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카트라이더에 빠져있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요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이 컴퓨터 게임의 명성을 확인하는 순간, 아이들은 게임을 그만두어야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접고, 참가해야 하는 수업은 ‘음악치료’. 이 과목명만으로도 이곳은 일반학교와 다르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곳은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아동들을 위해 2000년 12월부터 운영되어온 세브란스병원 어린이병원학교.
어린이병원학교 한은숙 코디네이터는 아쉬워하며 컴퓨터를 끄는 아이들을 달래고, 수업을 담당하는 음악치료 자원봉사자 선생님은 노래가사가 적힌 커다란 스케치북과 갖가지 음악치료용 악기들을 꺼낸다.
“무슨 노래에요?” “이 악기는 뭐에요?” 스케치북에 적힌 가사와 신기한 모양과 소리가 나는 악기를 보면서, 좀 전 게임에 열중하던 모습처럼 아이들의 눈이 다시금 반짝인다.
아이들을 보면서 자원봉사 선생님은 “이제는 음악시간 시작했습니다, 모두 다 함께 모여 시작합시다”로 시작되는 노래를 들려준다.
이 수업시간을 위해 만들었다는 선생님의 창작곡을 아이들이 어색하게 따라하더니 이내 익숙하게 함께 부르더니, 음악치료에 쓰이는 신기한 소리가 악기들을 흔들어도 보고, 목소리 높여 다른 노래도 불러본다.
“어린이병원학교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수학, 영어와 같은 일반 과목들보다 미술·음악치료, 종이접기 같은 놀이를 더 좋아하고, 호응도 높아요”
아이들의 음악치료수업을 따뜻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던 한은숙 코디네이터의 대답을 들으면서, 역시 아이들답다는 생각에 살짝 웃음이 났다.
한은숙 코디네이터의 말대로 세브란스 어린이병원학교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한글, 수학, 영어, 일어수업을 비롯하여 종이접기, 동화구연, 만들기, 미술·음악치료 등이 14개 과목 20여명의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어린이병원학교가 처음부터 이렇게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다.
연세대학교 소아과학교실과 아동간호학교실의 공동기안을 토대로 세브란스병원 53병동내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6개 과목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아이들과 학부모의 반응은 처음부터 뜨거워, 개교이후 지금까지 연평균 400여명의 아이들이 어린이병원학교를 찾고 있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래친구와의 교우관계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사회화하는 생의 터전이기도 한데 병원에 있는 아이들은 이런 상황과 단절됩니다. 그래서 어린이병원학교를 만들어 수업과 교우관계로 어린이의 인지적, 심리·사회적·행동적 발달을 도모하고, 퇴원 후 가정 및 학교, 지역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돕고자 만들어졌습니다”
어린이병원학교 운영위원이자 실무위원인 연세의대 소아과학교실 유철주 교수는 어린이병원학교의 설립목적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어린이병원학교를 통해 어린이가 자신의 치료과정을 긍정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하나의 목적이라도 덧붙였다.
실제 세브란스 어린이병원학교에서 수업을 받은 대다수의 아이들은 수술 후의 통증이나 화학치료로 인한 오심, 구토, 혹은 식욕부전 등의 질병증상이 완화되고 사라지기도 했다.
해외 선진국에서는 왠만한 소아전문의료센터라면 어디든 이러한 형태의 병원학교가 개설되어있고, 학교 환경과 관련된 물적 자원 외에 정부로부터 지원되는 정규 교사를 확보하여 수업하는 것은 물론 병원학교를 통해 일정기간 동안 교육을 받은 어린이들에게는 정규 학교교육을 받은 것과 같은 수준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관례이다.
현재 국내의 어린이병원학교는 10개 내외로 손에 꼽을 정도만이 존재하며, 교육청의 정식 지원아래 정식학교로 운영되는 곳은 더더욱 적다.
하지만 병원에 있는 아이든 그렇지 않든 모든 아이들은 정서적 보살핌과 교육적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정부와 의료진, 일반인들의 좀 더 많은 관심과 보탬이 어린이병원학교에 실리기를 바란다.
조현미 기자(hyeonmi.cho@medifonews.com)
2005-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