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시행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령 및 시행규칙이 3일 공포된 가운데 의료계에서는 현실을 거의 무시한 제도라며 강하게 반발해 왔다.
의료계는 비상진료체계 구축과 관련해 당직전문의 등의 자격을 전문의 또는 3년차 이상의 레지던트에서 ‘전문의’로 조정하고, 당직전문의 등을 두어야 하는 진료과목도 해당 응급의료기관에서 개설한 모든 진료과목으로 확대한데 대해 가장 큰 우려를 나타냈다.
정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응급실 근무의사가 당직전문의에게 응급환자의 진료를 요청하면 당직전문의가 응급환자를 직접 진료하도록 의무화했다. 뿐만아니라 이를 위반하면 해당 응급의료기관에 2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고 해당 당직전문의에게는 근무명령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면허정지 처분이 가능토록 했다.
의료계는 정부의 이러한 발상이 전시행정에 급급해 현실을 전혀 모른채 채택한 대표적 탁상공론의 본보기라고 지적하고 있다.
의료계는 응급의료기관 개설 진료과목별로 각 1인 이상의 당직전문의를 두도록 하고 있지만, 실상은 일부 진료과를 제외하면 해당 전문의가 많아야 3-4명이고, 보통 한 명씩의 전문의 밖에 없어 제도를 시행하려면 이들은 1년 365일 당직을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지방으로 갈수록 더 심각하다. 군지역 및 중소도시는 대다수가 법안 이행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응급의료기관 지정 반납 의사도 내비쳐 의료취약지역의 응급의료체계에 상당한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응급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중소병원급 지역응급의료기관에 대한 예외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경남의사회가 실시한 개정된 법안 이행가능 여부조사에 따르면, 총 44개 관내 응급의료기관 중 지역응급의료센터 이상 3개소, 중소병원급 지역응급의료기관 3개소 등 6개소만이 이행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난 반면, 이행이 불가능한 의료기관은 총 17개소로 조사됐다.
온콜(on call) 당직 개념 역시 전혀 현실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해당 전문의가 어떠한 상황 아래서도 1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서 있도록 해 자유마저도 박탈하려는 비상식적인 법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응급의료법에 대해서는 국회에서도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다. 지난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국회의원들은 의료기관에 개설된 모든 진료과목 전문의 당직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신경림 의원은 “권역응급센터의 경우 21곳 중 8곳이, 지역응급센터의 경우 115곳 중 100곳이 전문의가 한명 밖에 없는 진료과를 갖고 있는데 이는 365일 당직명령을 하는 것이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응급의료법 시행규칙을 다시 재정할 것을 제안한 상태다.
김현숙 의원도 “모든 진료과목에 전문의를 두도록 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며 개정의 필요성을 밝혔다.
이에 대해 임채민 장관은 “당직 전문의의 경우 1시간 내 올수 있는 거리에 전문의의 소견이 필요할 때 호출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종합병원 등은 의사가 반드시 병원안에 있도록 하고 없는 곳만 온콜로 가자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고 답변했다.
또 “응급의료체계 개선 과정에 있기 때문에 현장과 협의해 국민 원칙이 지켜지는 방법을 찾고 응급의료서비스 보상체계도 현실에 맞게 개선하겠다”고 덧붙였다.
제도의 문제점은 지난 2일 병원협회 주최로 열린 응급실 비상진료체계 설명회에서도 명확히 드러났다.
이날 참석자들은 의료기관에 개설된 모든 진료과의 당직 전문의 배치와 온콜에 대해 집중 질의를 쏟았다. 개설과에 전문의가 1명 내지 2명 있는 경우 현실적으로 제도의 운영이 가능하겠는냐는 질문이었다. 복지부측도 시원한 답변을 하지 못하며 문제점을 인정 한 듯 보였다.
그럼에도 응급실 전담의사가 아닌 경우에는 상담은 가능하지만 진료를 볼 경우 불법이라는 입장만 고수했다. 또 법으로 규정했음에도 현실적인 문제를 질타하면 의료를 단순히 한 개의 법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며 회피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상황서 현실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응급의료제도가 5일부터 시행에 들어가면 의료기관은 혼란에 빠질 것이고 피해는 고스란히 모든 전문의와 환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의료계는 지금이라도 법시행을 유보하든지, 아니면 법운영에 슬기를 발휘해 집행은 하되 계도기간을 두어 상호 보완책을 마련해 가면서 운용해 주기를 간절히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