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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진단난민 온다…복지부가 최소한의 환자안전망 제거”

응급실 뺑뺑이에 이어 정확한 진단을 받기 위해 병원들을 돌아다니는 ‘진단 난민’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까지도 오진으로 인한 피해로 정확한 진단을 받기 위해 병원을 전전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 문제를 최소화하고 진단 역량을 끌어올린 대표적인 계기가 바로 최신 영상의료기기의 등장과 이를 판독하는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세계 최고 수준 역량이었다.
 
실제로 한국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국제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세계 각국에서 교육을 받으러 찾아오는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환자들이 이런 진단 역량의 혜택을 받기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보건복지부는 MRI를 운용하는 의료기관에 둬야 하는 영상의학과 전문의 기준을 현행 ‘주 4일·32시간 전속’에서 ‘주 1일·8시간 비전속’으로 대폭 낮추는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일주일에 단 하루, 한나절만 방문해도 MRI를 합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방식의 기준이 주요 선진국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은 미국방사선학회(ACR) 인증을 통해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MRI 검사 전반에 대한 책임(프로토콜 설정부터 영상 판독, 품질관리, 안전 프로그램 운영까지)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MRI 장비 가동 시간과 연동해 전문의 인력을 산정하는 기준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대한영상의학회가 “전 세계적으로 유래없는 조치”라고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CT, MRI 등의 판독이 환자의 생명과 무관한 걸까.  국제 연구들은 이 질문에 단호히 ”아니오“라고 답한다. 영상의학과 판독 오류로 인한 의료 소송에서 가장 흔한 환자 피해는 악성 종양 미발견(전체 소송의 35%)이었으며, 미발견 환자의 26%가 사망했다. 전 세계에서 매년 진행되는 영상검사 건수를 감안하면, 3~5%의 오류율은 연간 약 4,000만 건의 진단 오류로 이어진다는 추산이 나온다.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국내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소비자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의료피해 구제신청 중 암 오진이 58%로 가장 많았다.  실제로 법원이 확인한 국내 사례도 있다. 한 병원이 MRI 영상을 판독하면서 간암과 간혈관종을 모두 고려하지 않은 채 간혈관종(양성 종양)으로 확진하는 과실을 범했고, 이로 인해 간암 치료 기회를 상실해 환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법원은 병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특히 판독량과 오류율의 관계는 명확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한 번의 근무에 67~90건 이상의 영상을 판독하면 오류 발생률이 2.26배까지 치솟았다.  MRI 1대를 가동할 때 일주일에 약 55~100건의 검사가 시행됨을 고려하면, 주 1일만 방문하는 전문의가 한 주 치 MRI 영상을 몰아서 검토해야 하는 구조에서 오류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번 논란은 사실 이미 예고된 결과다. CT의 경우 이미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주 1회만 방문하는 비전속 근무만으로도 검사를 시행할 수 있도록 법제화되어 있다. 영상의학과 전문의 수 부족을 고려한 조치였지만, 그 결과 영상의 질은 저하됐고 이는 수치로 명확히 확인됐다.

CT, MRI, 유방촬영장치를 이용한 검사의 질을 평가하는 한국의료영상품질관리원 자료 분석 결과,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주 1회 비전속으로 근무하는 병원급·의원급 의료기관의 CT 임상영상평가 점수는 전속 전문의가 있는 기관보다 현저히 낮게 나타났다.

한국의료영상품질관리원이 발표한 구 기준 기간을 분석한 결과, 종합병원급 흉부에서 전속 93.47점 대 비전속 87.43점(차이 6.04점, p=0.008), 종합병원급 복부에서 전속 90.60점 대 비전속 81.00점(차이 9.60점, p<0.001)이었다. 

신 기준 기간의 의원급 세부 분석에서는 두부 전속 86.04점 대 비전속 78.40점(차이 7.6점, p<0.001), 저선량 흉부 전속 87.95점 대 비전속 74.87점(차이 13.1점, p<0.001), 비조영증강 복부 전속 84.57점 대 비전속 68.62점(차이 무려 16.0점, p=0.010)으로 나타났다.  모든 항목에서 비전속 기관의 점수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낮았다.

