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6시 공연시작 2시간 전, 3번째 리허설이자 최종 리허설.
무대 뒤에는 50명의 패션모델이 본인의 순서를 기다리며 의상과 화장, 액세서리 등을 최종 점검 중이다.
감독의 사인이 떨어지자 긴장감을 감추고 속속 런웨이에 올라 포즈와 턴을 반복하고 다시 무대 뒤로 돌아온다.
여느 패션쇼와 다름없는 이 무대에 오른 모델들은 모두 여의사다. 여의사가 패션모델로 변신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이 독특한 패션쇼는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김화숙 원장(김화내과)가 설명했다.
“2008년 대한의사협회 창립 100주년를 맞아 여성분과위원회가 기획한 행사로 한국여자의사회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이기도 하죠. 특히 외면당하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입양문화와 수양부모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한 뜻도 담고 있습니다.”
대한의사협회 창립 100주년위원회가 주최하는 ‘한국의사 100주년 맞이 및 한국여자의사회 50주년 기념 ‘부모로부터 외면당한 아이들의 행복찾기’ 자선 패션쇼’는 ‘소외된 어린생명을 우리 손길로 지키자’는 주제를 동시에 담고 있다.
100주년위원회가 패션쇼의 의미를 살리고자 모델 전원을 여의사 정하고 섭외에 들어가자 많은 여의사들 행사의 의미에 깊이 공감하며 흔쾌히 모델로 설 것을 약속했다.
특히 모델로 나선 이들은 대학총장, 교수, 개원의, 병원장 등 각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30~80대 여의사들이어서 무대 모습을 더욱 다양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행사 1주일 전 성동구에 있는 모델학원에 모여 본인이 입을 디자이너 안윤정의 ‘앙스모드’ 의상을 직접 선택해 워킹연습을 하고 패션쇼 당일인 15일에는 행사장인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3차례 리허설을 가졌다.
무대에 선다는 것이, 그것도 어느 무대보다 강한 조명과 집중을 받는 런웨이에 패션모델로 선다는 것이 쉽지 않을 터. 그런데 최종 리허설을 하고 있는 여의사들의 표정에는 긴장감 만큼의 즐거움이 엿보인다.
“좋은 취지로 만들어진 행사에 회원으로서 참여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이런 색다른 경험을 언제 해보겠어요” 김정화 선생(가톨릭대 성모병원 건강증진센터)은 실제 무대에서는 좀 더 잘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최종 리허설을 마치고 무대 뒤로 돌아온 김화숙 원장. “처음 무대에서 리허설을 하는데 눈 앞이 캄캄했죠. 그런데 연습을 반복하니 금방 익숙해지더라구요. 다른 분들도 빠른 시간 안에 적응하는 걸 보니 여의사들이 모두 똑똑하고 끼가 있는 것 같아요.”
오후 8시 쇼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을 앞에 두고 패션쇼가 시작됐다. 평상복부터 캐쥬얼, 파티복까지 진료실 밖에서 만날 수 있는 여의사들의 모습이 100여벌의 의상으로 표현됐다.
한명 한명의 모델이 런웨이에 나올 때마다 박수와 환호가 그칠 줄 몰랐다. 어떤 가족은 아내가 혹은 어머니가 변한 모습을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했다. 그만큼 패션모델로 완벽하게 변신한 여의사들.
2시간 남짓 진행된 패션쇼가 끝나자 모델로 나선 여의사들은 성공적인 마무리에 대한 기쁨으로 표정이 상기되고, 여기 저기서 꽃다발과 사진, 축하의 말이 오갔다.
“패션쇼가 시원하게 끝나고, 관객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은 반응을 보여줘서 기뻐요. 특히 의사가족이 많이 참가해 행사를 진행한 것과 선후배 여의사 선생님들과 이런 특별한 경험도 갖게 된 것이 무엇보다 좋습니다”
성공적인 변신과 패션쇼에 큰 만족감을 보인 조종남 원장(조윤희산부인과)은 가족의 축하에 다시 한번 큰 웃음을 지었다.
남편으로서 조종남 원장의 캣워크를 지켜본 박두병 교수(중앙대병원 신경정신과) 역시 아내의 변신에 즐거운 모습이다.
“참가한 선생님들이 환자만 잘 보는 줄 알았더니 패션모델 뺨치게 잘하더군요. 그리고 집사람이 신세대처럼 너무 젊게 보였어요.”
모두를 흥분하게 하던 패션쇼는 마무리되고 열기와 환호도 이제 멈추었지만 행사수익금 중 일부는 부모로부터 외면당한 아이들을 위해 기탁되고, 일부는 한국의사 100주년 기념회관건립기금으로 사용되어 여의사들이 보여준 의료계와 사회에 대한 따뜻한 사랑은 계속 전해질 것이다.
조현미 기자(hyeonmi.cho@medifonews.com)
2006-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