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시원의 무책임한 한의사 국가시험 관리를 규탄했다. 현행 한의사 시험이 의과 영역을 과도하게 침범, 한의사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8월 국시원은 한의사 국가시험 출제범위에 CT(컴퓨터단층촬영장치) 등 의료기기 영상 분석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는 취지의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연구의 예시 문항으로 제시된 ‘사상체질의학의 질병(KCD) 진단 및 치료하기’ 문항은 구토와 극심한 두통으로 내원한 80세 남자의 뇌 CT 촬영 사진과 심전도 검사 결과를 보여준 뒤 ①파두여의단 ②감수천일환 ③청폐사간탕 ④팔물군자탕 ⑤오가피장척탕 중 맞는 처방을 고르도록 하고 있다. 한방에서 중풍에 사용한다는 청폐사간탕이 이 문제의 정답이다.
하지만 의협에 따르면 이 문항에서 예시로 보여준 뇌 CT 사진은 뇌종양인 ‘교모세포종(Glioblastoma)’을 앓고 있는 60세 여성 환자의 것으로 호주 로열멜번병원(Royal Melbourne Hospital) 영상의학과 프랭크 게일라드(Frank Gaillard) 교수가 ‘Radiopaedia’에 올린 사진으로 추정되고 있다.
의협은 “예후가 극히 불량한 고등급 교종의 치료는 사망 위험이 높아서 외과적 전적출술, 전뇌 방사선치료 그리고 항암제 복용이 필요함에도, 한의사 시험문제의 답안은 단지 청폐사간탕이란 한약을 처방하는 것으로 돼 있다”며 “뇌종양을 중풍(뇌졸중)으로 잘못 진단하고, 다른 환자 사례를 무단으로 사용하며, 환자의 연령과 증상도 작위적으로 만드는 등 엉터리 연구에 막대한 국민의 혈세가 낭비됐다. 중풍으로 오인한 출제여도 문제고, 악성 뇌종양으로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한약을 처방하라는 출제여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의협은 한의사 국가시험의 대대적인 개선 필요성도 주장했다.
의협이 최근 5년간 시행된 한의사 국가시험 필기문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진단검사, 영상의학 관련 검사 등 한의사가 사용하면 불법인 의과진단기기를 인용한 문제 개수가 2018년 34문항에서 2022년 73문항으로 의과영역 문제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심지어 문제 내용과 상관없는 검사결과까지도 언급하면서 의과진단기기 사용 등 무면허의료행위를 조장하고, 2020년도 이후에는 신종플루검사, 알레르기 피부검사 등도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의협은 “특히 한방치료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위험한 재생불량성빈혈이나 림프종 등에 대한 한방처방을 묻는 문제, 현대의학의 응급조치가 시급한 상황에서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한방치료를 선택하는 문제들도 출제가 됐다”며 “이는 도무지 국가가 관리하는 한의사 시험이라고 보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의협은 “국시원의 한의사 국가시험 관리 행태에 대해 강력히 규탄하며, 국시원이 본래의 설립 취지에 맞게 우수한 한의사를 배출할 수 있도록 한의사 국가시험을 의사 국가시험과 명확하게 구별해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이원성 취지에 맞게 제대로 관리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나아가 보건복지부장관은 즉시 국시원법에 따라 국시원이 한의사 국가시험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 철저히 조사해 위법 또는 부당한 사실이 있을 경우에는 국시원에 시정 요구 내지 필요한 조치를 명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조속히 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의과 국가시험과 같이 한의사 국가시험도 구체적으로 시험과목과 이에 따른 출제범위를 상세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