더군다나 MRI는 CT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고가 검사다. 다양한 설정값 결정, 검사 방법 미세조절 등 검사 시행에서부터 판독까지 훨씬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CT에서 비전속 운영의 폐해가 이미 수치로 증명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보다 훨씬 복잡한 MRI에 동일한 주 1회 비전속 근무를 허용한다면 CT보다 훨씬 큰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상의학계가 우려하는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이렇다. 자본력 있는 의료기관이 MRI 장비를 여러 대 도입하되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상시 고용하지 않고, 주 1일 방문하는 비전속 전문의에게 한주 치 수십~수백건의 영상을 몰아 판독하게 하는 것이다. 

전문의 인건비는 줄이고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MRI 검사 수익은 그대로 챙기는 구조다. 이 경우 업무 과부하에 놓인 전문의가 영상에서 초기 악성 종양을 놓치는 일은 구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제 연구에 따르면 67~90건 이상을 판독하는 근무에서 오류율이 2.26배까지 증가한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됐다. 검사의 질보다 검사의 양을 추구하는 구조가 제도적으로 허용되는 것이다.

CT 비전속 운영 사례가 이미 보여주듯, 전문의가 상주하지 않는 기관에서 MRI 품질 관리가 무너지면 해상도가 낮거나 설정이 잘못된 영상이 생산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정확한 판독을 받지 못한 환자는 결국 KTX를 타고 대형 병원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것이 ‘진단 난민’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다. 

MRI 보다 단순한 CT에서도 비전속 기관의 임상영상평가 점수가 전속 기관보다 최대 16점까지 낮게 나타난 현실을 감안하면, MRI에서의 피해는 CT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이는 개인의 피해를 넘어 불필요한 재촬영과 오진으로 인한 국가 의료 재정의 막대한 낭비로 직결된다.

현재 한국은 전속 전문의 제도라는 최소한의 안전망 덕분에 대규모 진단 사고를 막고 있다. 이 제도는 단순한 행정 규정이 아니다. MRI 검사의 프로토콜을 설계하고, 매일 촬영되는 영상의 품질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며, 문제 발생 시 즉각 개입할 수 있는 전문가를 의무적으로 배치하도록 하는 환자 안전의 최후 보루다.

전속 전문의가 있는 병원에서도 MRI 판독 과실로 환자가 사망한 법원 판결이라는 허점도 생기는데, 주 1회만 방문하는 비전속 전문의만 두는 구조가 됐을 때 어떤 결과가 올지는 묻지 않아도 자명하다. 복지부 개정안은 바로 그 최후의 방어선을 스스로 제거하는 조치다. 선진국들이 인력 부족에도 기준을 낮추지 않는 이유는 이 방어선이 무너지는 순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인력부족은 기준을 낮출 이유가 아니라, 불필요한 검사를 줄이는 등 더 스마트한 해법이 필요한 상황이다.

선진국들이 인력 부족에도 기준을 낮추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기준을 낮추는 순간, MRI 장비는 환자를 위한 의료기기에서 수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전문의 감독 기준을 완화하는 것보다 검사 증가를 억제하고 검사의 질과 환자의 이득을 지키면서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우선하는 이유다. 그렇게 쌓인 부실 검사는 재촬영, 오진, 치료 지연의 형태로 결국 환자의 피해로 돌아온다. 

응급실 뺑뺑이가 단순히 의사 수 부족이 원인이 아니라 의료 시스템의 문제였듯, 진단 난민의 문제도 단순히 전문의 부족이 원인이 아니다. 장비는 있어도 그 장비가 내놓은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면, 환자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금 포기하려는 것은 단순한 규정 하나가 아니라, 수십년에 걸쳐 쌓아온 진단 신뢰의 토대다. 좀 더 세심한 정책적 대안, 환자의 안전을 위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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