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산부인과 분만실이 마취과 의사 부족과 고액 배상 리스크 등으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특히 그간 지방 작은 마을의 이야기였던 분만 인프라 붕괴가 이미 서울까지 닥쳐왔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벼랑끝에 몰린 국내 분만 및 산부인과 회생을 위해 국가차원의 배상보험 지원과 필수의료 안전망 구축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최근 소송이 증가함에 따라 의료기관 가입 보험 또는 전문의 가입 고액배상보험에 대해 국가가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회장 김재연)가 21일 제54차 추계학술대회 개최를 맞아 롯데호텔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현장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먼저 김재연 회장은 배상보험 현실과 정부 발표 간 괴리를 지적하며, “정부가 3억~10억 배상금의 일부를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3억도 제대로 지급되는 사례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김 회장은 현행 보험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강조했다. 보험가입 대상이 분만실적이 있는 병원으로 제한돼 있어 신규진입 의사들이 보험 가입하기 어렵다는 것. 김 회장에 따르면 실제 분만 건수가 있는 병원은 전국에 200~300곳에 불과하다.
해결 방안으로 김 회장은 국가책임 원칙을 제안했다. 이는 3억원 이상 고액 배상 부분은 국가가 전액 책임지고, 초과분은 보험과 연계하는 방안이다. 김 회장은 “과실과 무과실을 구분하지 않고 필수의료로 인한 모든 의료분쟁에 대한 배상비용을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대원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상보험 방안이 개편되면 산부인과 인력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회장은 “전공의들이 산부인과를 택하지 않는 첫 번째 이유가 사법리스크다. 어떠한 악결과가 나오더라도 국가가 다 커버해주겠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 한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민사적 판결에 대한 금액을 국가가 전액 보전해주는 방안이 더 현실적이고 안전망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국가가 필수의료에 관한 부분을 공공의료로 생각해서 해결하지 않는다면 시스템 붕괴 시 손해는 현재 정부에서 지원하는 규모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며 “현재 산부인과 의사들이 은퇴하고 나면 분만실 운영할 수 있는 인력 자체가 없어진다. 이를 방치하는 것보다 새 의사가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배상보험 문제에 더불어 지역분만 병원이 지속적으로 감소되고 있는 현실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 김 회장은 “서울의 5개구에서 분만실 폐쇄가 임박했다. 분만 취약지역은 ‘서울’이 될 수도 있다”며 “광역시 시군구에서 분만실 폐쇄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마취과 의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후문이다. 김 회장은 “필수의료 지원 인력 확보가 어려운데다, 마취과 의사가 부족해 산모가 사망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그러나 정부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석수 대의원회 간사는 “마취과 의사도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저녁시간대에 마취해주기를 꺼려한다. 산부인과 마취가 일반 마취보다 더 위험하기도 하다”며 위험성을 전했다.
산부인과 입장에서도 마취과 인력은 고액의 인력이라 선뜻 초빙하기가 어렵다.
이 간사는 “마취과 의사를 밤에 초빙하려면 수술비용을 다 드려야 할 정도다. 심지어 그 돈을 다 줘도 오게 하기가 어렵다”며 “이는 군이나 면단위가 아니라 광역시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좀 더 작은 지역으로 내려가면 사실상 붕괴 상태다. 이런 지역은 자연분만은 꿈도 못 꾼다”고 전했다.
끝으로 김 회장은 정책가산과 지역가산 문제도 언급했다. 김 회장은 “현재 55만원씩 분리 지원되고 있으나, 광역자치단체 기준 혜택의 58%가 경기도에 집중되고, 나머지 지역은 30%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하며 불합리한 현 제도의 개선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