진술을 환자의 의사로 추정할 때 무조건 인정하지 않고 일기, 유언장, 녹취록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는 절차를 추가했다.
환연은 이와 관련해 “이로써 가족들이 경제적 이유로 연명의료 결정을 남용하는 사례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의료계 일부에서는 연간 약 15만 명의 임종기 환자들이 미래의 연명치료 중단을 대비해 객관적 자료를 남겨두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법제화 되어도 극소수의 환자만 대상이 될 거라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환연은 이와 관련해 “2013년 ‘특별위원회 권고안’은 지난 2010년 ‘사회적 협의체 합의안’에서 인정하지 않았던 적법한 대리인과 가족 전원의 동의에 의한 연명치료 중단의 대리결정을 허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일기, 유언장, 녹취록 등 객관적 자료가 없는 경우에는 가족 2인의 일치된 진술을 환자의 의사로 추정할 것이 아니라 가족 전원의 동의에 의한 대리결정 절차를 거치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환연은 “더 나아가 연명의료 결정이 법제화되면 사전의료의향서 등 연명의료 결정에 대한 의사를 표시하는 문서의 작성이 문화로 정착되어 환자의 명시적인 의사 또는 환자의 의사로 추정되는 경우도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무엇보다 연명치료 중단 자체를 생명권 본질의 침해라며 강력히 반대하는 종교계의 의견을 고려한다면 연명치료 중단의 남용을 방지하는 제도의 도입에 강력히 반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환연은 또 “핵가족화 및 낮은 출산율 고려하면 의사추정 및 대리결정에 있어서 가족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별위원회 권고안’에 따르면 환자의 명시적인 의사표사가 없어 가족 2인 이상의 일치된 진술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하는 경우와 환자의 명시적인 의사도 없고 환자의 의사 추정도 인정될 수 없어서 대리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 가족의 범위를 “부모, 배우자, 자녀”로 제한하고 있다.
환연은 “그러나 ‘국생위’에 보고된 내용에는 핵가족화 및 낮은 출산율로 부모와 자녀가 없는 부부, 부모와 자녀가 없는 독신자 등 가족이 전혀 없거나 1명인 경우도 많아서 이 경우 가족의 범위를 ‘형제자매’까지 확대하도록 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연명치료 중단의 남용을 방지하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나 핵가족화로 형제자매의 결속력이 약하고 형제자매가 많은 경우 신속한 연명의료 결정을 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환연은 또 사전의료의향서, 병원윤리위원회 등의 체계적 관리 및 감독을 위해 별도기구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환자의 명시적인 의사도 없고 환자의 의사 추정도 인정될 수 없고 고아, 독거노인 등과 같이 적법한 대리인이나 환자가족도 없는 무연고자의 경우 원칙적으로 대리결정을 할 수 없어 연명치료 중단의 대리결정을 허용할 것인가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환연은 “따라서 이를 인정하려면 적법한 대리인이나 환자가족이 있는 경우와 동일한 수준의 공신력 있는 대리결정을 해줄 수 있는 자, 예를 들면 지방자치단체장, 병원윤리위원회 등이 환자를 위한 최선의 조치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면서 “지자체장, 병원윤리위원회 등이 환자를 대신한 결정도 의사 2인에 의해 합리적인지를 확인받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별위원회 권고안’은 이 경우 ‘병원윤리위원회’에서 환자를 위한 최선의 조치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고 병원윤리위원회의 환자를 대신한 결정에 대해 의사 2인(담당의사가 아닌 타 진료과의 전문의 1인을 포함)이 합리적인지를 확인하도록 했다.
환연은 이에 대해 “병원윤리위원회는 현재 설치운영중인 의료기관의 수가 적고, 인적구성에 있어서 객관성이 부족하고, 회의가 자주 열리지 않는 단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종교계와 환자단체는 고아, 독거노인 등 무연고자의 인권보호 차원에서 이들의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최종 권한을 ‘병원윤리위원회’에 부여하는 것에 부정적이었고 정부에 적극적인 제도보완을 요구한 바 있다.
이번에 ‘국생위’에 보고된 내용에는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자의 인적사항을 관리하고, 무연고 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여부를 결정하는 각각의 병원윤리위원회를 감독하기 위해 별도기구로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가칭)”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환연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가칭)이 현재 ‘병원윤리위원회’가 갖고 있는 단점들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나 개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점에서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다만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의 명시적 의사표시도 없고,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도 없는 경우라면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진의(眞義)가 무엇인지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비록 소수의 임종기 환자라고 할지라도 연명의료를 계속하기를 희망하는 경우를 무시할 수 없다”며 “환자의 명시적인 의사도 없고 환자의 의사 추정도 인정될 수 없는 경우 엄격한 요건 하에 대리결정을 허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환연은 “적법한 대리인과 환자가족의 합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명치료 중단의 대리결정을 허용하는 것은 환자의 진의를 왜곡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연명의료를 계속하기를 바라는 소수의 임종기 환자를 위해 최소한의 보호 장치와 남용 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을 전제로 연명치료 중단의 대리결정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연은 “따라서 특별위원회 권고안처럼 법정대리인이나 후견인, 성년후견인 등의 적법한 대리인 그리고 가족(배우자, 직계비속, 직계존속) 모두가 합의하여 환자를 위한 최선의 조치를 결정할 수 있고 이 경우에도 환자를 대신한 결정이 의사 2인(담당의사가 아닌 타 진료과 전문의 1인을 포함)이 합리적인지를 확인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환연은 궁극적으로 연명의료 결정 법제화보다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환경조성이 더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특위 권고안에는 “환자가 연명의료 대신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선택할 수도 있도록 정부와 사회는 적극적으로 제도를 마련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지만 우리나라의 호스피스-완화의료 인프라는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환연은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선택할 수 없는 의료적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적법한 대리인이나 가족에 의한 임종기 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의 대리결정을 허용할 경우 남용의 위험이 크다”며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대리결정의 법제화 도입에 강력히 반대하는 종교계와 일부 환자단체들도 있다는 사실 또한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연은 “이번 ‘특별위원회’의 권고안을 계기로 촉발된 연명의료 결정 법제화 논의가 의사, 병원, 건강보험공단, 환자가족의 임종기 환자에 대한 의료적, 경제적, 도덕적 책임을 법적으로 벗어나게 해주는 하나의 면피용이 아니라 호스피스-완화의료 환경조성과 함께 환자의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실제적으로 보장하는 도화선(導火線)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