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척추·관절 MRI 급여화가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위해 신중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의료계의 조언이 나왔다.
연세의대 신경외과학교실 신동아 교수는 대한의사협회지(JKMA) 2021년 3월호에 실린 ‘한국의 자기공명영상검사 건강보험정책’ 글을 통해 정부가 추진하는 MRI 급여화 정책을 분석하고 추진 방향을 제시했다.
각각 3300억원·3700억원 규모로 추산되고 있는 척추·관절 MRI는 2021년 정부의 당초 로드맵보다는 늦춰지고 있지만 조만간 급여화가 이뤄질 전망이다.
신 교수는 2018년 도입된 뇌 MRI 급여화의 실정에서, 환자에게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는 MRI의 나머지 비용을 병원이 고스란히 짊어지게 되는 가능성을 우려했다.
정부가 급여화시 현장 가격을 최대한 보전해 준다고 하지만, 실제 협상에서 어떻게 결정될지는 두고 봐야한다는 것.
복지부는 뇌 MRI 급여화를 시작하면서 검사 후 진단이 나오지 않더라도 삭감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연간 1642억원의 재정이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 뇌 MRI 급여화는 2019년 진료 청구액이 약 2800억원으로 집계됐다.
신 교수는 “예측 실패로 상황이 어려워지자 복지부는 삭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무시했으며 2020년 10월 고시를 변경하고 대량 삭감을 예고하고 있다”며 “또한 뇌졸중, 뇌종양 등 뇌질환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기존과 같이 본인 부담률 30~60%가 적용되지만, 그 외에는 80%로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한 복지부는 보험기준 강화와 함께 청구건수가 많은 의료기관은 선별·집중 모니터링하겠다고 했다”며 “MRI 급여대상이 확대되면 MRI 청구 건수 급증이 충분히 예측되는데도 불구하고 안일하게 판단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현재로서는 비급여 MRI 건수를 정확히 집계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정확한 수요 예측이 불가능하므로 예산을 세우기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즉 정확한 예측 없이 수립되는 정책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MRI가 가지는 적응증의 한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MRI 촬영에는 절대적 기준이 없다. MRI를 언제 찍어볼지는 상대적 기준만이 존재한다.
그는 “의사는 촬영을 원하는 환자에게 의학적 필요성이 부족함을 이유로 MRI 검사를 거절하기는 어렵다”며 “또한 많은 환자를 짧은 시간에 진료해야 하는 국내 진료실 현장에서 의사들은 MRI와 같은 영상검사를 방어적으로 처방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이어 “전면 급여화로 MRI에 대한 가격 장벽이 없어지면 환자와 의사의 MRI 촬영 욕구를 막을 방법은 없다”며 “통증을 주증상으로 진료를 받는 척추와 관절 질환은 객관적 진료기준을 만들기가 불가능하다. 진료시 실제 질환 유무와 상관없이 일정한 수가를 지급받을 수 있다는 점까지 더해지면 척추와 관절 질환에서 MRI 진료량을 통제할 수단은 없다”고 설명했다.
척추 및 근골격계 MRI의 이용범위가 불명확하다는 문제점을 주의 깊게 인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신 교수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 구축을 위해 ▲척추 MRI 급여 범위는 필수의료에 준해야 하며, 그 외는 비급여나 그에 상당하게 존치 ▲MRI 관련 보상방안 협의는 척추와 관절을 분리해 논의 ▲임상현장에서 환자가 MRI 촬영을 강력히 원할 시 촬영 허용 ▲척추MRI 촬영 시 특수 부위나 복합 촬영 별도 보상 등 대책 마련 ▲진료비 증가뿐만 아니라 현재 계산하지 않고 있는 행정비의 급증에 대한 대책 마련 ▲척추 MRI 급여화 시 수가는 최소한 중소병원의 관행수가 유지 ▲코로나19 사태의 진정 이후 충분한 협의 후 진행 ▲ 대한의사협회를 대표 단일 창구로 협의 등을 제안했다.
신 교수는 “양질 의료의 효율적 공급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한국에서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어야 한다. 단순히 보장률만 높인다고 의료질이 높아지지는 않는다”며 “오히려 저가 정책으로 의료의 질은 떨어지면서, 비필수 환자군의 대량 유입으로 재정은 바닥날 수도 있다”고 충고했다.
끝으로 “MRI 전면급여화는 의료계와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통보됐지만 향후에는 코로나19와 같은 여러 가지 변수를 감안해 신중하게 추진할 것을 당부한다”며 “무상의료에 가까운 정책실험이어서는 안되고 지속 가능한 변화여야 할 것이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선이 필요한 정책이 아니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