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의사선생님이 아니면 봐줄 선생님이 없어. 그러니까 참아야 돼! 한달을 기다렸잖니!”
‘괜찮습니다’라는 한 마디를 듣기 위해 부모가 아픈 아이를 붙잡고 절규하면서 병원 진료를 기다렸다가 받아야 하는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는 전국의 소아환자들이 29명에 불과한 소아비뇨의학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기 위해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으로, 사실상 소아비뇨기 진료체계는 괴멸됐음을 보여주는 일화라고 할 수 있다.
메디포뉴스는 현재 괴멸된 상태에 이른 소아비뇨의학과 실태가 어느 정도이며, 이러한 사태를 불러일으킨 원인에 대해 점검해보고자 대한소아비뇨의학회 김성철 홍보이사(울산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Q. 먼저 우리나라 소아비뇨기 진료의 현실은 어떠한가요?
A. 현재 대한비뇨의학회에 등록된 비뇨의학과 전문의 수는 2600여명 정도 되며, 이 중 700여명은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소아비뇨의학과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는 전국에 고작 29명에 불과하며, 소아비뇨기 질환만 전담으로 보는 의사는 9명에 그친다는 것으로, 이는 우리나라에 필요로 하는 소아비뇨의학과 의사 대비 상당히 부족한 수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연간 비뇨의학과 전공의 수는 연간 100명씩 배출됐던 저희들이 전공의이었던 시절과 다르게 어느 순간부터 지원율이 50% 미만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2017년에 최저 수치인 24명을 기록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이후에는 지원율이 상승해 2022년에는 50명까지 늘었지만, 옛날과 비교하면 배출되고 있는 소아비뇨기의학 전공의는 매우 부족한 상황입니다.
무엇보다도 지금과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5년 뒤에는 소아비뇨기 질환을 전문적으로 보는 의사는 20명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돼 우리나라의 미래가 걱정됩니다.
Q. 지역별 소아비뇨기 질환 진료 가능한 의사 분포는 어떠한 상황인가요?
A. 현재 소아비뇨기 질환 진료가 가능한 의사는 각각 ▲서울 40% ▲영남(부산·울산·경남·경북) 30%가 몰려 있고, 그 외 지역은 거의 없으며, 사실상 대도시 위주로 1명씩 배치돼 있어 소아비뇨기 질환 진료를 받아보고 싶다면 근처 대도시 지역으로 이동해서 진료를 봐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서울아산병원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울산대병원에만 소아비뇨의학과 전문의가 병원당 2명씩 있고, 그 외 병원은 병원당 1명씩 배치돼 있어 전국의 소아비뇨기질환 관련해 전문진료를 볼 수 있는 병원은 고작 24곳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더불어 소아비뇨기 질환만 전문으로 보는 의사의 분포는 더욱 처참합니다. 전체 29명 중 서울에만 5명이 몰려 있고, 양산부산대병원에 2명이 있는 것을 빼면 전국적으로 소아비뇨기 질환만 전문으로 보는 의사는 아예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뿐만 아니라 현재 전망되고 있는 전공의 배출 추세 등을 고려하면 서울·경기 지역과 부산·울산 지역 이외에는 소아비뇨의학과 전문의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현실이 다가올 것으로 생각됩니다.
Q. 국내 소아비뇨기 진료 붕괴 원인 중 사회적·환경적 요인으로 무엇이 있다고 보시나요?
A. 첫 번째 사회·환경적 요인으로는 최근 들어 출산율 저하가 정말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출산율은 0.7%에 그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 가임 여성 1인당 출산율은 0.78명에 불과합니다. 이는 상당히 큰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실제로 2022년 기준 9살 미만의 소아는 362만4712명으로 2015년도 454만1197명 대비 20% 이상 줄어든 상태이고, 7~8년 뒤에는 2015년 대비 9세 미만의 소아가 절반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은 소아 질환으로 병·의원을 찾는 환자들도 줄어드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소아청소년과를 비롯해 소아질환을 진료하거나 관련된 모든 진료과들이 진료할 환자가 없어 힘들어하다 못해 붕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붕괴의 원인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출산율 저하로 1자녀 가구 가정이 늘어나면서 부모의 아이에 대한 관심도 크게 증가하는 것도 저희 의사들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관심도가 증가한다는 것은 소아를 진료하는 의료진들이 환아의 부모님 외에도 때로는 환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소통하거나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더 많아 큰 정신적 부담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불어 맘카페와 같은 커뮤니티에서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많아 의료진들이 예전보다 소아를 진료하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국내 소아비뇨기 진료 붕괴 원인 중 법·제도적 요인으로 무엇이 있다고 보시나요?
A. 역차별 문제를 지목하고 싶습니다.
우선 성인은 질환의 상태와 진행 과정 등이 정해져 있는 반면, 소아는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성장하고 발달하는 것처럼 소아질환도 성인처럼 정적인 것이 아니라 질환 자체가 변화하는 특성을 보여줍니다.
뭔가 하나 딱 기준을 정할 수가 없다보니 진료가 힘든 것은 물론이고, 연구의 주제·기준을 잡기도 어려워서 성인 질환에 비해 연구가 뒤처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문제는 성인질환에 비해 연구가 소아질환에 대한 연구가 미비하다보니 진료에 필요한 의약품에 대해 국가에서 건강보험 적용을 잘 해주지 않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 이유는 건강보험 적용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뤄지기 때문으로, 급여를 적용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만한 연구 결과들이 없으면 실질적으로는 건강보험 적용을 잘 받지 못합니다.
이로 인해 저희 의료진들이 환아들에게 사용하고 싶어도 사용하지 못하는 의약품들이 많은 것이 현실로, 이러한 역차별의 해소가 필요합니다.
수가 부분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소아 진료를 보시는 의사선생님들, 특히 소아만 전문으로 보시는 선생님들은 충분한 수가를 받지 못해 각 병원에서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의사선생님들도 수가가 떨어지면 본인의 수입도 떨어짐은 물론, 인센티브 등에서도 불리해지는 환경에 있어 소아진료에 대해 기피하려는 경향도 많아지는 것을 개선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