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의 청년의사로 이디오피아에 발을 디딘 유민철 박사(65). 한국국제협력단(KOICA·총재 김석현) 의료단원 유 박사는 지난달 30일 정년퇴임하면서 이디오피아에서 30년간 펼쳤던 진료봉사 활동을 마무리했다.
어릴 때부터 의사로서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고 싶었다는 유민철 박사는 고려대 의대를 마치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마친 후, 정부의 아프리카 파견 의사 모집에 자원해 1975년 7월 초 이디오피아 땅을 밟았다.
이렇게 시작된 이디오피아와의 인연은 15번이나 거듭된 계약 연장으로 30년간 이어졌다.
하지만 유 박사의 이디오피아 생활은 처음부터 녹록하지 않았다. 처음 그가 이디오피아 땅을 밟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75년, 이디오피아는 군사쿠데타 이후 17년간 지속된 사회주의 정권이 붕괴되고 다당제와 시장 경제를 지향하는 신정권이 수립됐다.
그러나 반군세력들간의 갈등과 인종간의 대립으로 신정권의 권력기반은 취약해졌고 반군세력과 정부군의 무력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물론, 1977년 7월 소말리아가 이디오피아에 오가덴 지역을 침공함으로써 큰 전쟁이 일어났다.
특히 1991년 내전이 막바지에 달하자, 한국대사관에서 유 박사와 가족들에게 철수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유 박사는 치료가 절실한 환자를 두고 떠날 수 없었다.
“당시 위험한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권유했지만 저와 제 처는 총소리, 대포소리가 점점 시내쪽으로 다가와도 병원에서 환자를 돌봤죠. 저의 손길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차마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오랜 기간의 내전이 끝난 후, 이번에는 군인 및 운전사들을 통해 감염된 에이즈가 급격히 증가했다.
“제가 근무한 국립아디스아바바 의과대학 병원인 블랙라이온병원 내과 환자 중 60%가 AIDS 양성반응 환자일 정도로 에이즈가 사회전반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에이즈 감염에 노출될 위험을 감내 하면서 현지인들에게 외과수술을 실시했다.
또한 유 박사는 의대생과 인턴, 레지던트, 간호사들을 가르치는 등 현지의 낙후된 의료기술과 의료수준 향상에도 노력, 전문 의료 인력이 절대 부족한 이디오피아의 인력양성에 기여하며, 아디스아바바 국립대 부속병원에서 명예교수로 활동했다.
그렇게 유 박사가 이디오피아에 지낸지 30년간 2개의 의과대학이 신설되어 많은 의사들이 배출되기 시작했고, 현재 50명의 외과 레지던트와 200명이 넘는 외과 전문의가 배출됐다.
유민철 박사는 병원에서의 정식근무이외에도 외과전문의로 언청이 무료수술 및 노숙아동의 교육기회 제공, 전쟁미망인을 지원하는 등 많은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한글학교를 설립하고, 주재국 교민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수시로 예방주사와 질병예방 교육실시 및 치료를 시행, 교민사회에 기여했다.
▲ 유민철 박사가 이디오피아에서 의료봉사를 펼치고 있다
이러한 지속적이고 다양한 봉사활동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유 박사는 1982년 수교훈장 숙정장, 1999년 제7회 KBS 해외동포상, 1999년 올해의 서울인상 등을 수상했다.
많은 역경과 위험을 감수하며 인생의 절반을 지낸 이디오피아. 유민철 박사는 그곳을 떠나가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과 정부의 지원을 당부했다.
“가난한 나라를 돕는 일은 50년, 100년 후 세계 무대의 주역인 우리 후손을 위한 외교의 시작이라는 생각합니다. 50년 전 아시아 지역과 똑같은 아프리카 지역은 분명 50년 후에는 우리 후손들의 삶의 터요, 외교와 무역의 장이 될 것입니다”
조현미 기자(hyeonmi.cho@medifonews.com)
2005-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