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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정신질환 약물 운전금지는 비과학적…“치료중단이 교통안전 더 큰 위협”

자의적 운전주의 약물 분류에 대한 심각한 우려 표명최근 대한약사회가 공공기관의 공식 기준과 법률적 제도 정비가 부재한 상황에서 386개 의약품 성분을 4단계(단순주의~운전금지)로 일방적으로 분류해 배포한 것에 대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깊은 우려를 표한다. 

특정 약물의 단편적인 초기 부작용만을 근거로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약을 복용해 온 환자들에게까지 운전금지를 선고하는 것은 현대 의학의 원칙을 훼손하는 비과학적 조치이다. 중추신경계 약물은 복용 초기(급성기)와 적응이 완료된 유지기의 부작용 발현 양상이 근본적으로 다르며, 주치의의 판단 없이 성분만으로 불특정 다수의 운전 가능 여부를 일률적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 

또한, 이번에 제시된 금지약물 분류에는 인슐린, 당뇨병 치료제, 항히스타민제 등 다양한 필수 의약품이 포함돼 있어, 국민들의 모든 건강영역에 걸쳐 있는 공통의 의료 문제이기에 이번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치료 중단이 부르는 안전의 역설 경고이러한 무분별한 금지 목록 배포와 처벌 위주의 단속 예고가 초래하는 가장 큰 위험은, 생업을 위해 운전해야 하는 환자들이 사회적 낙인과 처벌에 대한 공포로 인해 꼭 필요한 약물 복용을 스스로 중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미국·영국·프랑스·호주·캐나다·독일 등 어느 선진국에서도 특정 직능 단체가 의학적 치료에 사용되는 처방약을 독자적으로 운전 금지로 분류해 배포한 사례는 없다. 이들 국가의 사례는 모두 정신건강의학과를 포함한 전 진료과 전문의·기초의학 전문가·국가 규제기관이 공동으로 개발한 다학제 체계이며, 국제적인 대규모 역학 연구들은 적절한 정신과 약물 치료가 약물로 인한 부작용 위험보다 질환의 증상(충동성, 인지 저하 등)을 조절해 교통사고 위험을 획기적으로 낮춘다는 사실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 고착화 및 기본권 침해질환의 중증도나 개별적인 의학적 상태를 배제한 채 일방적인 가이드라인을 유포하는 것은 정신질환자와 의학적 필요에 의해서 적절한 의학적 관리하에 중추신경계 약물을 복용하는 환자들을 도로 위의 시한폭탄으로 매도하는 구조적 폭력이다. 대중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 거주자나 운전이 생계인 환자들에게, 비전문적인 기준에 의한 운전 권리 박탈은 우리나라 법률이 보장하는 국민권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이다. 

실제 위험 약물과 처방 치료약물을 구분하지 않는 일괄적 분류는 과학적 근거와 배치된다. 정신건강 낙인은 한국에서 이미 치료의 가장 큰 장벽이며 우리나라는 우울증 치료성과와 관련된 자살률이 OECD 1위로 여전히 심각한 정신건강위기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신과 처방약에 대한 일률적 운전 금지 낙인은 (1) 이미 낮은 치료율을 더욱 하락시키고, (2) 미치료 정신질환으로 인한 교통사고 위험을 증가시키며, (3) 생업을 위해 운전이 필수적인 환자들의 기본적 생활권을 침해하고, (4) 처방 의사에게 과도하고 불명확한 법적 책임을 전가하게 된다.

도로교통 안전과 환자 건강권 보호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3대 정책 제언이에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현재의 일부 언론 보도 및 대한약사회 분류에 대한 정정을 요구한다. 향정신성 치료약물 복용이 곧 운전 금지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사법기관 및 정부 당국에 다음의 거시적 정책 대안을 강력히 촉구한다.

1. 다학제적 협력에 기반한 ‘국가 표준 의학 평가 가이드라인’ 제정: 영국의 운전면허청(DVLA)이나 일본 후생노동성(MHLW)의 선진 사례처럼 특정 직능 단체가 아닌 담당 전문의의 개별적 임상 평가를 최우선 법적 기준으로 삼는 국가 차원의 과학적 가이드라인이 시급히 제정돼야 한다.

2. 도로교통법 내 ‘의학적 방어(Medical Defence)’ 조항 신설: 영국 등 선진국의 제도를 참고해, 범죄 목적의 약물 오남용이 아니라 주치의의 엄격한 의학적 관리하에 있는 처방 아래 합법적으로 치료받고 있고 실질적인 주행 능력에 지장이 없는 환자의 경우 단속 및 형사 처벌을 면제하는 인권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3. 전문의 진료권 보장 및 대국민 인식 개선 캠페인 전개: 진료 현장의 의사들이 방어 진료나 법적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최선의 의학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두터운 처방권을 보장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 정신질환자는 도로 위에서 안전하다는 과학적 진실을 알리는 범국가적 캠페인이 필요하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마약 및 오남용 약물 운전의 엄단이라는 도로교통법 개정과 행정 조치에 공감하며 도로 위 안전을 위한 사회적 노력에 동참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환자들이 치료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사회에서 배제되는 마치 초가삼간이 타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학문적 근거에 기반한 합리적이고 안전한 규정 마련에 책임을 다할 것이다.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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