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이 규모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신뢰성 확보장치가 미흡해, 영리의료법인 도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대한의사협회(회장 주수호)가 개최한 ‘의료서비스산업에 대한 평가와 정책적 시사점’ 초청강연회에서 강연을 맡은 이병희 한국은행 조사국 산업분석팀 과장은 자료를 통해 “의료법인의 비영리성에 기인한 재무구조의 불투명성은 의료서비스에 대한 단가 산정을 어렵게 만들고, 병원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간에 진료비 조정을 둘러싼 갈등을 지속하게 한다. 의료기관은 규모의 꾸준한 확대에도 불구하고 신뢰성 확보장치가 미흡해 영리의료법인 도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민영 의료법인 도입, 신중하고 점진적으로
이 과장은 우리나라의 국민의료서비스 체계는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 체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의료서비스에 대한 영리성을 일부 허용하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공공성도 포괄하는 의료서비스산업의 선진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영리 의료법인을 도입한 미국, 프랑스 등에서는 영리 의료법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제하고, 비영리 의료법인에 대해서는 세금면제 등의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며, 양자에 대한 규제와 우대를 통해 균형을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의료서비스 산업의 영리성 인정은 국민건강권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 권익을 중시하는 선진국에서도 영리의료법인의 도입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의료서비스에 대한 영리성을 일부 허용하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점진적이고 중장기적인 계획 및 꾸준한 보완 작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민간규제 완화만큼 공공부문 확대해 부익부빈익빈 방지
한편 이병희 과장은 의료서비스 산업의 선진화를 위해 의료서비스 인력 양성 및 관리체계 구축이 긴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신규 자격취득자가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활동인력이 극히 적어 결과적으로 과도하게 양성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간호사에 대한 활용방안을 적극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진화를 위해 관련법 정비의 필요성도 주장했다. 의료서비스 산업에 대한 현행 법규는 전국민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에 제정된 탓에,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산업발전에 장애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민간부문 자율성을 높이면서도 공공부문에 대하 투자를 확대해 결과적으로 민간부문 규제완화로 발생할 수 있는 지역간 의료서비스 공급격차 심화 등을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도상 제약, 인력관리체계 정비, 건보재정 부담 등도 문제점
이병희 과장은 이밖에 의료산업이 가진 문제점으로 *법-제도상의 제약 *인력관리체계 정비 미흡 *건보 재정부담 가중 등을 꼽았다.
그는 제도상의 제약으로 “한 명의 의료인은 하나의 의료기관만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예를 들었다. 토털 의료서비스 제공을 곤란하게 만든다는 것.
인력관리 체계에 대해서 그는 “의료서비스산업은 서비스 공급자의 과오가 수요자의 생명권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데다 IT, BT 등 신기술 접목이 필수적이어서 지속적인 인력 개발 및 관리가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의사면허 갱신제도도 없고, 의료업 종사여부 신고의무도 부과되지 않는 등 사후관리가 주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미흡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건강보험 재정에 대해서는 “건강보험료가 2001에서 2006년까지 연평균 17.3%의 높은 증가세를 지속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담배부담금(2003~06년)과 보험재정국고지원금(2001~06년)이 각각21.8%, 12.2% 증가하는 등 건강보험 재정에서 국고지원금(보험재정국고지원금, 담배부담금 등)의 부담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의료서비스 생산성, 전체 산업의 58% 불과
이날 이 과장은 국내 의료서비스 산업의 부가가치 및 생산성 등에 대한 다양한 통계자료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그에 따르면 국내 의료서비스산업의 명목부가가치는 2007년 기준 25조원으로 명목 GDP(기초가격 기준)의 3.2%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선진국의 의료서비스산업 비중은 GDP의 5~6% 수준이며, 특히 미국의 경우 영리법인 허용, 민영의료보험 도입 등으로 의료비의 지출이 많아 6%를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서비스산업의 노동생산성을 가리키는 종사자 1인당 실질 GDP는 2006년중 2530만원으로 전 산업 평균인 4380만원을 크게 밑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요 국가의 의료서비스산업의 노동생산성 추이는 미국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하락 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특히 1995년 전 산업보다 높았던 의료서비스 부문이, 2006년에는 전체 산업대비 58%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