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게이트 키퍼가 없어 상급종합병원을 제외하고 환자들은 언제나 의료적으로 필요한 진료인지 증거도 없이, 1차 진료 혹은 전문의 진료를 자유롭게 받으며, NHI는 이 비용에 대한 보상을 한다. 환자들이 의원보다 신뢰해 초진환자들이 많이 찾는 대형병원의 외래부서에서는 게이트 키퍼제도에 대해 반대한다.”
위의 내용은 OECD 사무국 한국ㆍ일본 경제담당 책임자 랜달 S. 존슨이 작성한 ‘한국의 보건의료개혁’의 내용 중 일부분이다. 존슨이 언급한 것처럼 최근 국내 의료계에서도 ‘주치의 제도’도입에 대한 도전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정부에서는 1차 의료기관 활성화 방안의 일환으로 고혈압과 당뇨 등 만성질환자에 대한 전담의 제도를 도입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담의 제도는 결국 장기적으로 주치의 제도로의 전환을 위한 가교적인 성격이라는 것이 의료계의 시각이다.
그러나 보건의료계 전문가들 대부분은 주치의 제도의 도입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는 의견인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정형근 이사장은 공공연하게 “일부에서는 단골의사제나 주치의제도 등의 도입에 대해 회의적이다. 하지만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해 우리의 현실과 특성에 맞는 단골의사제 등 1차 진료의 역할을 강화하는 제도를 빠른 시일 내에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그렇다면 국내 의료환경에서 주치의 제도는 도입이 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의료계가 반대하듯 절대 도입할 수 없는 것일까? 설령 반대가 있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도입을 고려해야하는 것인 건 아닌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주치의 제도 도입을 둘러싼 끝나지 않은 논란
의료계를 앞에 두고 주치의 제도 도입을 거론하는 것은 조금 과장해 ‘이적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주치의 제도에 대한 반감이 거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치의 제도 도입과 관련해 대한의사협회 집행부의 한 관계자는 “선택의 권한은 회원들에게 있다. 현재로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여전히 이질감이 크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최근 의-정협의체는 수가항목 신설과 함께 1차 의료기관에 전담의사제 도입을 고려중에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전담의사제는 특정 과목만이 참여하는 것이 아닌 의원급 의료기관이라면 누구나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개원가에서는 ‘전담의사제=주치의 제도’라는 공식으로 보고 있다. 전담의사제가 종국엔 주치의 제도라는 인식이다. 개원가에서 이처럼 바라보는 것은 과거와 달리 최근에 주치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거세게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단순히 주치의 제도 도입에만 한정해 반대의 입장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지금과 같은 수가체계를 유지한 채 의료계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주치의 제도라는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주치의 제도가 마치 현재 나타나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법으로 제시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 정현진 부연구위원은 “급증하는 보건의료비 지출 증가의 해결책, 만성질환자 증가와 노인인구 증가에 대한 대책, 의료전달체계 붕괴에 따른 문제점 해결책, 의료이용 패러다임의 변화 등 모든 것들의 해법으로 ‘주치의 제도’가 거론되고 있다”고 지적한바 있다.
당시 그는 “주치의 제도를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특히 모든 해결책의 키워드로 이야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면서 “실제 주치의 제도의 지향점은 ‘일차의료 강화’여야 한다. 그간 일차의료가 제공된 적은 있는지 의문이며, 따라서 일차의료 강화를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접근가능한 방법이 주치의 제도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주치의 제도 도입을 위한 방법은 있는 것일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오영호 연구위원은 주치의 제도의 도입을 위해서는 현행 보건의료체계의 여건을 고려해 참여 대상 및 지불보상방식을 단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오영호 연구위원은 “주치의 제도 도입 시 공급자와 국민 모두 자발적인 참여를 중심으로 시행하되, 만성질환자(노인)에 대해서는 당연 적용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면서 “주치의 자격은 진료과목의 제한 없이 원하는 의사들은 누구나 일정 기간의 주치의 교육을 이수하면 주치의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입을 위해서는 지불보상방식에 대한 개편이 불가피할 수 있다. 현재의 행위별수가제를 인두제 방식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보사연 오영호 연구위원 역시 “지불보상방식으로는 먼저, 연간 등록 관리료와 행위별수가를 혼용해서 적용하고 이어 인두제 방식을 적용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며 “인두제를 모든 서비스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빈도, 경증 질환에 대한 일차수준의 서비스에 대해 보상하고 부가적 서비스에 대해서는 행위별수가를 병행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주치의 제도 도입에 대해 국회 입법조사처 또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다만, 국회 입법조사처는 단순한 주치의 제도가 아닌 다양한 형태의 주치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즉, 노인주치의제, 아동주치의제, 특히 ‘만성질환 중심의 주치의 제도’ 등 부분적 주치의 제도형태를 고려해 특수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입법조사처는 “의료계가 주치의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것으로 ‘보건의료전달체계의 불균형 초래로 인한 의료비 부담 가중’ 때문”이라며 “우리의 경우 주치의제도 도입을 위한 인프라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구축돼 있다. 제도 도입으로 인한 추가적인 의료비용의 상승은 현행 건강보험 재정기전으로 뒷받침될 것이며, 등록환자 관리 등 제반 관리업무를 담당할 공적 조직과 관련 인력 또한 구비돼 있다”며 제도 도입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주치의 제도 도입, “현재 보장성으론 불가능”
결국 주치의 제도 도입이 이슈화되는 것은 1차 의료기관들의 몰락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이유는 제도 시행을 위한 방법과 지불제도에 대한 이견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의료계를 향한 주치의 제도 도입에 대한 요구는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 더욱 명확해져만 가는 상황으로 전개될 형국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재국 선임연구위원은 “주치의 제도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가지 대안들이 제시됐으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을 정도로 제도 도입에 대한 도전이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입법조사처는 주치의제도의 도입ㆍ시행을 강력히 추진할 수 있는 국가적 지원 및 정부와 민간 사이의 ‘효과적인 거버넌스의 발위’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1차의료 의사들이 공동 개원하는 형태의 ‘주치의협력의원’의 설립을 재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주치의 제도 도입이 기정 사실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임금자 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도입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의료정책연구소 임금자 연구위원은 “지금의 보장성 수준으로는 주치의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보장성이 80%는 됐을 때 논할 수 있으며, 지금의 원가보전율로는 절대 주치의 제도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금자 연구위원은 “매해 쏟아져 나오는 의사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주치의 제도 도입이 말처럼 절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면서 “만약 지금의 형태에서 주치의 제도가 도입될 경우 비급여 시장만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의료기관으로서는 생존을 위해 시장을 만드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결국엔 건강보험이 무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1차 의료기관 활성화가 시급한 상황에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다양한 형태의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많은 대안 중 유독 주치의 제도가 최우선 과제로 대두되는 것을 꼭 거부감으로만 인식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국민 누구나 가까운 집 앞 의원에서 늘 마주보던 의료인에게 진료받기를 희망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의원이 아닌 대형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것이 과연 환자가 선택한 문제로만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싶다. 어떤 이는 의원을 가고 싶어도 동네에 의원이 없어 가지 못 할런지도 모른다. 이미 동네 의원이 사라진지 오래이기 때문에 말이다.
진정 국민의 건강을 위하는 길이 무엇이고 가까운 곳에서 친근한 의료인으로부터 진료 받을 수 있는 환경조성과 의료인들 또한 경영에 대한 고민을 떨치고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