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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은 필수의료 사형선고

대한신경과학회는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이하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필수의료를 살리기는커녕,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을 회생 불가능한 도탄에 빠뜨릴 악법임을 천명하며, 본회의 통과 저지 및 전면 수정을 강력히 촉구한다.

본 법안은 의료 행위의 특수성을 완전히 무시한 채 의료 사고를 단순 ‘교통사고’ 체계로 치환하려는 비전문적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급성 뇌졸중, 뇌전증 등 촌각을 다투는 응급질환을 다루는 전문과인 신경과학회는 다음과 같은 법안의 치명적 결함을 지적하며 임상의사들의 절규를 담아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다.

1. 전문가 게이트키핑 없는 ‘무분별한 배상 신청’은 의료 붕괴의 서막이다

의료 행위 중 발생하는 나쁜 예후는 과실이 아닌 질병 자체의 경과인 경우가 대다수다. 고의적 과실이나 의학적 무지가 아닌 이상 과실을 따지지 않는 것이 세계적 기준임에도, 본 법안은 전문가에 의한 사전 ‘게이트키핑(Gate-keeping)’ 없이 누구나 보상을 신청하게 하여 소송 남발을 부추기고 있다. 이는 결국 의료진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게 만들어 필수의료 현장을 사지로 몰아넣을 것이다.

2. ‘7일 이내 설명 및 사과 강제’는 의료인의 양심과 방어권을 짓밟는 처사다

환자의 예후가 나빠졌을 때 가장 고통받는 것은 치료에 매진한 의료진이다. 정신적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7일 이내에 강제적으로 설명과 사과를 하라는 규정은 의료인의 인권을 유린하는 것이며, 이는 추후 법적 다툼에서 불리한 증거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러한 강제 조항은 의사들로 하여금 고위험 환자 진료를 기피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3. 비전문가 위주의 ‘판정위원회’ 구조는 정치적 판단의 온상이 될 것이다

현재도 의료인 비중이 극히 낮은 의료중재원의 구조가 그대로 배상 판정위원회에 적용되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의학적 인과관계가 아닌 ‘환자가 불쌍하니 보상하라’는 식의 정치적·감성적 판정은 배상액의 기하급수적 상승을 초래할 것이며, 이는 곧 필수의료 병원과 의사들의 파산으로 이어질 것이다.

4. ‘12대 중과실’ 리스트 도입은 의학적 무지의 극치다

특히 ‘예측 가능한 부작용에 대한 대처 미흡’을 중과실로 규정한 것은 실소를 금치 못할 대목이다. 의료법 현실에서 이미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주의의무 및 설명의무 위반’을 중과실로 못 박는 것은, 모든 의료 행위를 형사 처벌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이는 판사의 재량권을 빼앗고 의사에게 무결성을 강요하는 독소 조항으로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

5. 저수가 구조에서 ‘배상 보험료 강제’는 명백한 설계 오류다

당연지정제 하에 저수가 체계를 유지하면서 위험 비용에 대한 산정도 없이 보험료를 의료진에게 전가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수가에 위험 비용이 반영된 일본 수준의 상향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마땅히 국가가 보험료 전액을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다.

현재 신경과 전문의 40%가 소송에 휘말려 있고 그중 60%가 뇌졸중 관련 다툼이다. 이로 인해 뇌졸중 치료 현장은 이미 초토화됐다. 전임의가 사라지고 응급 대응 인력이 고갈된 작금의 상황에서 이 법이 통과된다면, 어느 누가 촌각을 다투는 뇌졸중 환자를 받으려 하겠는가? 의료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치부하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은 대한민국 뇌졸중 치료 체계에 내리는 사형선고이다. 

대한신경과학회는 국회에 강력히 요구한다.

지금이라도 법안을 멈추고 현장의 의료 전문가와 상의해 진정으로 필수의료를 살릴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 전문가의 게이트키핑을 보장하고 국가 책임을 명시하지 않은 채 통과를 강행한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의료 공백과 국민의 피해는 전적으로 국회와 정부의 책임임을 경고한다.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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