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순환기내과 입원 환자의 3명 중 1명이 심부전 환자지만, 수술·시술 중심인 현행 전문질환 지정 기준 탓에 약물치료 중심인 심부전은 제외돼 심부전 진료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심부전학회 국제학술대회를 맞아 지난 12일 개최된 기자간담회에서 이해영 정책이사(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가 심부전의 전문질환 미분류로 인한 의료현장의 현실을 조명하며 보건당국을 향해 현장의 전문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당부했다.
이해영 정책이사는 “심부전이 전체 환자의 약 3%이지만, 상급종합병원 순환기내과 입원환자의 3명중 1명은 심부전 환자”라며 “최근에는 입원환자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이 정책이사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들에서 전문질환군 비율을 70%로 채우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정책이사는 “순환기내과 외래·입원 환자의 90%는 전문질환 환자이나, 응급실 입원 환자의 경우 60%만 전문질환군에 속하고 나머지 40%는 심부전 환자”라며 “심부전환자가 상당수임에도 전문질환으로 분류되지 않아 입장에선 환자를 치료할수록 평가 점수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심부전의 치명적인 사망률이다. 이 정책이사에 따르면 심부전 환자는 표준치료를 적용받으면 6개월 사망률이 6% 수준이지만,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 36%까지 치솟는다.
이 정책이사는 “한 병원 연구에서 심부전환자가 입원 후 교육을 받고 퇴원해 외래를 꾸준히 다니면 사망률이 24%에서 11%로 감소다. 지역협력진료를 시행하면 12%까지 줄었다. 그러나 외래를 꾸준히 오지 않는 환자의 3분의 2는 사망했다”면서 “결국 외래추적이 심부전 치료의 핵심인데, 이런 관리가 가능한 곳은 종합병원”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가슴 X-ray 검사는 개원가에서 가장 많이 촬영하는 검사로, 의심 시 상종으로 의뢰해 진료를 받게 된다. 그러나 이 때 검사코드에는 폐암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반면 심부전은 초음파나 혈액검사에서 진단 코드에 반드시 ‘심부전’이 기재돼야 삭감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심부전이 개원가에서 흔히 보는 병처럼 보이는 왜곡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심부전이 의심될 경우 의사들은 환자에게 연간 사망률이 10%인 중한 병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현 체제대로라면 어떤 병원에서 심부전 환자를 입원시키려 하겠냐는 지적도 나왔다.
이 정책이사는 “한 병원은 간신히 전문질환 비율을 71.9%로 맞췄다. 70%를 넘기면 인센티브를 받는데, 추가 조건을 충족해 3%를 더 올리면 병원은 더 많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병원은 계속 비율을 끌어올리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심부전 환자를 입원시켜 치료하면 전문질환으로 인정되지 않아 국가 보조금이 줄어든다. 어느 병원도 이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과적으로 환자를 치료할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이 된다.
반면에 심부전 환자가 외래 진료를 충실히 받으면 진료비를 최대 96%까지 절감할 수 있고, 사망률 또한 18%에서 7%까지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 개선이 요구됐다.
이 정책이사는 “환자생명을 볼모로 잡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전문질환군에 심부전이 포함되지 않은 현 상황도 환자 진료에 큰 위협이자 환자를 볼모로 잡는 행동”이라며 “나라에서는 시행예고 후 안 되면 그 때서야 고치겠다고 한다. 제발 의학에 근거한 전문의의 의견을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이번 기자간담회를 통해 ‘심부전 팩트시트 2025’도 공개했다. 이찬주 팩트시트위원장에 따르면 심부전 유병률이 지속 상승해 2023년 인구 10만명당 763명이 심부전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대비 심부전으로 인한 사망도 점점 증가하고 있어 국내 심부전 질병부담이 지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다만 심부전 환자 자체만 두고 봤을 때 생존율이 개선되는 추세인 만큼 보다 적극적인 치료 지원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