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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2027 의대 정원 결정에 앞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들

2025년 12월 31일, 의사인력수급 추계위원회는 공식 브리핑을 통해 2035년에는 1535~4923명, 2040년에는 5074~1만 1136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의 근거 없는 의대 증원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의료 대란이 채 수습되지 않은 지금, 또다시 섣부른 의대 정원 확대가 반복된다면 한국 의료는 회복 불가능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이에 충정의 마음으로, 의대정원을 결정하기에 앞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들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첫째, 지역의료·필수의료의 위기는 의사 수 부족이 아니라 정책 실패의 결과이다.

현재의 지역의료 및 필수의료 붕괴는 의사 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과거 정책 실패가 누적된 결과다. 그 출발점은 1995년 8월, ‘진료 평등권’을 명분으로 진료의뢰체계를 사실상 해체한 정책이었다. 

1차 의료기관에서 발급한 진료의뢰서 한 장만 있으면 전국 어느 대학병원에서든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 환자 의료 수요를 조절할 제도적 장치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 결과 지방에서 진단을 받은 환자들이 치료를 위해 곧바로 서울로 이동하는 것이 일상화됐고, 여러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에서 5~6개 진료과를 동시에 이용하는 구조가 고착됐다. 

수도권 대형병원은 더욱 비대해졌고, 경쟁적으로 수도권 분원을 설립하는 반면, 지역에서 2·3차 의료를 담당하던 병원들은 쇠퇴하거나 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지역 대도시에서도 소아과 진료를 받기 위해 인근 도시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1995년 당시 정책 결정자들은 “건강보험이 통합되면 물고기가 물 따라가듯 정부 재정 지원 없이도 의료자원이 농어촌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라며 지역의료 회복을 약속했지만, 결과는 지역의료·필수의료의 붕괴였다. 

2012년에는 포괄수가제를 강행해 산부인과 붕괴를 초래한 박민수 전 차관이, 다시금 의대 증원을 통해 ‘낙수 의사’로 필수의료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하며 2024년 의료대란을 불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 실패에 대해 책임지는 이는 없고, 위기의 원인은 그대로 둔 채 또다시 의대 정원 증원만을 해법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접근으로 과연 지역의료와 필수의료가 회복될 수 있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는 증원이 아니라 지역 필수의료 전문의를 지키는 일이다.

의대 졸업생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필수의료과를 선택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한 낙관이다. 실제로 2024년 의대 증원 정책은 오히려 2026년 지방 국립대병원의 내과·소아과 전공의 지원을 사실상 전무한 상태로 만들었다. 

그동안 정부는 24시간 대기와 높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필수의료과에 현행 행위별 수가 체계를 적용해, 수술을 하면 할수록 적자가 발생하는 구조
를 고착시켜 왔다. 또한 중환자와 사망 위험이 높은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해, 의료인을 보호할 사회적 안전장치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의사 수만 늘리겠다는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편, 수도권 대형병원들이 6000병상 규모의 분원을 신설하면서 필수의료 전문의의 수도권 이동은 가속화되고 있다. 그 결과 지방 대학병원에서는 교수 채용 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전문의 인력 부족에 더해, 서울을 선호하는 환자들의 의료 이용 행태가 겹치면서 지방 병원은 인력·장비·시설 모든 면에서 뒤처지는 악순환에 빠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진정으로 의료 위기를 극복할 의지가 있다면, 의대 정원 증원에 앞서 중증·응급·바이탈을 책임질 전문의를 어떻게 양성하고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실질적 해법부터 제시해야 한다.

셋째, ‘사회의료보험’ 체제에서 수요·공급 논리로 의료 자원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건강보험은 개인의 선택이 아닌, 의료기관과 국민 모두에게 강제되는 사회의료보험이다. 이는 박정희 정부 시절 일본의 의료보험제도를 거의 그대로 도입한 제도이다. 사회의료보험은 보험료는 소득에 따라 차등 부과하지만, 의료서비스는 모든 국민에게 균등하게 제공되며, 수요·공급의 논리가 아니라 한정된 보험 재정 안에서 의료서비스를 배분하는 구조이다. 

반면 미국은 최소한의 취약계층만 국가가 보호하고, 대다수 국민은 사보험을 통해 자신의 지불 능력에 맞는 의료서비스를 선택하며, 의료기관과 가입자 모두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 이처럼 의료제도의 철학과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학자들과 미국 의료제도를 단편적으로 접한 관료들은, 모든 의료가 공공재인 우리나라에서 ‘공공의료’ 개념을 남용하면서 수요자의 과잉 이용은 통제하지 못한 채 의료인 공급만으로 지역의료·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책을 반복해 왔다. 그 결과가 오늘의 의료 위기이다. 우리 의료제도의 원형을 제공한 일본이 왜 최근 의대 정원 축소까지 논의하고 있는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단순한 증원 논리를 대한민국에 적용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한국 현실에 맞는 의료 인력 정책은 보다 정교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

넷째, 이제는 사회의료보험을 유지할 사회적 의지가 있는지 검토해 보아야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찬사를 받던 한국 의료제도가 왜 지금 존립의 위기에 놓이게 됐는지 냉정하게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에서 의료 수요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나, 정부는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내세우며 의료 접근성을 사실상 무제한으로 개방해 왔다. 

그 결과 만성질환 환자들이 여러 의료기관을 전전하며 거의 매일 약물 치료, 주사, 물리치료를 받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건강보험 재정은 결국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으며, 그 종착점은 의료의 영리화와 미국식 의료제도 도입, 그리고 극심한 의료 양극화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단기적 정치적 포퓰리즘에 따른 정책 선택의 결과가 결국 우리의 자녀와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부담으로 전가되는 길이기도 하다.

초고령사회에서 사회의료보험 제도를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계적 진료의뢰체계와 지역 주치의제도 등 1차 의료 중심의 진료체계 확립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과거 연금개혁 과정에서 보았듯이, 정부와 정치권이 표가 떨어질 수 있는 정책에 대해 충분한 설명과 설득을 통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의지와 역량을 과연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체감하지 못할지 모르나,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는 이미 붕괴 직전에 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과 수련의 질이 담보되지 않는 의과대학 신설이나 공공의대 설립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치적 목적을 앞세운 의대 정원 증원 논의에 앞서, 중증·응급·바이탈을 책임질 전문의를 어떻게 양성하고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획기적인 대안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또한 실질적인 진료의뢰체계를 복원하여 지역 거점병원에서 중증 질환이 해결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 이후에야 각 의과대학의 교육 역량과 수련의 질을 점검한 뒤 정원 증원을 논할 수 있다. 증원된 인력이 필수의료를 담당할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선발 단계부터 별도의 트랙으로 관리하고, 전문의 취득 이후에도 해당 지역과 분야에 남을 수 있는 매력적인 공공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진정한 해법이다.

충북대 채희복, 강원대 김충효, 유윤종, 고려대 박평재, 서울대 방재승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