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사측이 요구한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에 찬성의사를 표시한 간호사들의 75.7%가 병원 측의 압박에 의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는 서울대병원이 자체적으로 진행한 내부 설문조사에 따른 것. 앞서 서울대병원은 원내 간호사 400명을 대상으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대한 설문조사를 지난 10일부터 11일까지 실시한 바 있다.
설문조사 결과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설문에 응한 간호사 400명 중 단 27%만이 취업규칙에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들이 동의한 이유는 “내키지 않지만 부서장의 압박 때문에”라고 답한 이들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취업규칙 변경 내용을 모두 이해한 사람 역시 400명 중 17명뿐인 것으로 나타났고, 취업규칙 변경에 대한 동의서를 압박하기 위해 대부분의 부서장이 간호사들에게 두세 번씩 강요했다고 밝혔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 서울대병원분회(이하 노조)는 이와 관련해 “자율적이고 집단적인 의사결정 방식을 통해 받았다는 병원의 주장은 대부분 거짓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노조는 또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서울대병원이 노동자들에게 서명을 받기 위해 ▲서명 동의율을 왜곡하고 ▲서명 거부자를 따로 불러 서명을 강요했으며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에게 고용을 위협하면서 서명을 강요하는 등의 불법적인 행동을 저질렀음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심지어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에 서명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부서장이 인사도 받지 않았고, 심지어는 ‘서명을 하지 않으면 한 대 맞을 것 같은 강압적 분위기였다’라고 털어놓은 노동자도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일부 노동자는 위압적인 분위기에서 동의 서명을 했다가 이를 다시 철회하려 했지만 부서장이 이미 상부에 보고 했다는 식으로 거부하는 등 노동자 개인의 의사는 철저히 무시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이처럼 서울대병원 사측이 노동자들의 인권과 존엄성까지 짓밟으면서 불법적으로 진행한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악시키기 위해 폭력을 휘두른 서울대병원장과 이를 의도적으로 방조하는 교육부 및 기획재정부를 상대로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에 대해 “말로만 노동조합과 교섭을 하겠다고 했을뿐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본인의 기본급은 9% 인상시키는 안으로 바꾸려는 등 부도덕한 취업규칙 개정(안) 진행을 자행했다”며 “이를 즉각 중단하고 단체교섭 자리로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조는 또 오 원장에 대해 “더 이상 서울대병원을 비정상적으로 운영해서는 안된다”며 “취임 1년차에는 비상도 아닌데 비상경영으로, 2년차에는 불법적인 병원영리자회사 운영으로 문제를 일으킨 것부터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도 “서울대병원 등 공공병원의 공공성을 다 망치는 가짜 정상화를 즉각 철회하고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노동 3권을 부정하고, 공공기관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좌지우지하려는 월권행위를 저지름에 따라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정부가 법을 어기면서 누구에게 법을 지키라고 할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교육부와 기획재정부에 대해 “서울대병원 등 국립대병원을 더 이상 협박하지 말고, 공공의료를 강화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약을 충실히 이행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